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여왕마고>에 나타난 프랑스 종교개혁과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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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영화 <여왕마고>에 나타난 프랑스 종교개혁과 갈등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여왕마고>의 스토리

Ⅱ.<여왕마고>의 전쟁배경

Ⅲ. 프랑스 종교전쟁의 다양한 분석

1. 프랑스 종교개혁자 츠빌글리 vs 루터
2. 프랑스 종교개혁의 배경
3. 영화<여왕마고>로 보는 역사적 고찰

Ⅳ. 영화`여왕마고`의 감상소감 및 주관적 해석

본문내용

인간과 편견, 사랑과 관능을 동시에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본 영화이다.
감독 파트리셔는 묻는다. 무엇이 남았는가? 그는 긍정적인 음모, 학살과 쾌락의 밤, 광기어린 등장인물들의 양태를 뛰어난 연극적 수법과 심리적 굴곡을 부각시키는 표현주의적 화면을 통해 적나라하게 표현하는데 그가 말하는 것은 결국 16세기 프랑스 궁정에서 빚어진 역사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점에서 <여왕 마고>는 현대극이라는 것이다. '성 바르몰로뮤 축일'의 학살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 감독 파트리셔가 바라 본 현재의 세계였기에.
4,. 신-구교의 대립 베경
1559년 앙리 2세가 사고로 사망한 후 1598년 낭트 칙령이 나올 때까지 약 40년은 프랑스의 역사상 가장 극적인 기간이었다.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전쟁을 치루면서 격렬히 대치하고 있던 카톨릭과 신교도들은 종교적인 동시에 정치, 경제, 사회적 성격을 지닌 이 심각한 국가적 위기를 가장 두드러지게 만들었다. 앙리 2세 치세에 칼비니즘이 발달하고 수많은 귀족이 개종함으로써 1559년 왕국의 평화와 통일성은 직접적 위협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당시의 사고 방식으로는 한 국가 내에는 오직 하나의 종교, 그것도 군주의 종교만 존재해야 했기 때문이다. 1555년 독일에서 승리를 거두고, 카톨릭 국가와 프로테스탄트 국가가 제국 내에 공존하도록 만든 것은 바로 이러한 원칙이었다. 군주의 종교와 다른 것을 신봉하는 소수는 국가의 통일성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되어 마땅히 제거되어야 했다. 설사 소수가 어느 날 다수가 될 정도로 아주 강력하고 확실하다 할지라도, 그들은 적을 제거하기를 기다리면서 저항해야 할 것이었다. 바로 이 점에서 16세기 후반기의 프랑스를 분열시킨 갈등이 얼마나 끈질기게 지속되었는가를 알 수 있다. 소란스러운 군대에 의해서 빠른 속도로 잠잠해진 몇몇 사람들의 외진 목소리를 제외하고, 각 진영은 1561년 9월 포아시의 대화가 실패함으로써 양측의 화해란 불가능하다는 점이 확실해진 이후 적을 제거하는 이외의 다른 목적이나 해결책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Ⅲ 영화"여왕마고"를 본 나의 소감
이 영화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사료와 그리 큰 차이는 없었지만 원작이 알렉상드로 뒤마가 쓴"여왕마고",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극적으로 각색한 것을 볼 때 영화적 요소가 많이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샤를르9세의 죽음에 대해 보면 영화에서는 까트린느가 앙리를 죽이려고 사냥 책에 독을 묻혀 앙주에게 앙리의 집에 두도록 하였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그 책은 샤를르9세가 읽게 되고 어머니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는 사실을 안채 고통스럽게 죽어간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샤를르9세는 왕실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죄로 슬픔에 잠겨죽었다.
) 리차드 S. 던, "근대유럽의 종교전쟁시대 1559-1689", (藝文出版社,1986), p.37.
고 기록되어 있다. 샤를르는 실제로 허약하고, 상냥하며 미술을 애호하는 게으름뱅이
) 앙드레 모로아, "프랑스사"신용석 편,(弘盛社,1980),p.163
로 기록되어 있다. 그는 성 바톨레메 대학살이 있던 날 까트린느의 음모를 허락한 것에 대한 죄책감이 나약한 성격에 치명적으로 미쳤을 것이다. 실제로도 그는 임종을 맞는 순간에도 대학살에 대해 책임감을 느껴서 악몽과 환시에 시달렸다고 하며 죽는 순간에도 어머니를 외쳤다고 한다. 영화"여왕마고"에서는 왕의 모후 까트린느의 냉정함과 비정함을 표현하여 결국 샤를르9세가 죽어갈 때는 아들의 죽음 앞에 선 한 어머니의 모습을 대조시킴으로써 까트린느의 부질함을 질책하고 있다.
두 번째로 여왕마고에 대한 이야기이다. 알렉상드로 뒤마의 원작"여왕마고"에서는 여왕 마고의 슬픈 러브스토리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여왕마고라는 영화제목이 왜 붙었는지 의문스러울 정도로 그녀의 존재는 왕의 딸, 왕의 동생, 왕의 부인이라는 존재감만이 있을 뿐이다. 그녀의 사랑은 러브스토리가 아닌 성의 부도덕한 면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정략결혼을 한 만큼 마고는 자신의 정치적 이용가치를 잘 알고 있다. 애정 없는 형식적인 결혼이긴 해도 자신은 엄연히 왕가의 사람이고, 왕의 여동생이니 모후 카트린느처럼 직접적으로 정치에 개입은 못 해도 '앙리 나바르의 아내'로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개신교의 지도자 앙리 나바르의 아내'라야 하는 것, 즉 앙리가 살아 있어주어야 카톨릭도, 개신교도 자신을 쉽게 내쳐버릴 수 없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여자였다. 그러나 역사적 기록에서 마고에 대한 사실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그녀에 대한 자료는 찾기 어려웠다.
다만 그녀로 인해 앙리가 성 바로톨메 대학살 때 앙리 나바르가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를 죽이려는 사람들을 제지했기 때이라는 얘기만 있을 뿐이다.
세 번째로 까트린느의 음모에 대한 이야기이다. 까트린느는 자신이 짜놓은 그물에 잘못 걸려 아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증거를 태우려다 또 다른 음모를 생각해내며 "라 모르..."라고 나지막히 중얼거린다. 이 상황은 마고와 불륜에 빠진 개신교도 라모르의 사냥책을 까트린느가 독을 묻혀 자신의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 이 때 책에 쓰여 있는 라모르의 이름을 보고 왕의 죽음을 라모르에게 뒤집에 씌우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라모르는 역사기록에서 그의 자취를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따라서 개신교도이고 마고의 정부였다는 극적요소를 가미하기 위한 허구의 인물일 가능성이 크다.
영화"여왕마고"는 프랑스종교개혁을 잘 나타내 주는 영화 같다.
종교개혁이라는 주제가 다소 무겁고 어려운 소재를 골라 과제를 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또한 사료를 찾아본 바 사료와 크게 다른 바가 없어 더욱 어려웠다.
영화"여왕마고"는 영화 내에서 중심축 역할을 하는 인물이 딱히 보이지 않아서 허공에 붕 떠버릴 것 같아 2시간 30분이 무척 지루해져 집중할 수 없는 영화 같은데도 이 영화가 이토록 묵직한 이유는 신의 이름 아래 자행된 무자비한 '현실'이 명백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여왕 마고"를 보는 이유로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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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4.26
  • 저작시기2004.0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47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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