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지방의 탈춤의 유형과 특징 비교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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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들어가며

Ⅱ. 탈춤의 연원

Ⅲ. 탈춤의 기원과 유래

Ⅳ. 각 지방별 탈춤의 종류 및 특성 비교분석
1. 북부지방
1) 봉산탈춤
2) 강령탈춤
3) 함경남도의 북청사자놀음
2. 중부지방
A. 영서지방(서울, 경기 지역)
1) 양주별산대놀이
2) 송파 별산대 놀이
3) 남사당의 덧뵈기
B. 영동지방
1) 경상북도의 하회별신굿 놀이
2) 강원도의 강릉 관노가면극
3. 남부지방
A. 오광대 놀이
1) 통영오광대놀이
2) 고성오광대놀이
3) 가산 오광대 놀이
B. 들놀이(야유)
1) 수영 야류
2) 동래 야류

Ⅵ. 결론

본문내용

사를 지낸 후 불태우며 액운을 쫓고 행운을 기원했다. 동래야류은 점풍행사(占豊行事)인 줄다리기 뒤에 이긴 쪽의 축하행사로 행해지며, 가면극 자체는 종교적 행사라기보다는 다분히 한량놀이로서 민중의 축전행사로서의 오락적 성격이 뚜렷하다. 그러나 수영야류은 동제(洞祭)에 이어 거행되며, 놀이내용 속에 사자춤이 들어 있어 벽사진경의 신앙적 성격을 갖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놀이내용은 제1과장 양반춤, 제2과장 영노놀이, 제3과장 할미.영감놀이, 제4과장 사자춤으로 구성되어 있다.
2) 동래 야류
동래야류는 정월 대보름의 상원(上元)놀이를 원칙으로 하고 있되 유동성을 가졌다. 왜냐하면 동래에는 예전부터 큰줄다리기가 유명한데, 동래야류이 이 줄다리기와 밀착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큰줄다리기는 해운대 방향의 동부와 구포 방면의 서부로 나누어 동부 쪽은 숫줄을, 서부 쪽은 암줄을 당기며 사흘 동안 승부를 겨루는 것이다. 이 줄다리기를 13일 시작하면 15일에 끝마치게 되어, 이긴 편 주관하에 15일에 동래야류을 연행할 수 있으나, 줄을 15일날 당기기 시작하면 17일에 연행하게 된다. 그리고 때로는 15일에 가면극을 먼저 연행하고 줄을 당기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동래야류를 공연하기에 앞서 삼백여 명이 참가하는 길놀이를 거행했다. 놀이는 세병교에서 출발하거나 안락동 쪽에서 출발해 시장터까지 행진했다. 놀이패가 놀이마당인 시장에 도착하면, 놀이꾼뿐만 아니라 구경꾼도 함게 음악반주에 맞추어 군무를 추며 놀았다. 이때 구경꾼들은 각자 가면을 준비했다가 착용하고 춤을 추었다. 가면이 없으면, 솥 밑바닥의 검댕을 칠하고 춤을 추었다. 놀이장소는 원래 동래시장 앞이지만, 지금은 전수회관 놀이마당에서 공연하고 있다.
놀이내용은 제1과장 문둥이춤, 제2과장 양반춤, 제3과장 영노놀이, 제4과장 할미,영감놀이로 구성되어 있다. 1965년 제6회 전국민속경연대회에 나갈 당시에는 양반과장과 할미,영감과장만을 공연했는데, 그 이후 문둥이과장과 영노과장이 복원되었다. 동래야류은 수영야류에서 유래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영야류에는 없는 문둥이과장이 있고, 수영야류에는 있는 사자춤과장이 없다.
Ⅵ. 結論
이상으로 각 지방별 탈춤의 특성에 대해 살펴 보고 이를 비교 분석 해 보았다. 탈춤의 변천 과정을 보면 도시로의 이행과정에서 탈춤의 주도층 내지 후원층으로 상인이나 이속이라는 새로운 계급이 등장되면서 탈춤은 새로운 단계로 들어선다. 보다 폭넓게 현실적으로 삶아가면서 정치, 사회경제적 감각에 민감했던 상인이나 이속이 그들의 근대적인 이념이나 생활경험을 새로운 예술욕구로서 표현하게 되면서 탈춤은 근대적인 것에서 일대 변혁을 겪게 되었다. 이것은 긍정적인 면일 것이고, 농촌에서 명연희자(名演戱者)의 차출 및 유량 연예인화, 농촌에서의 탈춤을 공백화한 것은 부정적인 면일 것이다.
