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플라톤 (Platon B.C 428 - 308): 서구 문명의 일등항해사
1. 플라톤의 철학개요(哲學槪要)
2. 플라톤의 인식론: 비유에 의한 설명
3. 플라톤의 이데아: 플라톤 철학의 에센스
4. 플라톤의 도덕철학: 플라톤이 제시하는 善과惡
6. 플라톤의 세계와 그 동인: 철학의 영원한 방향타..
2.아리스토텔레스 (Aristoteles B.C 384 ~ 322)
아리스토텔레스 3편 그의 형이상학
아리스토텔레스 4편 그의 현상학과 인간학
Aristotelles 5 편 그의 윤리학
...
1. 플라톤의 철학개요(哲學槪要)
2. 플라톤의 인식론: 비유에 의한 설명
3. 플라톤의 이데아: 플라톤 철학의 에센스
4. 플라톤의 도덕철학: 플라톤이 제시하는 善과惡
6. 플라톤의 세계와 그 동인: 철학의 영원한 방향타..
2.아리스토텔레스 (Aristoteles B.C 384 ~ 322)
아리스토텔레스 3편 그의 형이상학
아리스토텔레스 4편 그의 현상학과 인간학
Aristotelles 5 편 그의 윤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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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을 이미 그 본성 속에 내포하고 있는 경우에는 중용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들은 본질적으로 악하며 과다와 과소를 막론하고 그러한 행동들을 한다는 것은 항상 잘못된 것이다.
5 ) 심사숙고와 선택
이성적 영혼에는 두 종류의 이성적 기능이 존재한다. 하나는 이론적인 것으로서 우리에게 확고한 원리나 철학적 지혜를 제공해 준다. 다른 하나는 실천적인 것으로서 우리가 우리 자신을 발견하는 특수한 상황 하에서 이루어지는 우리의 행동에 대해 이성적인 지침이 된다. 이는 실천적 지혜이다. 이성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는, 만일 이 이성적 요소가 없다면 인간은 결코 어떠한 이성적인 능력도 소유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강조하였다. 즉 비록 인간은 “올바른” 행동을 위한 생득적인 능력(가능성)을 갖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하여 “자연적으로” 올바르게 행위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의 삶은 무한한 수의 가능성과 흡사하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생각하였다. 선(善)이란 인간 내부의 “가능태”이다. 그러나 도토리가 거의 기계적인 확실성을 가지고 도토리나무로 되는 것처럼 인간도 자신의 내부에 잠재되어 있는 것을 그것의 현실태로 계발해야 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그가 행할 바를 알아야 하고 그것에 관해 심사숙고해야 하며 그것을 행할 수 있도록 선택해야 한다. 선을 아는 것만으로도 선을 행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플라톤이나 소크라테스와는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식 이외에도 심사숙고에 의한 선택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므로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도덕적 행위의 기원-그것의 목적인(目的因)이 아니라 작용인(作用因)-은 선택이며, 선택의 기원은 갈망과 목적에 대한 견해를 가진 이성적 추리이다.” 이성이 없다면 “선택”도 없다. 따라서 “지성 그 자체는 아무것도 움직이게 하지 못한다. 그러나 목적을 지향하는 실천적인 지성만이 어떤 것을 움직이게 할 수 있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할 수 있었고 그것이 전혀 부당한 것이 아니라고 그는 생각하였다.
도덕성과 도덕적 선택은 인간의 책임 의식을 전제로 한다. 만일 어떤 행동 양식은 바르고 어떤 행동 양식은 그르다면, 왜 어떤 인간이 올바른 방식 대신에 잘못된 방식으로 행위하는가의 이유를 밝히는 것은 필수적이다. 만일 우리가 칭찬을 하거나 비난한다면, 다시 말해 덕을 찬양하고 악덕을 비난할 수 있다면, 인간은 실로 진실되게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가정에 따르면, 어떤 인간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행위는 “자발적인” 행동이다. 그러므로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비자발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그 정상이 참작되며, 때로는 동정이 주어지기도 하지만 자발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칭찬과 비난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자발적인 행위와 비자발적인 행위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것에 의해 구분된다고 한다. 즉 “비자발적인” 행위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 의해 책임이 없다. ① 그 행위는 특수한 상황들에 대한 무지에서 행해졌다. ② 혹은 외적 강제의 결과이다. ③ 혹은, 더 큰 죄악을 피하기 위해 행해졌다. 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했다. “자발적인” 행위의 경우는 행위자에게 책임이 있다. 왜냐하면 그 행위는 위의 세 가지 조건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6 ) 덕론(德論)
우리는 이미 아리스토텔레스가 덕을 인간에게 고유한 기능의 수행으로서 또한 극단간의 중용으로서 대체적으로 정의하는 것을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덕의 개념을 인식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각각의 덕목을 여러 감정들에 대한 이성적 통제의 산물로 고려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우리는 인간 행동의 모든 측면들을 결합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 인간의 본성은 이성적인 측면만으로 구성되지 않으며 식물적인 면과 감각적인 면도 포함된다. 덕은 이러한 본성상의 여러 능력들에 대한 거부나 부정을 의미하지 않는다. 도덕적인 인간은 자신의 모든 능력들, 즉 육체적인 면과 정신적인 면 모두를 사용한다. 하나는 “지적(知的)” 기능이며 다른 하나는 “도덕적” 기능으로서 그 각각은 나름대로의 덕을 가진다. 따라서 지적인 덕과 도덕적인 덕들이 있게 되는 것이다.
