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경제(박정희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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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970년대 경제(박정희 시대)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 1970년대 수출과 경제성장
1) 10억 달러 수출성장 목표 달성
(1) 수출의 국가 종교화
(2) 10억 달러 수출성장의 양면성
2) 1972년 8·3 긴급경제조치
(1) 사채동결
(2) 8·3 조치의 피해자들
3) 중화학 공업의 성장
(1) 중화학공업화와 수출
(2) 자동차·조선 산업의 발전
(3) 포항제철의 설립
(4) 중화학공업화에 대한 비판
4) 관광산업의 성장
(1) 일본인 기생 관광 붐
(2) 화대 착취 구조를 묵인한 정부
5) 1백억 달러 수출 달성

Ⅱ. 1970년대 국토개발
1) 주택난 해결을 위한 주택건설
(1) 아파트 건설
(2) 33명의 생명을 앗아간 붕괴 사고
(3) 선거와 판자촌
2) 경부고속도로의 개통
(1) 경부고속도로의 건설
(2) 77명의 생명을 바친 경부고속도로
(3) 경부고속도로와 지역 갈등

Ⅲ. 인구 및 생활
1) 이농인구
(1) 호남인의 호남탈출
(2) 호남차별
2) 쌀 수확량의 증가
(1) `희농 1호`의 실패
(2) `진짜 기적의 볍씨` 통일벼
(3) 절미운동 위반은 범죄
3) 오일쇼크
(1) 원유값의 폭등
(2) 중동진출
4) 경제개발과 가족계획
(1) 가족계획
(2) 1인당 GNP를 높이기 위한 가족계획

