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의 노사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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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스웨덴 모델 발생배경

1. 현재 스웨덴

Ⅱ. 스웨덴 모델의 전개
2) 스웨덴 노동운동사
1. 19세기 말 - 1932년 사회민주당 집권 전까지
2. 32년 사민당 집권 - 1970년대 초까지
3. 70년대 이후

Ⅲ. ‘스웨덴 모델`의 특징
1. 스웨덴식 노동정치
2. 스웨덴식 노사관계

Ⅳ. 스웨덴 모델의 쇠퇴
1. 스웨덴모델에 내재된 문제점
2. 노동운동의 대응
3. 자본의 대응

본문내용

권화로 시작하여 해외 직접투자의 증대를 통한 세계화, 그리고 코포라티즘 정치경제 제도의 해체로 이어졌다. SAF는 1990년대에 들어서서 그 목표가 스웨덴모델의 수정이 아니라 해체였음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1990년 2월 SAF의 의장 로린(Ulf Laurin)은 "스웨덴모델은 이미 죽었으며," '회귀'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SAF는 살트쉐바덴 협약 이후 줄곧 견지해 오던 정당정치로부터의 중립을 벗어나 여론형성과 로비의 주체로 등장했다. 1970년대에 LO가 계급정치를 주도했다면, 1990년대 이후 SAF는 탈코포라티즘과 시장화를 위한 정치, 즉 노사관계의 탈정치화를 위한 정치의 전면에 부상한 셈이다.SAF를 임금협상체계의 분권화로 선회시킨 역사적 사건은1980년의 '대규모 갈등'이었다. 1980년 임금협상 과정에서 SAF는 공공부문 노조 파업(약 1만 4천 명)과 LO 노조의 파업(약 10만 명)에 대응하여 5월 2일 대규모 직장폐쇄 조치(약 75만 명 대상)를 단행하였다. SAF의 목표는 공공부문 노조 길들이기를 통한 국제 경쟁력 제고로 요약된다. SAF는 보수당 정부에게 주로 지방정부의 공공지출 삭감과 사회보장비용의 축소를 요구했다. SAF의 의장, 니콜린(Curt Nicolin)이 직장폐쇄 조치의 성격을 "미래를 위한 투자"로 규명한 바 있듯이, SAF는 이를 통해서 스웨덴모델에 내재된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수정하고자 했다. 그러나 대규모 파업은 SAF의 실패로 막을 내렸다. SAF의 요구에 의한 보수당 정권의 개입으로 체결된 타협조차도 공공부문 노조에게 사부문 노조 임금의 상승을 100% 보상했기 때문이다. 1980년 '대규모 갈등'은 SAF에게 소득정책에 대한 회의와 함께 직장폐쇄는 유효한 수단이 될 수 없다는 교훈을 안겨 주었다. 또한 SAF 내에서는 임금협상체계의 분권화를 주장해 온 세력, 즉 VF의 입지가 강화되었다. 1982년에 SAF는 VF의 강력한 주장으로 정관을 개정하여 임금협상과 직장폐쇄에 대한 소속 연합들의 독립성을 인정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1983년에 VF는 금속노조연맹과 단독으로 단체협약을 체결함으로써 1956년부터 지켜 오던 중앙임금협상체제를 와해시켰다.사실, 1975년부터 SAF 내에서는 임금협상체계의 분권화로 LO의 정치력을 무력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으나, 1976년 보수당 정권의 등장으로 이슈화되지 않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1980년에 보수당 정권하에서 벌어진 대규모의 직장폐쇄 조치가 실패로 마감되고 1982년에는 사민당이 재집권에 성공하자 SAF는 분권화로 노선의 방향을 틀기 시작했던 것이다. SAF는 1990년대 이후에도 줄곧 임금협상체계의 분권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1990년에 중앙임금협상을 재개하기 위한 사민당 정부의 제안을 거부하였고, 1998년에는 '성장연합'의 결성을 거부했다. '신 살트쉐바덴'으로 회자된 성장연합을 위한 협상에서 LO는 누진세율, 임금협상체계(덴마크 방식을 제안), 유럽화폐연합 가입, 노동법 등의 이슈에서 상당히 양보를 했음에도 SAF는 최종 단계에서 이를 거부했다.임금협상체계의 분권화와 병행하여 스웨덴의 자본은 1980년부터 투자기지와 활동 거점을 대거 해외로 이전시켰다. 1980년 이후 스웨덴의 대기업, 특히 다국적 기업들은 포디즘 생산방식을 채택해 온 산업을 중심으로 생산기지 및 활동 거점을 대거 해외로 옮겼다. 1977년부터 해외 직접투자는 감소했으나, 공교롭게도 '대규모 갈등'이 발생한 1980년부터 해외 직접투자는 급등 패턴을 보여 7년 간 5배나 증가했다. 스웨덴 다국적 기업의 해외 고용 비율은 1962년에 12%이었으나, 1978년에는 26% 그리고1987년에는 37%로 증가했다. 다른 조사에 의하면, 1996년에 스웨덴 25대 대기업 중에서 12개 기업이 판매의 90% 이상을 해외에서 올리고 있다. 이들 중 8개 기업은 고용의 3/4 이상을 해외에서 충원하고 있으며, 그 다음 7개 기업에서는 해외 고용 비율이 반을 넘기고 있다. 스웨덴 자본의 세계화는 서유럽 국가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스웨덴의 자본은 1990년대 전반에 세계에서 가장 많이 유럽의 기업들을 인수했다. 미국 기업들이 사들인 수치의 두 배를 초과할 정도였다. 스웨덴의 다국적 기업들은 심지어 세계화 전략을 정치적 협상 카드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에 여러 차례에 걸쳐 본사를 해외로 이전시킬 것이라는 정보를 흘림으로써 사민당 정부 및 노조를 압박한 바 있다.1990년대에 SAF는 더 나아가 스웨덴모델의 정치경제 틀인 코포라티즘 자체를 해체하는 작업에 돌입했다. SAF는 여론형성과 로비와 같은 정치적 수단을 구사하며 정치체제를 '이익집단 다원주의'(intressegroup-pluralism)로 전환시키고 있는 것이다. 1990년에 SAF 의장은 SAF 활동의 핵심은 '이념과 여론형성'이며 '체제 변혁'의 필요성을 천명했다. 1991년에 SAF는 일방적으로 중앙지역지방 정부의 각종 행정 기관 및 위원회에서 약 6,000명에 달하는 대표를 철수시켰다. SAF의 요구에 의해 보수당 정부는 1992년에 행정기관에서 조직 대표의 참여를 배제하고, 이를 조직의 이익을 대변하는 개인들로 대체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헬만손 그룹의 연구에 의하면, 탈코포라티즘의 결정 이후 1997년까지 '국가 행정기관'(statliga verkstyrelser)에 참여한 이익대표의 숫자는 3% 정도가 감소했을 뿐이며, 이러한 추세는 이미 1980년 이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회복지 부문과 노동시장 부문에서 탈코포라티즘의 현상은 최근 들어 급속히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노동시장 부문에서 LO는 1980년에 이익대표 구성원의 42%를 차지했는데, 이 수치는 1997년에 20%로 줄어들었다. SAF의 대표도 3%로 줄었다. SAF 및 거대 기업들이 막강한 재력을 바탕으로 정치력을, 여론형성과 국가 조직에 대한 로비에 집중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노동 정치경제 부문에서의 탈코포라티즘은 국가 조직과의 연계를 통해서 정치력을 행사해 온 LO에게 결정적 타격을 입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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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4.12
  • 저작시기2004.0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46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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