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목회의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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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목회환경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2. 정보화 시대의 목회자
1) 목회 환경의 변화에 따른 순기능
2) 목회 환경 변화에 따른 역기능

3. 멀티미디어 시대에 따른 목회자의 역할

4. 정보화 시대의 목회자

본문내용

해서는 안될 것이다.
성서를 하이퍼 텍스트로 옮기는 주체가 다름아닌 교회라는 것을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이때 교회는 성서가 지닌 공시성을 강조하지 않으면 안된다.결국 파피루스시대나 멀티미디어의 시대나 하나님의 말씀은 책임있게 담당해야 하는 주체는 교회뿐이다.여기에서 교회의 시대적 과제가 무엇인지 분명히 드러나는 것이다.
이제까지 살펴본 대로라면, 우리가 멀티미디어를 교회의 매체로 수용할 때 신학적 인식론과 해석학의 대변혁은 필연적이다. 멀티미디어의 선택은 단순히 복음전달을 중립적으로 가능하게 해주는 ‘도구’의 활용 차원이 아니라, 신학적 ‘해석’에 대한 문제까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변화는 또다른 의미에서의 종교개혁을 의미한다. 지금까지의 해석학은 저자와 독자의 관계성에 집중한 나머지 시대적으로 변해왔던 전달매체가 미치는 영향은 신중히 취급하지 못한것으로 보인다.그러므로 교회가 멀티미디어를 수용한다는 것은 교회와 신학이 새로운 방식으로 자신을 이해하려는 의지의 결단임을 알아야 한다. 단순히 버다 편리하고 효율적으로 대치한다는 차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교회는 새로운 개념의 공동체로 변화하게 될 것이고, 하나님에 대한 공동체의 인식방법과 체험의 양상들이 전과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따라서 기존의 매스커뮤니케이션 미디어에 의한 사고의 방법과 조직의 형태를 탈피한 새로운 존재 양식이 요청된다.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회의 전통교의와 예배, 선교 및 교육에 대한 신학적 해석이 새롭게 시도되어야 한다.이러한 노력은 기성교회의 입장에서 볼때 자기 이해의 새로운 차원이 아닐 수 없다. 달리말하면, 교회의 개혁이 자연적으로 일어나도록 요청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멀티미디어의 교회적 수용의 문제는 단순히 교회 전산화의 차원이 아니므로 교회와 신학의 내적변화를 맞이하기 위한 새로운 신학적 연구가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요청들에 대한 적극적 준비없이 의욕만 가지고 멀티미디어에 편승하게 되면 멀티미디어가 주는 신학적 충격을 걸러낼 겨를도 없이 그대로 흡수해 버림으로써 교회의 세속화와 문화의 마성화를 더욱 심화시킬 뿐이기 때문이다.(목회와 신학 1996년 1월 최인식 멀티미디어 시대와 교회의 신학적 과제)
우선 교회는 케뮤니케이션 공동체라는 정체성을 재확인해야 한다.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선포하며 이웃 죄인과 희생당하는 자들의 소리를 들어 기도로 예배로 찬송으로 하나님께 그리고 교회공동체와 이웃과 나누며 소통하는 교신 공동체라는 것이다.가령 교회의 공동예배는 입체적인 커뮤니케이션 과정의 창출이다.아마도 예배공동체의 활성화가 현대 뉴미디어시대에 대응하는 가장 원천적인 기반이 될것이다.교회의 기독교 교육과 사회교육의 활동도 이런 대응적 교신행위라고 생각한다.둘째, 교회는 뉴미디어의 질서에 직접 참여할 수 있다. 여기에서 두가지 방식이있다. 하나는 뉴미디어가 지배하는 언론통신 정보질서의 밖에서 비판적이고 저항적인 예언자적인 참여가 가능하며 나아가서는 대안적 케뮤니케이션 질서를 창출해 내는 것이다.이것은 변혁적 문화선교의 과제이다. 또 하나의 방법은 뉴미디어의 질서에 언론인으로서,또한 언론기관으로서 개입해 내부에서 개혁작업을 전개하는 것이다. 기독교회는 예언자적인 언론인을 육성, 훈련해 이 사명을 감당하게 하고 기독교 방송과 같은 언론사를 창출해 언론통신정보 질서를 내부에서부터 개혁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시민으로 하여금 문화행동, 즉 케뮤니케이션 행동의 주체가 되도록 일으켜 세우는 일이다.모든 시민을 뉴미디어에 적극적으로 비판적으로 대안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주체적 케뮤니케이션 활동가로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이 정책은 반드시 그리스도인만을 일으켜 세운다는 말이 아니다.모든 사람들을 주체로 일으켜 세운다는 세운다는 것을 의미한다.이것이 언론자유의 근원적인 의미이다.이러한 케뮤니케이션의 주체는 개인적 차원과 동시에 공동체적 차원을 통합한 것이다.(복음과 상황 1995년 3월호 김용복)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근본적이고 효과적인 대안을 생각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정답을 쉽게 말하기는 어렵다. 아마도 우리는 일생동안 그에 대한 대답을 생각하면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어느시대에나 그 시대의 악의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은 피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다만 한가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역사적으로 볼때 어떤 대안이든 그 시대의 교회가 힘을 발휘할 때 큰 효과를 발휘했다는 것이다.로마의 도덕적 변화도 결국 초대교회의 성장 결과였다. 종교개혁 시대 유럽의 변화나 웨슬리의 영국사회 변화등은 모두 개혁교회의 영적인 힘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물론, 엄밀히 연구해 보면 다른 변수들도 발견되겠지만, 적어도 시회의 악이 한 시기에라도 일소되는 일은 교회의 강력한 후원없이는 쉽지 않을 것이다.이것은 구약의 선지자들은 사회적 악의 원인을 종교의 부패에서 찾았던 것과 맥을 같이한다.마음이 하나님을 떠나니까 사회에 온갖 악이 자행되더라는 것이다.아마도 이 원리는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효력을 발휘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정보화 시대는 단지 그 옷을 갈아입는 것에 불과하다.그 실체는 역시 인간들의 사회라는 것이다.인간들의 사회가 그 근본에서 부터 변화하는 것은 역시 그리스도의 말씀, 성령, 교회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21세기를 대처하는 방안도 역시 교회를 바르게 세우는 일 밖에 없을 것이다. 바르게 선 교회에서 바른 교회를 받은 사람들이 각각 영역에서 활동할 때에만 모든 사회적 해악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 기술적인 해결책은 단기적으로는 구체적인 대안인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마치 미꾸라지를 손에 쥐려고 하는것처럼 문제의 해결은 우리의 손에서 빠져 나가고 말 것이다. 현대 정보화 사회의 문제는 바벨탑을 쌓았던 사람들이 지녔던 그 오래되고 근본적인 문제, 즉,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거부하고 오히려 사람의 이름을 내고 흩어짐을 면하려 하는 반역한 인간의 문제이다.그러므로 그 해결책도 근본적이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를 바르게 세우고 지키는 것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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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4.16
  • 저작시기20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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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246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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