박정희의 일대기와 그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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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박정희의 일대기와 그 이해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머리말

2. 출생과 혁명의 길

3. 5.16혁명

4. 통치철학과 통치법

5. 경제관과 통일관

7. 경제운용방법

8. 10월 유신(維新

9. 자주국방과 핵 개발

10. 육영수여사의 내조

11. 인간 박정희

12. 근대화 정치의 문제점

13. 박정희의 죽음과 배경

본문내용

신발과 가방을 주워들고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에는 인간적 세세함과 아, 그도 인간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는다. 정신적 지주였던 그녀의 시신 앞에서 끝내 눈시울을 적시고 국민들의 가난함과 배고픔을 보고 울어야만 했다는 인간 박정희, 집무실에 선풍기 대신 파리채를 두었고 막걸리와 보리 잡곡밥을 즐겨 먹었다는 그의 모습에서 그는 군인, 경제부흥의 주인이전에 서민 대통령으로써의 인간미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박정희 근대화 정치의 문제점
박정희가 뚜렷한 경제발전을 이룩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내면에는 또한 많은 문제점과 오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몇 가지를 예로 들어 살펴 보려한다.
먼저, 그의 정치는 한일관계의 정상화와 65년의 10월 유신, 66년의 월남전 파병 등의 결정을 통해 유리하게 추진되었지만, 독창적인 발전전략이 아니라 모방적인 중앙 집권주의적 개발도식인 대기업을 중심으로 하는 관 주도적 발전정책이었다는 점이다. 경제 개발의 계획도 기존 경제 질서의 구조적 수정없이 모방적인 불균형적인 공업화 정책으로 시작함으로써 권력의 집중과 권위주의적인 경향으로 기울었다는 지적이 있다.
두 번째로 60년대를 '후진국 각성의 시대'로 보고 근대화를 위한 촉박한 시간을 극복하기 위해 권위주의화 경향으로 인한 국가의 노력이 집약되어 시민사회의 자발적인 정치참여나 정당활동이 보장되기 보다는 행정주도하의 사회 통제나 지도에 의해 국가가 운영된 점이다.
세 번째로 중앙 정보부의 창설과 반공이데올로기의 채택에 오점이 있었다. 권력 내부의 보안과 반 쿠테타를 막기 위해 생겨난 중앙 정보부는 불법납치와 고문을 일삼았으며 국가의 모든 정책이 이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군사정권은 권력을 강화하고 경제발전을 촉진시키기 위해 사회 전반을 통제하게 된다. 또한 반공이데올로기는 단지 정치적 반대세력을 억압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박정희 정권은 국가 독점 자본주의 체제를 지향하여 국가 주도와 대기업 중심의 공업화 정책을 위해 외국차관이나 외국투자를 과다하게 유치함으로써 외자 의존적 지향을 가져와 고도성장의 구조가 해외 의존적으로 되어 버리는 폐단을 낳고 말았다는 점이다.
이밖에 과도한 군 출신들의 관리 등용이라든가 분배정책의 실패, 빈부격차의 심화로 인한 농촌의 빈곤화 등이 그의 경제부흥의 내면에 깔려있던 문제점이자 풀지 못한 과제였다.
박정희의 죽음과 핵 개발 의혹
도대체 박정희의 죽음 뒤에는 어떠한 배경들이 있었을까? 하는 문제는 아직 까지도 확실히 단정할 수 없는 문제로 남아있다. 한 개인의 감정적인 행동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기에는 그의 비운의 죽음이 너무도 아쉽고, 당시의 한미관계나 사회적, 정치적 배경과 연관성을 짓기에는 왠지 확대 해석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떤 이들은 그의 죽음이 김재규라는 한 인물의 성격이나 취향을 보아 순간적인 충동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견해와 김재규의 계획적 살인이라는 견해가 있는데, 당시 중앙 정보부장이었던 김재규는 그의 우유부단한 성격 때문에 공개석상에서 박정희에게 잦은 질책과 질타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재판 중 그는 '자유를 가로막는 둑을 무너뜨렸다'는 말과 함께 오래 전부터 그를 암살하려고 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다음으로 당시 차지철 경호실장의 지나친 월권행위와 오만 불손한 태도에서 생겨난 비극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간단하게 그 과정을 살펴보면, 육영수 여사의 피격 사건후 박정희의 5.16혁명의 동지였던 차지철이 경호실장이 되면서 경호실과 중앙 정보부의 원만했던 관계가 벌어지기 시작한다. 차지철은 경호실 직원 뿐만 아니라 병력에까지 관여를 해 월권을 남용하는가 하면 경호실장 자신의 전용식당까지 만들어 비공식 정보기관을 운영해 인맥을 쌓아가게 된다. 이후 김재규가 후임 정보부장이 되면서 결국 차지철의 안하무인적 월권행위와 정치문제의 지나친 관여로 인해 둘사이에 마찰이 심해졌고 김재규는 결국 차지철과 박정희의 양 가슴에 총을 겨누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이는 박정희의 차지철에 대한 지나친 믿음과 방종, 그리고 그의 단호하고 직선적인 성격이 오히려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마지막으로 의문이 제기되는 박정희의 죽음에 대한 미국의 개입설이다. 이는 물론 박정희의 핵 개발과 관련해 이를 우려한 미국이 그의 죽음을 조정하지 않았느냐? 하는 견해다. 흥미로운 사실은 김재규가 사건 전날 미국의 CIA요원을 만났었고, 피격 후 재판에서 한·미관계의 회복에 대해서 언급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시에는 한국의 핵무기 개발문제로 한·미간의 갈등이 심화된 때였다는 사실 등이 이 견해를 뒷받침 한다. 따라서 이 사건에 미국이 개입했다는 개연성을 갖게 하는 것은 역시 그 내면에는 핵 문제가 깔려있었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어쨌든 박정희의 핵개발에 대한 집념과 집착은 미국의 신경을 자극할 만한 요인이었다는 것이다.
여하튼, 지금 박정희 그는 없다. 오직 그가 이루어 놓은 과업과 풀지 못한 과제를 가지고 지금의 우리는 이러쿵 저러쿵 떠들고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벌써 20년이 흘렀지만 그를 완전히 아는 이도 없고, 그가 누구였는지에 대해 명확히 해답을 줄 수 있는 사람도 없다.
하지만 그가 시간이 흘러 다시 어떠한 인물로 평가되든지 간에, 나는 그를 불우했던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를 바꿔 놓은 지도자로서의 적극성과 진취성, 그리고 국민을 아끼고 국민에게 정직했던 그의 인간미를 높이 평가하고 싶다. 지금까지 비리와 부패로 일관해온 우리 지도자들이 그의 그런 점을 배웠어야 했고, 지금의 우리가 배워야 한다. IMF라는 위기를 거치면서, 무한 경쟁의 숨가쁜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그의 정신을 그리워하고 아쉬워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 그에 대한 많은 부분을 그저 책에 의지해 답습한 점도 있고, 내용면에서의 부족함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그를 그저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내 자신에 대한 아쉬움이 더욱 남는다.
※참고문헌 및 자료: 김택환,윤민봉공저, [한국정치문제 분석론] ,학문사, 1995
김정렴 ,[아,박정희], 중앙M&B사, 1997
인터넷자료, TV프로그램(이제는 말할 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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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03.12.26
  • 저작시기2003.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40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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