지적인 덕은 철학적 지혜와 오성인데 그 덕의 발생과 성장은 교육과 학습에 기인한다. 도덕적인 덕은 습관의 결과로서 나타나게 되며 여기서 윤리학(ethike)이라는 명칭이 나오는데, 이 명칭은 “습관(ethos)이라는 단어의 파생어이다.” 모든 도덕적 덕들은 학습되어야 하며 또한 실천되어야 한다. 그 덕들은 행동을 통해서만 덕으로 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정의로운 행위들에 의해 정의롭게 되며 질서 있는 행위에 의해 절제를 실현하고, 용기 있는 행위에 의해 용기를 실현”하기 때문이다. 도덕적인 덕들 중에서 “기본적”인 것들은 용기와 절제와 정의와 지혜이다. 이 덕들 이외에도 아리스토텔레스는 분수에 맞는 재물의 사용, 관용, 우정, 자중과 같은 덕을 고려하였던 흔적이 있다. 비록 그는 이성의 중심 기능을 실천적이며 도덕적인 행동에 대한 지침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지만, 결론적으로는 철학적 지혜가 실천적 지혜보다 우위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즉 명상(contemplation)은 인간을 보다 깊게 행복으로 안내한다는 것이다.
7 ) 명상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것처럼, 행복이 우리에게 고유한 본성에 따라 행동할 때 생겨나는 것이라 한다면, 행복은 우리의 최고 본성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가 이미 보았던 것처럼 이러한 행위는 명상적인 것이다.” 이 행위가 최상의 것인 이유를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설명하였다. “왜냐하면 이성은 우리의 내면에서 최상의 것일 뿐 아니라, 이성의 대상도 인식 가능한 대상 중에서 최성의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명상은 “가장 연속적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보다도 더 연속적으로 진리에 관해 명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행복이 그것과 결부된 쾌락을 내포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철학적 지혜의 행위들은 가장 환희에 찬 덕행임에 틀림없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생각을 철학적으로 신념하였다.
5 ) 심사숙고와 선택
이성적 영혼에는 두 종류의 이성적 기능이 존재한다. 하나는 이론적인 것으로서 우리에게 확고한 원리나 철학적 지혜를 제공해 준다. 다른 하나는 실천적인 것으로서 우리가 우리 자신을 발견하는 특수한 상황 하에서 이루어지는 우리의 행동에 대해 이성적인 지침이 된다. 이는 실천적 지혜이다. 이성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는, 만일 이 이성적 요소가 없다면 인간은 결코 어떠한 이성적인 능력도 소유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강조하였다. 즉 비록 인간은 “올바른” 행동을 위한 생득적인 능력(가능성)을 갖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하여 “자연적으로” 올바르게 행위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의 삶은 무한한 수의 가능성과 흡사하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생각하였다. 선(善)이란 인간 내부의 “가능태”이다. 그러나 도토리가 거의 기계적인 확실성을 가지고 도토리나무로 되는 것처럼 인간도 자신의 내부에 잠재되어 있는 것을 그것의 현실태로 계발해야 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그가 행할 바를 알아야 하고 그것에 관해 심사숙고해야 하며 그것을 행할 수 있도록 선택해야 한다. 선을 아는 것만으로도 선을 행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플라톤이나 소크라테스와는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식 이외에도 심사숙고에 의한 선택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므로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도덕적 행위의 기원-그것의 목적인(目的因)이 아니라 작용인(作用因)-은 선택이며, 선택의 기원은 갈망과 목적에 대한 견해를 가진 이성적 추리이다.” 이성이 없다면 “선택”도 없다. 따라서 “지성 그 자체는 아무것도 움직이게 하지 못한다. 그러나 목적을 지향하는 실천적인 지성만이 어떤 것을 움직이게 할 수 있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할 수 있었고 그것이 전혀 부당한 것이 아니라고 그는 생각하였다.
