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로서의 공자 - 업적과 교육사적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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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교사로서의 공자 - 업적과 교육사적 의의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머리말

Ⅱ. 시대적 상황과 약전
1. 시대적 상황
2. 약전

Ⅲ. 공자의 교육 실천과 그 역사적 공헌
1. 정치론과 교육론의 관계
2. 교육 대상층의 확대
3. 새로운 교육적 인간상의 제시
(1) 이상적 위정자로서의 군자
(2) 군자를 규율하는 세 개의 가치 : 도․ 덕․ 인
4. 교육 내용의 체계화와 풍부화
(1) 덕행
(2) 육예
(3) 시서지문
(4) 예 악
5. 교육 방법의 혁신
(1) 선자학 후문답과 계발 의 방법
(2)인재시교의 방법

Ⅳ. 맺음말

본문내용

공자가 음악을 말할 때는 거의 언제나 예와 나란히 언급하는 편이다. 이것은 예와 음악이 표리를 이루면서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 있음을 짐작하게 해 준다. 예는 그 속성상 분리, 구분, 차이를 강조한다. 또한 '감정의 자연을 제어하는 것'이므로 진정한 화평을 가져다주기는 어렵다. 그래서 예와 더불어 악이 있어야 한다. 그곳에 和가 있고, 이것이 사람들을 진정 마음으로 결속·친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악은 수직적 차이에 바탕을 두는 예와 달리 수평적 일체감을 목표로 한다.
5. 敎育 方法의 革新
(1) 先自學 後問答과 啓發 의 방법
공자의 아들 백어가 공자와 단 둘이 있을 때 들은 말은 시와 예를 공부하라는 권면뿐이었다. 또 공자는 다른 제자들에게도 '너희들은 어째서 시를 공부하지 않느냐?'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모두는 공자가 수업이나 강의 형태로 시를 가르쳤다면 나올 수 없는 이상한 말들이다. 즉 공자는 시 공부의 가치를 역설하고 권고하기는 했지만 자기가 앞장서서 일률적으로 강의를 한 것은 아니다.
제자들은 각자 시나 예를 공부하고 나서 잘 이해가 되지 않거나 의문이 생겼을 경우 그것을 공자에게 들고 왔다. 이 같은 문과 예의 교수는 먼저 제자들 편에서 자기 나름의 학습이 있은 연후에 問答式 對話로 진행되었다. 이것을 '先自學 後問答'의 방법이라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답을 목적으로 주기적으로 모이는 시간과 장소가 정해져 있었던 듯하지만, 『논어』에 동일한 질문이 여러 번 등장하는 것을 보면, 의문이 생길 때마다 개별적으로 찾아와 대화를 나누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때때로 제자가 제기한 질문에 대해 즉시 답변을 하지 않고 반문함으로써 질문의 취지를 정확하게 파악한 연후에 거기에 맞는 지도를 했다. 제자들은 공자에게 반문이나 반박을 하기도 하고, 공자의 말이나 태도에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으면 따로 남아서 묻기도 하고, 공자가 나간 뒤에 저희들끼리 논란을 벌이기도 하였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공자가 공부하는 사람의 문제 의식과 자발적인 노력을 敎授의 필수적이 조건으로 생각하고 요구했다는 데 있다. 일단 공자의 제자가 된 뒤에도 상당한 노력의 표시가 있어야 가르침을 베풀었으며, 한 번 설명한 것에 대하여는 학생 편에서 충분히 이해했다는 feed-back이 오지 않는 한 그것을 되풀이하지 않았던 점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문제의식이 없는 사람이나 배우고자 하는 열의가 없는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친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무의미한 일로 여겼던 것 같다. 공자의 대화식 교수는 이처럼 엄격한 조건을 만족시켜야 했기 때문에 motivation의 문제로 골치를 썩일 필요가 없었다.