탈춤을 살펴보면 연희자가 관중의 한 사람으로서 등, 퇴장하고 극중인물이 관중에게 말을 걸거나 직접요구하기도 하며 관중도 기회 있을 때마다 연희자의 극중행동에 간섭하면서 능동적으로 개입하기도 하고 신이 나면 탈판속으로 뛰어들어 군무를 이루기도 한다. 극중인물이이와 같이 관중과 같은 위치에 있을 뿐만 아니라 놀이판 자체가 곧 극중 장소이기도 하다. 따라서 탈춤은 관중이 실제로 생활하는 생화공간에서 흔히 주어지는 사건을 내용으로 한 연희임을 알 수 있다. 연희의 장소는 그들의 삶의 현장이고 연희의 시간은 삶의 바로 현재인 것이다. 요컨데 탈춤은 생활의 일부이며 생활이 또한 놀이의 일부가 되는 일치성이 있어서 연희를 한다기보다는 그것으로 생활을 한다는 것이 더욱 정확한 말이 된다. 이를테면 생활로서의 연희이며, 연희로서의 생활이자 생활의 한 과정으로서의 연희했을 뿐인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탈춤은 민중의 실제적인 삶의 모습을 놓고 한데 어울려 논다는 뜻에서 "대동놀이"라는 성격을 분명히 지니고 있다. 대동놀음으로서의 축제판인 것이다. 이러한 축제는 인습적인 타부를 깨뜨리며 전도된 가치를 행동으로 성취하려는 반란이 그 주지가 되어있다. 거기에는 공동의 적을 퇴치하고 공동체적 삶을 옹위하며 그 공감대를 일상 생활선상에서 확충하고자 하는 민중의 의지를 담고 있다. 탈춤은 공동체의식의 공유와 그 실현이라는 배경아래서 진행되어 왔고 탈춤에서의 공동체 의식은 민중들의 실제 생활선 상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수 있다.
농사를 위주로 하는 그들의 노동생활은 마땅히 연희를 필요로 하였고 그러한 연희를 통해 그들은 반복적인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아울러 삶의 고통이나 나아가 사회적인 억압에서 해방될수 있었다. 그러나 단순히 소비적인 유흥거리 일 수가 없었고 한바탕 놀아댐으로서 노동생산성을 드높이는 재생산의 틀이자 삶의 지혜였다. 아울러 풍농을 비는 그들의 연희는 풍농을 저해하는 적을 공격함으로써 행사될 수 있는 것이어서 하나의 투쟁의 방식이기도 했다. 18세기 이후 도시의 대두와 더불어 근대적인 초기 자본주의 사회로 이행되면서부터 서민 예술의 전반적인 발전추세와 병행하여 탈춤도 그 모습을 달리하게 된다. 농촌에서의 탈춤은 연희의 생산자와 수요자가 같은 마을이라는 동일한 생활권 내에 있었다. 생활내용이 엇비슷하고 동질적인 만큼 연희의 내용이나 표현, 그리고 그 유통구조의 폐쇄성- 오히려 공동체서을 순수하게 유지케 하면서 확고히 주는 일면도 있음-을 가지게 되고 도시에서는 개방적인 집단구조에서의 탈춤이라는 이중고조가 공존하게 된다.
또한 도시에서의 탈춤 그 자체에 있어서도 제한을 두게 되어, 연희집단이 개방성 문제에서 볼때는 오히려 폐쇄성을 지니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것은 농촌에서의 탈춤이 쇠퇴해간 이유이다. 농천에서의 탈춤의 쇠퇴 이유로는 도시에서의 탈춤의 부정적인 영향만이 지적될 수는 없고 또한 사회경제 구조의 변천에 따른, 역사적으로 필연적인 귀결이라고 만 생각할 수도 없다. 역사단계에 있어서의 필연성 때문이라기보다는 농촌에서의 탈춤 담당층이 공동체의식과 그들의 문화창조 전승력을 의도적으로 파괴당할 수밖에 없도록 제촉한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역사적 불건전성 내지 비정상이 더욱 크게 작용하고 있음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키워드

탈춤,   봉산,   사이버,   ocu,   감상문,   가면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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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4.11
  • 저작시기20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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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246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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