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의 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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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박노해의 시 세계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노동의 새벽
-신문자료 첨부

2. 참된시작
-그 해 겨울 나무, 우리의 몸

3. 사람만이 희망이다
-첫마음, 겨울사내, 종달새 등

본문내용

알 것임을
너는 나를
지우지 못하네(「종달새」부분)
라는두줄 의 간명한 언어와 결연한 어조로 선언한다. 종달새는 겨울 창살안에 가둘 수 있어도 그 푸른 꿈을 가둘 수는 없다. "푸른 기억을/뜨거운 노래를/위로 위로 나는 꿈을/내 핏속의 열망을 /가두지 못하네/(중략)/창살 안에 갇혔어도/나는 한 마리 종달새/종달새 종달새!"이기 때문에.
생명에 대한 문학적 접근은 아마도 생명과 죽음사이의 연관이 반복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복은 순환을 의미하기도 한다. 봄과 겨울의 반복은 생명과 죽음의 반복의 시적 표현의 수단으로 자주 사용되는 것이다. 즉 죽음과 소생은 겨울과 봄처럼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반복적 사건이다. 이 반복이 자연의 순환질서이며 모든 생명은 이 순환의 리듬 속에 있다. 그러나 박노해의 글 속에 등장하는 겨울은 이 같은 자연 질서의 일부로서의 겨울이 아니라 '역사의 겨울'이며 봄이라는 것 역시 끊임없이 반복되는 자연은 봄이 아니라 '인간의 역사가 성취해야하는 봄'이다. 역사의 겨울은 인간이 다른 인간을 지배하고 누르고 착취하기 위해 만든 인공적 억압의 질서이며 이 질서를 극복하는 것이 역사의 봄이다. 역사의 겨울과 역사의 봄은 순환질서의 상징 아닌 역사적 상징체계 속에 있다. 그러므로 박노해의 겨울과 봄은 순환의 상상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억압과 해방이라는 역사적 의식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의 겨울 나무, 죽음과 소생, 꿈과 희망으로 모두 이 같은 상상력에 매개되고 그 상상력을 표현한다. 순환의 상상력에서 겨울과 봄은 순환의 큰 양식 속에서 서로 동등한 가치를 갖는다. 이 경우의 겨울은 특별히 부정의 대상이 아니고 봄은 반드시 그 항구성을 기원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그 겨울은 특별히 싸우지 않아도 때가 되면 물러가고 봄은 특별히 쟁취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돌아온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겨울은 물리치지 않으면 물러가지 않고 봄은 쟁취하지 않으면 오지 않는다. 역사의 겨울이 길고 역사의 봄이 늘 올 둥 말 둥해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 겨울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말할 수 없었다."라는「그해 겨울나무」의 겨울은, 박노해 개인은 붙잡아두고 있는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감옥도, 그 감옥의 겨울도 아니다. 그것은, 수없이 되돌아오고 해마다 되풀이되는 자연의 봄과 관계없이 존재하는 억압과 질곡이 겨울, 곧 역사의 겨울이다. 마찬가지로 「참된 시작」에 수록된 「우리는 간다 조국의 품으로」에서 화자가
사랑하는 친구여
이제 더 이상 봄은 기다리지 말자
우리 함께 역사의 봄은 찾아나서자
라고 말하는 그 봄은, 이미 명시적으로 표현되고 있듯. 억눌리고 빼앗긴 자들이 찾아 나서서 쟁취하지 않으면 안 되는 "역사의 봄"이다.
아 봄마저 길러 파는 저 무서운 손아귀가 손아귀가
겨울을 없애버린 시대에 겨울을 정복해버린 시대에.
진정한 인가의 봄은 어디에서 구할 까요 (「겨울 없는 봄」부분)