끝으로, 공자의 교수가 주로 문답식 대화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話術이 대단히 중시되었으리라고 추측하기 쉽다. 하지만 공자는 말 잘하는 사람을 싫어한 편이었고 제자들에게 그런 사람을 멀리 하라고 가르쳤다. 글쓰기에 대해서도 그는 '文辭란 자기 의사를 명백하게 전달하면 족하다.'라고 하여 修辭的 탁월성 추구를 그다지 긴하게 생각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2)因材施敎의 방법
더불어 함께 공부할 수는 있어도 함께 道로 나아가지는 못 하며, 함께 道로 나아갈 수는 있어도 함께 서지는 못 하며, 함께 설 수는 있어도 함께 상황에 맞추어 처신하지는 못 한다.
이 말은 구하는 바가 같아도 얻는 것이나 도달하는 바는 다르며, 도달하는 바가 같더라도 지키는 정도가 다르며, 지키는 정도가 같더라도 상황에 대한 판단과 처신이 다름을 지적한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하는 모든 일에 행위 주체의 성품이나 됨됨이가 개입됨을 단적으로 지적한 것이라 하겠다.
가르치는 내용과 학습자의 현재의 상태를 의미 있게 접목시키기 위해 공자가 취한 방식은 두 가지였던 것 같다. 우선 명백히 특정한 텍스트를 다룰 때, 예컨대 詩를 가르치는 경우, 공자는 학습자 편에 그것에 대한 興味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애썼다.(興於詩)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교사에 의해 새로운 흥미가 촉발될 수 있음을 공자가 인식했다는 점이다.
다음으로 특정한 텍스트와 무관하게 제자가 제기한 질문에 대답해야 할 때, 공자는 자신의 대답이 그 제자의 됨됨이와 의미 있게 관련을 맺게 하려고 애썼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평소 제자들 하나하나의 사는 형편에서부터 행동과 성격, 재능과 장·단점 등을 체계적이고 주의 깊게 관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공자는 제자들을 지도할 때에 각자의 개성과 장단점에 따라 그가 군자의 됨됨이를 갖추는 데 가장 도움이 되거나 자극이 될 가르침을 주곤 하였다.
이런 지도를 받은 제자들은 공자와 만날 때마다 늘 자신의 정신세계가 넓어지고, 구체적인 단점들을 고치면서 성장해 가는 경험을 맛 볼 수 있었다.
Ⅳ. 맺음말
우선 공자는 六藝에 詩書之文과 禮樂을 추가해 교육 내용을 종래보다 훨씬 풍부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까지 고대 중국이 이룩한 문화적 성과를 六經으로 集大成해서 후대의 교육 내용으로 물려주었다. 둘째, 그는 有敎無類'의 입장에서 사학을 개창해서 교육 대상을 크게 확대하였다. 셋째, 학문과 수양을 통해 내면적으로 도야된 君子라는 이상적인 위정자상을 교육의 새로운 목표로 제시하여 血緣보다 業績 요인의 비중이 증대되어 가도록 만든 중요한 사상적 추진력을 제공하였다. 넷째, 교육 목표와 내용과의 관련성 및 가치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학생들의 개성을 고려하는 교육 방법이 어떤 것인지를 몸소 示範하였다. 이처럼 그는 단지 청년들을 교육한 것만으로 인류 역사의 방향을 바꾸어 놓은 몇 안 되는 교사들 중의 하나였다.
참고문헌
1. 서경(혜원동양고전5) : 공자, 박희준 역, 1991
2. 공자 맹자(중국사상대계1) : 공자 외, 이원섭 편, 신화사, 1983
3. 공자의 생애와 사상 : 貝塚茂樹, 박연호 역, 서광사, 1991
4. 공자(동양전기문학선집1) : 임종삼, 문학관, 1991
5. 공자의 사상(현암신서) : 林語堂, 민병산 역, 현암사, 1985
6. 공자의 생애와 사상 : 김학주, 태양문화사, 1981
7. 공자학설의 현대적 의의 : 장기근, 형설출판사,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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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2.17
  • 저작시기20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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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243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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