도덕성과 도덕적 선택은 인간의 책임 의식을 전제로 한다. 만일 어떤 행동 양식은 바르고 어떤 행동 양식은 그르다면, 왜 어떤 인간이 올바른 방식 대신에 잘못된 방식으로 행위하는가의 이유를 밝히는 것은 필수적이다. 만일 우리가 칭찬을 하거나 비난한다면, 다시 말해 덕을 찬양하고 악덕을 비난할 수 있다면, 인간은 실로 진실되게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가정에 따르면, 어떤 인간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행위는 “자발적인” 행동이다. 그러므로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비자발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그 정상이 참작되며, 때로는 동정이 주어지기도 하지만 자발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칭찬과 비난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자발적인 행위와 비자발적인 행위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것에 의해 구분된다고 한다. 즉 “비자발적인” 행위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 의해 책임이 없다. ① 그 행위는 특수한 상황들에 대한 무지에서 행해졌다. ② 혹은 외적 강제의 결과이다. ③ 혹은, 더 큰 죄악을 피하기 위해 행해졌다. 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했다. “자발적인” 행위의 경우는 행위자에게 책임이 있다. 왜냐하면 그 행위는 위의 세 가지 조건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6 ) 덕론(德論)
우리는 이미 아리스토텔레스가 덕을 인간에게 고유한 기능의 수행으로서 또한 극단간의 중용으로서 대체적으로 정의하는 것을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덕의 개념을 인식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각각의 덕목을 여러 감정들에 대한 이성적 통제의 산물로 고려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우리는 인간 행동의 모든 측면들을 결합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 인간의 본성은 이성적인 측면만으로 구성되지 않으며 식물적인 면과 감각적인 면도 포함된다. 덕은 이러한 본성상의 여러 능력들에 대한 거부나 부정을 의미하지 않는다. 도덕적인 인간은 자신의 모든 능력들, 즉 육체적인 면과 정신적인 면 모두를 사용한다. 하나는 “지적(知的)” 기능이며 다른 하나는 “도덕적” 기능으로서 그 각각은 나름대로의 덕을 가진다. 따라서 지적인 덕과 도덕적인 덕들이 있게 되는 것이다.
지적인 덕은 철학적 지혜와 오성인데 그 덕의 발생과 성장은 교육과 학습에 기인한다. 도덕적인 덕은 습관의 결과로서 나타나게 되며 여기서 윤리학(ethike)이라는 명칭이 나오는데, 이 명칭은 “습관(ethos)이라는 단어의 파생어이다.” 모든 도덕적 덕들은 학습되어야 하며 또한 실천되어야 한다. 그 덕들은 행동을 통해서만 덕으로 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정의로운 행위들에 의해 정의롭게 되며 질서 있는 행위에 의해 절제를 실현하고, 용기 있는 행위에 의해 용기를 실현”하기 때문이다. 도덕적인 덕들 중에서 “기본적”인 것들은 용기와 절제와 정의와 지혜이다. 이 덕들 이외에도 아리스토텔레스는 분수에 맞는 재물의 사용, 관용, 우정, 자중과 같은 덕을 고려하였던 흔적이 있다. 비록 그는 이성의 중심 기능을 실천적이며 도덕적인 행동에 대한 지침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지만, 결론적으로는 철학적 지혜가 실천적 지혜보다 우위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즉 명상(contemplation)은 인간을 보다 깊게 행복으로 안내한다는 것이다.
7 ) 명상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것처럼, 행복이 우리에게 고유한 본성에 따라 행동할 때 생겨나는 것이라 한다면, 행복은 우리의 최고 본성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가 이미 보았던 것처럼 이러한 행위는 명상적인 것이다.” 이 행위가 최상의 것인 이유를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설명하였다. “왜냐하면 이성은 우리의 내면에서 최상의 것일 뿐 아니라, 이성의 대상도 인식 가능한 대상 중에서 최성의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명상은 “가장 연속적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보다도 더 연속적으로 진리에 관해 명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행복이 그것과 결부된 쾌락을 내포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철학적 지혜의 행위들은 가장 환희에 찬 덕행임에 틀림없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생각을 철학적으로 신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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