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리 신재효의 활동과 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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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동리 신재효의 활동과 업적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시대적 배경과 지방 향리로서의 신재효

2. 판소리 후원자 및 지도자로서의 신재효

3. 이론가 및 논평가로서의 신재효

4. 단 잡가 창작가로서의 신재효

5. 사설 개작자 또는 집성자 혹은 창작자로서의 신재효

6. 신재효 활동의 현대적 의의

본문내용

있어서도 상반된 평가가 제기되어 있다.
구성의 문제 : 판소리는 원래 현장성·즉흥성에 강한 장르인데 신재효가 사설을 일단 정리함으로써 위에서 지적한 것과 같이 통일성·균형성을 갖는 대신 발랄성과 현장성을 상실하고 화석화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이는 쟁점이라기보다 오히려 동전의 양면을 말하는 것으로 기록문학이 되어버린 이상 통일성·균형성을 갖는 반면 그 상대되는 현장성·발랄성은 당연히 거세될 것이 자명한 일이기 때문이다.
합리성의 문제 : 합리성의 문제는 사설의 언어구사와 구성의 문제 등과 일맥상통하는 문제이며, 이들보다 보다 근원적인 것으로 이들을 가름하는 차원의 문제이다. 여기서 합리성의 문제는 신재효의 계급적 성격이 향리라는 중인층에 속한다는 사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신재효가 추구하고, 결과적으로 그의 작품을 통해서 드러나는 합리성이란, 유교적 합리성이다. 그러나 그의 합리적 사고는 액면 그대로 양반사대부의 의식이라기보다는 그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중간계층의 합리성인 것이다. 즉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어전층은 양반 관료의 지배에 제어되어 사회적 상승을 억제 받으면서도, 그 지배질서를 승인하고 유지하여야 자신의 안정과 이익을 얻을 수 있었던 계층이었던 만큼 계층적 자기모습 내지 갈등이 사고와 문화에서도 드러나는데, 그의 유교적인 합리성에는 질서의 감각과 가치의식에 투영되어 있으면서도 새로운 질서에로 나아가려는 감각과 가치의식이 투영되어 있다는 것이다.
음악적 성격 : 신재효는 광대가에서 뿐만 아니라, 춘향가 사설의 남창·동창의 분화, 단가의 창작과 <고사>, <방아타령>, <성조가> 등을 진채선으로 하여금 공연하게 한 점등을 볼 때 실질적으로 음악적 고려와 지도를 수행했음을 알 수 있다. 창작에서부터 연창을 시켰었던
것에 이르기 까지 소리판에 대한 고려가 신중하게 행해졌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오늘날 전하고 있는 것은 찾아보기 힘들며, 오히려 그 사설이 문학적 연구의 대상으로 주요하게 남아 있다.
6.신재효 활동의 현대적 의의
지금까지 우리는 신재효를 ‘판소리 후원자 및 지도자’, ‘판소리의 이론가·논평가’, ‘단잡가 창작자’, 그리고 ‘판소리사설의 개작자 또는 집성자’로 항목으로 나누어 매우 방대하기 이를 데 없는 그의 활동과 업적을 살펴보았다. 그의 활동과 업적에 대하여 여러 가지 비판과 혹평 또한 제기되어 있으나, 그는 사회의 변화에 따라 당대에 사회적·문화적으로 떠오른 문제에 대해서 새로운 사고의 영역을 개척하고 나름의 해법을 제시함을 통해서 후대에까지 전망을 열어주는 문제적 개인으로서 그의 영향과 활동은 쉽게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판소리의 개작자이자 후원가였던 그에게서 지금 우리가 새롭게 조명해보아야 할 지점은, 현대적 관점에서 볼 때 무엇보다도 그가 위대한 문화행정가였다는 점일 것이다. 그는 일개 아전출신으로서 판소리를 예술적으로 이해했고 연구했으며, 판소리 미학을 정립했고, 판소리가 발전할 수 있도록 광대들을 후원했다. 중요한 점은 그가 훌륭한 조력자로서 광대들을 이해하고 돌봐주며, 질타하고 다독거리면서 판소리를 연구하여 판소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함으로서 이미 문화행정이 해야 할 일을 이미 100년 이상 앞서 실천에 옮겼다는 점이다. 덕분에 고창은 판소리의 중심이 되었고, 수많은 명창들이 운집하고 이들 속에서 새로운 명창이 배출되었으며 “어전광대가 되려면 고창 신재효 문하를 거쳐와야 한다”는 말이 정설처럼 떠돌았다. ‘문화’라는 화두가 사회의 중심적인 가치가 되고, 문화강국으로서의 전망과 도약을 시도하고 있는 이 때에,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지원하며 그 방향을 제시함으로서 문화를 꽃피우게 하는 신재효와 같은 문제적 인물은 우리시대에 하나의 귀감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고창에는 신재효 생가, 동리국악당이 있는 판소리박물관, 신재효선생 기념비 등이 있다
자료출처: 고창군에서 퍼옴.
서종문, 「신재효와 판소리」, 『판소리의 지평』, 신아출판사. 1990
김수연, 「<동리가사>의 성격과 기능」, 『판소리 연구』제9집, 판소리학회, pp.351-379
이기형, 「단가의 범주와 신재효 가사의 성격」『판소리 연구』제10집, 판소리학회, pp.263-291
강진옥·강한영외 다수,『동리연구』 창간호(1993)~3호(1996), 동리연구회.
강한영 교주, 『한국고전문학대계8-신재효판소리사설집(전)』, 교문사, 1984.
김병국·김흥규외 10인, 『판소리의 바탕과 아름다움』, 도서출판 인동, 1986.
판소리학회, 『신재효판소리연구』, 판소리학회, 1990.
판소리학회, 『판소리의 세계』, 문학과지성사, 2000
1.③ 효자로 알려졌던 동리가 시묘살이를 했던 초당 자리.
성두리 소재 묘지의 맞은편 지역이며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는 자리에 있었다.
이곳에서 동리는 시묘살이와 함께 사설정리·창작작업을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2.지난 69년 연세대 출판부에서 간행된 『신재효 판소리 전집』. 필사본인 『신씨읍내본』을 영인했다.
3.신재효의 개작에 의해 사설이나마 온전하게 보존할 수 있었던 『변강쇠가』의 필사본 고수본.
『변강쇠가』는 우리 민족의 성애묘사의 극치를 보여주는 보기 드문 작품이다.
4. 전형적인 판소리의 율조로 이루어진 '자서가'는 조선 후기의 판소리 연구가인 신재효가 살았던 고택의 앞마당에
세워진 동리가비(桐里歌碑)에 새겨져 있다. 노래비에 담겨진 내용은 동리(桐里) 신재효(申在孝)의 집을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꼼꼼히 읽어보고 집주변을 둘러보면 노랫말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5.④ 고창군 심원면 월산리에서 바라본 진채선의 고향 금당포구.
금당골 무당의 딸이었던 진채선은 당시 남창만 있던 판소리에 여창의
효시가 됨으로써 판소리계의 경쟁력과 가능성을 확장시켰다
조선후기의 판소리 연구가로 이름 높았던 신재효(申在孝)선생은
우리 문화의 한 부분에서 빛나고 있는 판소리를 정리하고 발전시켰다.
45세를 전후하여 판소리의 사설을 정리하는 한편 창작생활에도 힘썼던 그는
판소리의 이론적 체계를 모색하여 '광대가'를 지어
인물, 사설, 득음(得音), 너름새라는 4대법례를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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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3.28
  • 저작시기2004.0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45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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