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유 연구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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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그러나 그는 이 통일전선운동을 조직적으로 실천해보지도 못하고 체포를 당하게 되었다. 당재건의 전제로서의 좌익운동만이 일제식민시대의 당면한 해결과제인 민족해방운동에 기여한다면서 계급적으로는 부르주아지·지주 등을, 이념적으로는 민족개량주의자, 사회민주주의자 등을 모두 일제의 앞잡이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1930년 후반기에는 이재우는 부르주아지, 지주, 민족개량주의자, 사회민주주의자 등의 일부는 반제적인 요소를 일정하게 갖고 있다면서 이들로 민족해방운동 역량으로 포함시켜야 한다는 반일민족통일전선운동을 준비하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당신 합법적인 공산에서 사회주의 운동을 하던 조선중앙일보사의 인정식, 이우적 등을 반제반파쇼운동으로 포섭하려 하였고, 경성준비그룹은 정치적·경제적으로 반제반파쇼적 강령을 내걸었다. 이재유는 다만 이 시기 반일민족통일전선운동에 대한 지조는 좌익전선이 맡아야 한다는 주장하였다. 왜냐하면 좌익전선은 당재건의 전제로서의 위상을 갖고 있기 때문에 당이 존재하지 상황에서 반일민족통일전선운동의 지도는 좌익선전이 떠맡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또한 그는 반일민족통일운동사상을 전기하면서도 권력구상문제로서 노동소비에트 정권수립을 여전히 고수해야 한다고 보았다.
1936년 12월 25일 동지였던 최호극을 앞세워 잠복중이던 일제경찰들에게 체포됨으로써 그의 민족해방과 노동해방이 멈추게 되었다. 이재유는 1938년 7월에 언도받은 징역6년형을 공주감옥에서 다 채우지만 미전향자라는 이유로 청주보호교도소에 계속 수감되어 있다가 8·15 광복 약 10개월전인 1944년 10월 26일 41살 나이로 옥사하였다.
'노쇠한 흡혈귀 같은 자본주의', 그것도 '기형적인 경제적, 정치적 조건들'이 모든 사회적 신분적 관계에 속박된 식민지의 한 혁명가는 감옥 안에서 "사회적 생산력이 고도화되어 높은 수준의 물질적 생활을 영위하며 지배와 억압의 관계가 없고 국가권력이 사회구성원의 자유 의지에 의한 정치적 위윈회에 대체되고 가장 고급스런 예술적 생활을 자유롭게 선택하여 즐기며 남녀의 사랑이 끊이지 않고 현재 우리의 사색으로 상상할 수도 없는 진실한 일부일처제의 엄격함이 있는" 그러한 사회로의 이상을 가슴에 품고서 파쇼권력의 야만적이고 비인간적인 고문과 가혹한 인격적인 모멸이나 학대를 견뎌내었을 것이다.
"동무가 우리들에게 남기고 간 것은
혁명을 위해 살고
혁명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치고
혁명을 위해서 죽는 것이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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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04.04.21
  • 저작시기2004.0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47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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