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문화의 교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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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동서문화의 교류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참고로 수시력을 편찬하였고, 주 은본은 아라비아의 지도 제작법을 배워 새로운 지도를 작성하였고, 수학에는 이치가 나타나 측원해경(測 圓海鏡)을 저술하였다.
그다음으로 넷째, 라마교(喇摩敎, Lamanism)의 성립고 전파이다. 라마교는 대승 불교와 티베트의 다신교적 토속 종교(본보교)가 혼합하여, 독특한 의식과 행사를 가지는 불교로 본디 6,7세기경부터 발전한 것이었는데 원대에 들어와 크게 유행하였다. 대승 불교의 일파인 것에는 틀림이 없으나 이 종파에서는 극락 세계로 인도하는 데 있어서 승려, 즉 라마의 역할을 중시하기에 붙이게 된 이름이며, 정확히 말하면 티베트의 불교라고 할 것이다. 몽고인들은 원래 사상적인 것에는 흥미가 없었으나 교리보다는 주문, 기도를 존중하는 라마교에 마음이 쏠려 왕실에서 이를 믿는 사람이 많았다. 특히 세조 쿠빌라이는 이에 깊은 관심을 가져 티벳승 파스파(八思巴)를 궁정에 초빙하여 제사(帝師)로서 존경하고 천하의 불교 및 티벳의 정치를 맡아 보게 하였으므로, 라마교는 몽고 귀족 사이에 널리 유행하였다. 그러나 몽고의 일반 서민들은 여전히 재래의 샤마니즘을 많이 믿었기 때문에 라마교는 원의 몰락과 함께 중국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다섯 번 째로 카르피니(Carpini, Giovanni de Piano ;1200?-1252)라는 인물인데 그는 이탈리아의 프란체스코 교단의 성직자로 교황 인노켄티우스 4세의 명으로 몽고인에게 크리스트교를 전파하는 한편, 그 정세를 시찰하기 위하여 몽고에 사절로 나섰다. 1245년에 리용을 출발하여 키에프, 드네프르, 돈, 볼가를 거쳐 바투 한의 왕성(王城) 오르도에 도착했다가, 다시 카라코룸에 이르러 구유크에게 교황의 친서를 바치고, 그 답서를 받아 아비뇽으로 돌아갔다(1247). 그의 견문록은 당시의 몽고 사정을 아는 데에 뤼브뤼크의 여행기와 함께 중요한 기록의 하나이다.
여섯 번 쩨로 곽 수경(郭守敬; 1231-1316)이라는 중국 학자를 들수 있다. 그는 원대의 과학자로 5경, 산술, 수리법에 정통하고, 세조(쿠빌라이)를 섬기어 여러 지방의 관개 수로의 개척에 노력하였다. 1276년 허형 왕 순 등과 함께 역법의 수정을 명 받아 정밀한 관측을 행하여 1280년 말 중국에서 제일 좋다는 수시력(授時歷)을 제정하고, 뒤에 태사령(太史令)이 되었다. 수시력은 1281년 공포되었으며 이슬람 역법의 영향으로 정밀한 천문 관측을 기초로 하여 작성, 1년을 365.2425일로 산정하였다. 고려 말 우리 나라에 전래되어 천문학 발달에 공헌하였다.
자, 그럼 우리 문화 속의 전통 서양 문화의 흔적을 살펴보자.
일찍이
우리문화 속에는 헬레니즘적인 요소가 들어와 있었다고 한다. 이를테면 오이노코에라고 하는 물병은 그리스가 시원으로 이란을 거쳐 중국에 들어온 것인데, 동양에서는 봉수형병으로 불리기도 한다.이 유리병이 1973년 경주 황남대총에서 발굴되어 우리를 놀라게 한 적이 있다.그 밖의 고분 출토품으로 리이톤이라고 하는 각배형 토기를 비롯해 각종 누금식 금속 공예품,감옥 장식등은 그 형태나 만든 기법이 서방의 그것과 흡사해,두 지역의 상호교류 관계가 있었던 것같다.요즘에는 지구촌이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되지만 벌써 그 옛날부터 지구는 한가족이었다는 생각이 든다.더 흥미로운 것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역사 헤라클레스의 상징적 표현인 사자두상이 신라 조각품에 나타나고 있나든 사실이다. 간다라의 초기 불상에서는 불가의 수호신인 금강역사대신에 헤라클레스 상을 배치했는데, 그 뒤로 이 헤라클레스
의 상징물이 불교의 수호신으로 부착되는 전통을 이루었다. 통일 신라 때의 조각상에는 이러한 특징을 반영하는 보기가 있다. 감은사 서탑에서 발견된 금동제 사리장치의 부조사천왕상에 보이는 사자두상이 그것이다. (전 페이지의 그림 4개 참조)
그러나 무엇보다 한국 실크로드사의 압권은 신라승 혜초와 그의 왕오천축국전 이다. <왕오천축국전>은 신라의 스님 혜초가 727년 인도와 주변의 여러 나라를 순례하고 돌아와 쓴 여행기이다. 여기서 '천축국'은 지금의 인도를 말하며, 당시 인도가 다섯 지방, 즉 동천축 서천축, 남천축, 북천축, 중앙천축으로 나뉘어 있었기 때문에 '오천축국'이다. 그리고 '왕'이란 말은 그 곳에 갔었다는 한자말이다. <왕오천축국전>은 인도 지방 여행기라는 뜻이다. 원래는 세 권이었으나 앞뒤가 잘려진 채 발견된 이 책은 1천2백여 년 전의 인도를 알 수 있게 되었고, 중국과 인도를 잇는 도로 사정을 아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여 역사적인 가치도 큰 것으로 평가된다. 불교문화전성기인 8세기에 실크로드를 따라 성지를 두루 편력했던 혜초의 숨결이 담겨진 여행 기록은 그 당시 한국인의 국제성을 여실하게 증명해 주는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된다.1908년 프랑스의 고고학자 펠리오에 의해 돈황 석굴17호인 장경동에서 발견된 이 책은 현재 파리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돈황석굴벽화와 남러시아 사마르칸트 궁전벽화에 각각 표현된 한국인 사절상들은 이 동서 교역로가 실질적으로 한국에까지 연장되어 있었음을 밝혀주는 역사적 증인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배운 세계사 내용과 참고자료를 이용한 동서양 문화교류의 역사와 그 흔적을 살펴보았다. 동서양은 비록 서로 다른 고유한 문화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들이 서로 충돌하게 되면서 융합이 되고 또 그것이 문화의 교류가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바와 같이 동서양의 문화는 역사적으로 많은 충돌과 융합과정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한 역사를 우리는 다시한 번 새겨서 현재의 우리의 문화와 서양문화와의 올바른 조화를 꾀하도록 노력해야한다.
참고문헌 ----------------------------------------------
1. 장택화준(민병훈역). '동서문화의 교류'. 서울: 민족문화사, 1991.
2. 나가사와 가즈도시(이재성역). ' 실크로드의 역사와 문화'. 서울: 민족사, 1990.
3. W. Franke(김원모역). '동서문화교섭사' 서울: 단국대출판부, 1977.
4. 장노엘 로베르(조성애 역). '로마에서 중국까지' 서울: 이산, 1998.
  • 가격2,000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04.02.09
  • 저작시기2004.0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42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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