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에 가려진 동성애의 추억과 다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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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권력에 묻혀버린 동성애(同性愛)의 기억과 다양성의 긍정
1. 사회적 구조가 뿌리 내리지 않은 공간
2. 5 의 2 = 7(무지개의 완성)
3. 프로포즈 와 거부
4. 굳게 닫힌 기존 사회의 틀
5. 두 집단 사이에서의 고립
6. 빡빡 머리와 마지막 프로포즈
7. 본격적 챙겨주기
8. 물에서 불로 이어지는 연속적인 동성애
9. 6 의 2 = 7의 붕괴
10, 저항의 끝?

(2)영화 속 동성애를 표면적으로 드러낼 수 없었던 시대적 배경
1.동성애자 기형도의 동성애를 바라보는 시각(부록)

본문내용

성애는 오래도록 지속되기 어렵다. 따라서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엄석대(홍경인)와 한병태(고정일)의 동성애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러닝타임의 배분은, 이성애적인 사회에서의 보수적인 성의 관념에 기인한다. 이러한 제작배경은 그 당시 영화 속의 시대적 배경과, 영화제작시기의 시대적 맥락을 통해 우리사회의 권력과 성에 대한 담론에 대한 분석을 통해 언급할 수 있다.
역사 속에서 동성애를 바라보는 관점은 비판적이라기 보다는 긍정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동성애자들의 역사 연구에서 나타나는데, 우리 나라 최초의 동성애자로 기록되어 있는 혜공왕과 그 다음은 고려시대 공민왕이다. 이들은 동성애자인 동시에 피살되어진 왕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이들은 그 당시에 동성애에 대한 탄압보다는 그들 자신의 성 정체성으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이들의 동성애는 권력과 함께 존재했기에 동성애를 주된 관점에서 보기보다는 권력에 부속된 부차적인 요소라고 판단했을 듯 싶다. 이러한 동성애에 대한 관점을 뒤로하고 본격적으로 동성애가 탄압 받기 시작한 것은 서양의 기독교적 가치관과 다양한 서양의 이성애적 문명에 기인했다고 한다. 그러한 바탕에 의해 우리 나라 근대 사회 속에서 소수 동성애자들이 어떤 선상에 놓여 있는지 알 수 있다.
우선 영화 속 배경인 50년대 말에서 60년대 초인 이승만 정부시절로 돌아가 보자. 그 당시는 6.25 전쟁이 막 끝나고, 남한은 민주주의, 북한은 공산주의 체제가 확립되어 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남한과 북한은 한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체제라는 이유로 서로를 적대시하게 된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남한에서는 민주주의는 다수의 의견으로 옹호하고, 공산주의는 소수의 의견으로 배척 당한다. 그리고 소수의 의견인 공산주의를 몰아내기 위해 이승만 정권은 강압적인 정치를 한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반공 포스터를 그리게 하고, 속칭 빨갱이라고 하는 공산주의 옹호자들을 샅샅이 찾아, 가혹하게 처벌을 함으로써 사람들이 공산주의체제를 옹호하는 것은 죄악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소수의 의견인 동성애자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었을 뿐더러, 동성애 적 표현을 하는 것조차 죄악시하게 된 것이다. 이런 영화 속의 시대적 배경은 영화의 내용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들어 준다. 그 만큼 일그러진 권력 속에서 소수 동성애 혹은 여러 성 관념에 대한 긍정이 표현 된 것은 그만큼의 의미를 갖는다. 시간이 흘러, 국민들의 의식이 성장함에 따라, 강압적인 독재 정치에 반발하는 4.19 혁명을 일으켰다. 소수의 의견을 억압하는 것에 반대하고, 자유를 외친 혁명이었다. 이로 인해 이승만 정권은 무너진다. 그리고 박정희라는 새로운 정권이 들어선다. 모두의 바람과는 달리 박정희 정권은 이승만 정권보다 더 강압적인 정치를 한다. 무조건 자신의 의견을 따라야 했으며, 어떠함 소수의 의견도 반영되지 않았고, 목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표현의 자유를 비롯해, 모든 자유가 억압당하던 시기였다. 물론 그 덕분에 우리 나라는 눈부신 경제 성장을 했지만, 그 이상으로 국민들이 잃은 자유의 가치가 더 컸다. 박정희 정권의 이런 강압적인 정치는 10.26사태가 발생하고, 박정희가 사망 할 때까지 무려 17년간 계속된다. 독재자였던 박정희가 사망하고, 12.12 군사 쿠데타로 전두환 정권이 들어섰다. 4.19와 10.26사태에 이르면서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정치는 많이 사라졌지만, 군사 쿠데타에 의해 세워진 정권인 만큼 자신의 정권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강압적인 정치를 하고, 자신의 의견 외의 의견은 배척하고 죄악시하였다. 영화의 원작 소설이 이 당시에 발표되었고,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자가는 소수를 대변하는 동성애자를 직접적으로 표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한편 국민들은 교육의 확대로 의식이 많이 신장되어 강압적인 정치의 부당함을 느끼고, 본격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저항은 지식인들의 집합소라 할 수 있는 대학에서부터 시작되어, 점차 전국민적으로 퍼져 6월 민주항쟁이 발생하게 이른다. 6월 민주항쟁과 6.29 민주화 선언으로 전두환 정권은 노태우 정권으로 바뀌게 된다. 전두환 정권 때 있었던 많은 민주화 투쟁들이 결과로 노태우 정권 때에는 독재 정치가 완전히 사라지고, 민주 정치가 확립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인 공산주의 체제는 받아들여지지 못했고, 여전히 공산주의는 죄악인 것처럼 여겨졌다. 이러한 체재의 이분(二分)과 그에 따른 여러 이분법적 논리에 의해 동성애에 의한 관점 역시 위축되고 금기(禁忌)시 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동성애 역시 사회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이념으로 분류되었다. 이런 시대에 영화는 개봉되었고, 원작 소설과 마찬가지로 동성애를 간접적으로밖에 표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민주 정치가 실현되었다고는 하지만, 모든 의견을 다 수용하지 못하는 반쪽 짜리 민주정치였기에 영화 속에서도 그만큼 표현이 자유롭지 못했다.
-동성애자 기형도의 동성애를 바라보는 시각(부록)
"그렇게 그 도시에서 사람들은 홀로 떨어진 삶을 살아가야 한다. 청년들은 톱밥처럼 쓸쓸해 보인다."
기형도는 그의 시를 통해보듯 '동성애자들'을 기존사회에 안주(정착) 할 수 없는 존재로써 보았다. 동성애자들은 기존의 이성애자(異性愛者)들의 관점으로 해석하면 '외부의 사람이고, 특정한 부류'이다. 하지만 그들을 그렇게 치부하던 이성애 자들도, 그들의 세계에 대한 경험을 하게 된다면 그들의 의식세계를 이해 할 수 있으며, 동성애자들을 아웃사이더(Outsider)로써의 존재가 아닌, 같은 사회 속에 존재하는 한 부분으로 생각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병태는 막연히 동성애에 대한 기존의 이성애적 관념으로 인해 두려워서 다가설 수 없어 한다. 하지만 그 세계를 경험하고 나서, 그 세계를 인정하고, 자신 역시 동화(同化)되어 간다. 영화<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기형도의 시(詩)에서는 공통적인 요소를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은 이성애적인 관념이 지배적인 사회에서 동성애 적인 관념을 부정하지 말고 수용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다시 말해 동성애에 관한 관념의 재정립이 필요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키워드

동성애,   권력,   추억,   다양성,   ,   성과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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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4페이지
  • 등록일2004.02.13
  • 저작시기2004.0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43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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