Ⅳ. 1970년대 경제평가

Ⅴ. 반성 및 느낀점

본문내용

"3살 터울 셋만 낳고 단산하자"였다. 70년대에는 둘로 줄었다. 80년대에는 "둘도 많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로 바뀌었다.
정관 수술을 받으면 예비군 훈련을 면제시켜 준다고 했다. 당시 방영되었던 모든 텔레비전 드라마의 부부는 두 자녀 이하의 자녀를 갖게 했다. 우표, 담뱃갑, 극장표, 통장, 주택복권 등과 버스, 택시, 지하철 기차 구내 등 일상 공간에 '적게 낳아 잘 키우자' 등 가족계획에 관한 표어들을 부착하였다. 1976년 후부터 두 자녀가 있는 가구에는 소득세를 감면시켜 주었고, 하나나 둘을 낳고 영구 불임 수술을 한 경우에는 공공주택 할당 및 금융 대출에 우선순위를 주었다.
그러한 군사 작전식 노력 덕분에 출산률은 빠른 속도로 감소하였다. 1980년대 후반에는 재생산 수준 이하로까지 떨어졌다. 1955년~60년 동안의 합계출산율은 6.3으로 최고를 기록울 기록한 이후 1971~75년에는 4.0이었으나, 1976~80년에는 2.9로 떨어졌다.
인구 증가율은 1990년대에 이르러 1%미만으로 감소했으며 출산율로는 1.6으로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인구 증가율 감소가 오직 가족계획운동의 성공 덕분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농촌의 가임 여성들이 대거 도시로 나가는 바람에 그들의 결혼 연령이 높아졌고, 또 공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자식 많은 게 더 이상 재산일 수 없는 변화를 몰고 왔다는 것도 동시에 감안해야 한다.
(2) 1인당 GNP를 높이기 위한 가족계획
인구정책이 골격을 갖춘 것은 제3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입안 과정에서였다.
당시 인구 증가율은 연2%이상이어서 3차 계획이 끝나는 연도의 증가율은 1.8%로 잡았더니 1인당 GNP를 높일 수 없었다. 그래서 당시 부총리는 인구증가율을 1.3%로 낮추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당시 인구 증가율을 고려해보면 1.3%인구 증가율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정부는 다시 인구를 줄이는 가족계획에 군사 작전식 방법을 도입하여 1976년도의 인구 증가율을 1.5% 선에서 낙착을 보았다.
불가능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정부는 정관 수술시 보상금 지급, 콘돔 무료 배포, 산아제한 홍보 강화 등의 인구억제 정책을 본격화하였다. 그 결과 1977년대 인구증가율은 1.5%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그에 따라 1인당 GNP는 60년대에 비해 8.24배나 증가했다.
이러한 인구정책과 GNP의 증가는 일단 목표를 세우면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달성하고 마는 박정희 시대의 경제정책의 한 단면을 보여 주는 사례이다.
Ⅳ. 1970년대 경제평가
박정희가 정권을 잡은 1970년대에 한국이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룩하였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기간산업의 뼈대라고 할 수 있는 고속도로가 건설된 것도 박 정권 때였다. 100억달러의 수출을 달성한 것도 이시기였다. 우리나라 산업의 중심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포항제철의 건설도 그가 한 일이었다. 1인당 GNP가 큰 폭으로 상승한 것도 이 때였다. 이러한 성과는 세계에서도 인정했다. 한국이 아시아의 네 마리 용안에 들어간 것도 바로 1970년대 였으니까 말이다.
가난하고 배고픈 시절 먹고 사는 문제는 가장 시급한 것이었다. 먹는 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 욕구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사실 누구도 먹고 마시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때문에 박 정권의 많은 실책들은 교묘하게 감춰졌다. 그의 수혜를 입은 고위 지도층들은 얼마전 박정희의 기념관을 세워야 한다는 주장까지했었다. 문제는 수혜를 입은 지도층만 그를 그리워 한다는 것이 아니다. 당장 주위를 둘러보기만 하여도, 그에 대한 향수를 느끼는 사람이 적지않다. "그래도 그 때는.... 참 절약했는데.. 요즘은 엉망이야.. 박 대통령이 10년은 더 대통령을 했어야해..."
교묘한 그의 술책은 수많은 허점을 감췄다. 경제가 성장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방법이야 어떠하든지 간에 결과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발상은 위험하다. 실제 박 정권이 이룩한 경제성장 이면에는 많은 허점을 담고 있다. 그가 남기고 간 것은 허울 좋은 허수아비와 같은 것이었다.
1990년대 한국은 그가 남긴 많은 폐해 때문에 진통을 겪어야 했다. 정경유착은 한국사회의 뿌리뽑을 수 없는 고질적인 문제가 되었다. 문어발식 경영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유래이다. 그가 남기고 간 날림공사 덕분에 한나라의 수도에 자리잡고 있는 다리가 천지재변도 없었는 데 끊어지는 망신스러운 일이 일어났다. 세계에서 유래에 없는 일이었다.
지역감정은 더할 수 없이 깊어졌다. 안 그래도 좁은 나라인데, 그 나라를 반으로 가르고 그나마 그 반쪽에서도 동서로 갈라 싸우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뿐만아니라 지역 불균형 발전으로 나라꼴이 우습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남긴 오점들은 최대에 이르러 IMF상황에까지 이르게 했다. 물론 IMF가 모두 그의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군부정치와 부정부패를 일삼은 정권을 남기고 간 그가 결국 IMF의 근원이나 마찬가지이다.
'잘먹고 잘사는 일'도 중요하다. 하지만 나하나 '잘먹고 잘살기'위해 수많은 사람들과 후손에게까지 피해를 준다면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그가 죽은 지 30년이 넘어가지만 아직도 그는 우리 속에 살아 우리의 삶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앞으로 다시 뼈아픈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 깊이 반성하고 생각해 보아야 할 시점이다.
Ⅴ. 반성 및 느낀점
1970년대는 한국 현대사 중에서도 가장 많은 일이 일어났던 시기이다. 70년대의 경제상황을 간결히 정리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일이었다. 발표문의 대부분은 최근 강준만이 쓴 한국 현대사 산책을 기초로 하여 작성되었다. 저자의 시각을 배제하고 객관적인 사실만을 정리하려고 했으나, 어느정도의 한계가 있었다.
또한 내용이 너무 산발적이 되기도 하였다. 자료가 너무 방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름대로 간결하고 보기 좋도록 요약하려고 노력했으며, 많은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보람되고 한국의 경제 상황을 잘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즐거웠다.
참고문헌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1,2,3
정부간행물, 격동반세기
정부간행물, 정부수립4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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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1.13
  • 저작시기20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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