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공개념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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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에 근본적 원인이 있었다.
따라서 자본이득이 사유화되는 것을 막고 이용되지 않고 소유만 되는 토지가 공급되도록 토지 소유자에게 사회적 비용을 부담시키는 것이 필요하였다.
둘째는 개혁의 목표가 명백하였다.
토지공개념의 목적은 토지부문에서 사회적 후생을 최대화시키는 것이다.
이는 토지시장에서 자원배분이 효율적으로 되고 소득이 적정하게 분배되도록 시장의 실패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먼저 자원의 최적배분이다.
토지는 재생산이 되지 않고 공급이 제한되어 있다.
따라서 토지가 자산으로서 보유되는 것을 억제하고 생산요소로서 가장 효율적으로 이용되도록 하고자 했다.
토지가 자산의 증식수단으로 '소유' 되는 것을 생산요소로 서 '이용' 할 수 있도록 촉진하고자 했다.
셋째는 개혁의 과제가 분명히 설정되었다.
이와 같은 문제인식 위에 개혁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구체적 비전이 제시되었다.
1988년 4월 "토지정책의 운용과 과제"에서 토지부문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건설부 차원에서 분명히 설정되었다.
장기적으로 토지공개념을 확대 도입할 수 잇는 주요 개혁과제로 택지소유상한제와 개발이익환수제도 그리고 임야, 농지의 거래제한과 기업의 토지투기 억제대책 등이 제시되었다.
넷째는 개혁추진 주체가 형성되었다.
토지공개념을 제도적으로 연구할 토지공개념연구위원회가 1988년9월 국토개발연구원장을 위원장으로 35인의 위원으로 구성되었다
토지제도의 개혁에 다른 내용을 연구하고 이에 따른 충격을 완화하면서 제도의 도입을 추진하기 위함이었다
다섯째로 토지공개념은 국민적 합의의 기반 위에서 추진되었다.
1988년 지가앙등 이후 토지공개념 도입에 대하여는 국민적 지지가 높았다.
그러나 토지개혁에 대하여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도록 촉진한 것은 1989년 2월에 발표한 토지 소유의 편재상황이었다.
그리고 정부는 1989년 2월 택지소유상한제와 개발이익환수제의 골격을 발표하고 주요 고비마다 공론화과정을 거쳤다
정부차원에서 제도를 도입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대안을 살펴보고 이에 대한 부작용 등을 검토하여 여론화시켰다.
그리고 택지소유 상환에 관한 법률, 개발이익환수에 관한 법률을 1989년 7월6일 입법 예고하여 개혁과정에서 나타나는 계층, 집단, 부문 사이의 상호 대립적인 이해를 조정하고자 했다.
이는 물론 전문가집단, 이익단체 등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하여 국민 내부에 토지제도 개혁세력의 저변을 확대하는 길이 기도했다.
더하여 민주적 절차도 밟았다.
정부안을 확정하고 당정협의를 거쳐 여당의 의견을 수렴하였다.
그 후 경제장관회의,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국회에 송부 하였다.
당시는 민주정의당, 평화민주당, 통일민주당, 민주공화당의 4당 체제였다.
각 당의 다양한 의견은 민의를 대변한 것이었다.
이를 종정하고 국회의결을 거쳐 토지공개념제도는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처럼 토지제도 개혁은,
문제의 명확한 인식 위에 개혁과제와 비전을 제시하였고 이를 담당한 주체들이 뚜렷하게 구성되었었다.
함께, 공론화의 과정과 민주적 절차를 거쳐 이루어낸 결과였었다고 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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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3.12.28
  • 저작시기2003.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40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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