그런데, 봄마저 길러 파는. 그래서 한 겨울에도 겨울이 없어져버린 이시대에, 역사의 겨울과 역사의 봄이라는 상상력의 원리는 어떻게 유효한가? 한겨울에도 봄을 날라다주는 자본주이적 포식문화가 "풍요의 환상'을 최대한으로 키우고 있는 지금 "진정한 인가의 봄은 어디에서"구할까? '어디에서 구할까'는 동시에'어떻게 구할까'라는 질문이기도 하다. 이 질문이 제기되는 지점에서, 참으로 흥미롭게도 박노해가 그동안 번민하고 모색해온 어떤 새로운 길, 어떤 면모, 어떤 생각을 만나게 된다. 박노해의 변모, 혹은 그의 성숙을 보게 하는 중요한 지점이다. 「세발 까마귀」는 바로 그것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아직도 이렇게 묻습니다.'아직 사회주의자입니까?' 나는 정직하게 대답합니다. '예!' '아니오!' 당신은 쉽게 물을지 몰라도 나는 지금 온 목숨으로 대답하는 겁니다."라는 대목에 이어
자본주의가 삶의 본연이라면
사회주의는 삶의 당연이 아닌가요
삶의 본연을 긍정하지 않는 사회주의가 진보할 리 있겠습니다.
삶의 당연을 품에 안지 못한 자본주의가 진보할 수 있겠습니까.
이상을 갖지 못한 현실이 허망하듯 현실을 떠난 이상도 공허한 거지요
삶과 인간과 현실 변화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밝은 눈을 얻지까지
나는 '아무 주의자'도 아니고 동시에 '모든 주의자'입니다
자는 지금 분명히 '한 생각'을 다듬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양극단을 내 온 삶으로 끝간 데까지 밀고나가
정직하게 몇 번씩 목숨을 던져주며 처절하게 참구 정진해온
한 생각을 가다듬고 있습니다.
(중략)
굳이 당신이 요구하는 '---주의'의 사고틀로 말하라면 나는
비사회주의, 탈자본주의, 친생태주의, 친여성주의라고 해두지요
그래서 나의 대답은 "예" "아니오"인 것입니다.
(「세발 까마귀」부분)
그는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제3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그는 고구려 무덤 벽화에 나오는 '세발 까마귀'의 이미지로 이 제3의 길을 표현한다. "저 세 번째 발은 두 발의 긴장으로 새로운 하나를 낳는/ 다시 시작하는 발, 미래의 발, 창조의 발. 없음으로 있는 발/두 발 속에 저리 분명한 또 하나의 발이 있어 내일을 여는 겁니다./치열한 두 발의 맞섬과 교차 속에 참된 진보의 발이 나오는 겁니다."
나는 흑이면서 백이고, 흑과 백의 양극단의 떨림 사이에서
온몸으로 밀고 나오는 까마귀의 세 번째 발입니다
중간 잡기가 아닙니다 흑백 섞은 회색이 아닙니다
흑과 백 사이의 오색 찬란한 무지개 빛이고 푸르른 사내들입니다
까악-
핏빛 첫 울음으로 어둠은 찢고
시뻘건 아침 햇덩이 속에서 검은 점 하나로 날아오는 세발 까마귀
다시 시작하는 발, 또 하나의 발, 우리 희망의 발이여!
(「세발 까마귀」 결미 부분)
그것은 그가 자신의 실패한 부분을, 과오와 맹목을, 치열하게 반성하면서 "한 번은 다 바치고 다시" 시작하기 위해"참구 정진"하는 과정에서빚어낸 세 번째 발이고 희망의 길이다. 그 길에서 그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큰 이름으로 분류되는 두체제 사이의 긴장을 포착하고, 순환의상상력과 역사적 상상력을 결합하며, 구조와 인간을 동시에 고려하면서 "콩 세알의 삶"."삼전의 뜨거움 삼전의 푸르름/셋 나눔의 희망을"(「셋나눔의 희망」)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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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3.29
  • 저작시기2004.0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45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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