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 ~ 1940년대 한국 현대 문학사 요약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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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930 ~ 1940년대 한국 현대 문학사 요약 정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930 ∼ 45年 시

1930 ∼ 45年 소설

1930 ∼ 45年 희곡

1930 ∼ 45年 비평

1945 ∼ 50年 시

1945 ∼ 50年 소설

1945 ∼ 50年 희곡

1945 ∼ 50年 비평

본문내용

일 수는 없었다.
지난날 일본제국주의가 강요했던 조선연극문화협회 산하에서 자의건 타의건 그들에게 협력했던 극작가들은 과민한 자기 변모를 꾀하고 나섰다. 황국신민화 내지는 대동아공영권 형성을 위해 일익을 담당했던 내력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또한 1945년 12월까지 수많은 극단이 종전의 친일극단으로서의 과오와 속죄의식에서 벗어나려 명칭부터 바꾸기 시작했다.
8.15광복이 전해지자 다음날인 16일에는 조선학술원이 결성되고 18일에는 조선문학건설본부를 위시하여, 연극. 영화. 무용. 음악. 등도 앞을 다투어 협의회가 부랴부랴 결성되었다. 광복 이전의 일제치하에서 나름대로 친일을 했던 반일을 했건 간에 재빨리 변신을 도모함으로써 자신의 죄과를 씻어보려는 계산과, 남보다 앞질러 전면에 나섬으로써 사진의 존재를 알리려는 영웅심리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 시기의 작품을 발표한 극작가를 세 가지 형태로 구분할 수가 있는데, 그 첫째는 일본제국주의의 압정을 의식적으로 폭로하며 민족적 울분을 발산시키려는 적극적인 울분파와, 둘째는 자신의 친일적 작가경력에 대한 죄의식을 참회하기 위하여 부다 적극적으로 가담하려는 편승파와, 셋째로, 지금까지의 무명시대에서 일대 도약하여 새로운 실권자가 되기 위한 영웅주의자가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리얼리즘에 입각한 냉철한 희곡은 보기 드물었고, 역사적 현실에 입각한 진정한 민족적 역사의식을 자각한 작품은 볼 수가 없었다.
눈 여겨 볼만한 작가와 작품은 유치진의「대추나무」「北進隊」「黑龍江」, 김영수의「斷層」「銃」「閔中殿」, 오영진의「猛進事宅 愛事」「배뱅이굿」「風雲」, 김진수의「코스모스」「遊園地」, 김춘광의「대원군」「사랑과 人生」「미륵王子」등이 있다.
5년간의 발표된 작품들의 종합적으로 평가해보면 첫째는 해방이 가져다 준 기쁨이나 흥분을 여과시킬 여유도 없이 즉흥적인 발상이나 미정리상태의 감정의 분출에 흘렀고, 둘째, 피압박 약소민족이라는 우리 자신의 정치적, 문화적 취약점을 오히려 미화시키거나 당연시함으로써 자기합리화를 꾀하였고, 셋째 비참.암담.복수 등 일차원적인 비극성을 소화시키지 못한 채 승화시키지 못한 소재의 나열에 머물렀고, 넷째, 40년만에 처음 실감하는 자유와 해방, 민주주의와 주인의식을 관념적인 유희나 남용으로 상식화해버렸고, 다섯째, 사실주의적 희곡이나 연극의 실상이 무엇이며 그 미학적, 철학적 패턴의 접근도 찾지 못한 채 전근대적인 초기 자연주의적 표현에 급급한 나머지 새로운 역사의식에의 자각이나 각성에 미치치 못하였고, 여섯째, 역사의식과 사회의식에 눈을 뜬 극작가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구태의연한 연극대본을 작성하는 데 자기만족을 한 데서 한 걸음도 나오지 못했다는 점을 인지하게 된다. 희곡이 시나 소설과 다른 점은 바로 동시대의 관객과 만나야 한다는 운명론에 좀 더 투철했던들 우리는 그 거창하고도 진솔한 민족적 목소리를 극작가를 통해 크게 들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1945 ∼ 50年 ▶ 批評
해방문단의 비평사
1. 해방 1기 : 좌익 전횡기(1945.8∼1947.2)
일제치하 문예비평사의 근간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KAPF를 중심으로 한 좌우익의 논쟁과 대립에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논쟁과 대립이 소멸된 것은 자율적인 한계의식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보다 더 타율적인 거시었고, 문학 내의 원인보다는 정치적인 요인에 의한 것이었다. 결국 미해결의 미진함이 남아 있다고 생각했고, 그들은 항시 청산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해방으로 급전된 정국의 문단은 우선 지난날의 미해결점으로 그 출발점을 삼을 수밖에 없었다.
해방 1기 평론의 주된 관심테마는 해방문단의 당면문제를 규정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제1회 조선문학자대회 석상에서<결정서>로도 천명된 바와 같이 인민 위주의 국가 건설과 이에 바탕을 둔 민족문학의 수립, 일본제국의 잔재와 봉건주의의 청산, 국수주의 및 이들의 비호 하에 재생일 기도하는 세력의 제거, 민중과의 연결 실현 및 대중화, 과학적인 국어정책의 수립, 아동문학 및 농민문학의 육성 등이었다.
2. 해방 2기 : 좌우익 논쟁기(1947.2∼1948.8)
<문맹>의 구성원들 중 예맹파의 이기영. 한설야. 한효. 윤기정 등이 월북하게 되고 <문건>계의 이태준. 이원조. 임화. 오장환 마저 월북하게 되면서 좌익진영은 현저히 약화되었다. 그런 반면, 우익은 상대적으로 강세로 돌아서면서 민족진영 문화인의 총 결속을 위해 <전국문화단체총엽합회>를 결성하고 궐기대회를 가지며 결속을 강화해 나간다.
좌우익의 논쟁은 갈수록 치열해져가고 그 양상 또한 얽히고 설킨 모습을 보이는데 이들을 개인적인 논쟁과 집단적인 논쟁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일어난 것이 수위 <순수논쟁>이다. 순수논쟁은 2차에 걸쳐 일어나면서 집단적인 이론논쟁과 밀접하게 연결된 채 전개된다. 좌우익의 집단논쟁에서 좌익의 논리는 김남천.임화.오장환의 글이고 우익의 논리를 잘 드러낸 것은 김동리와 조지훈의 글이다.
3. 해방 3기 : 우의 정착기(1948.8∼1950.6)
이제 남한만의 단독정부수립, 대부분 좌익들의 월북, 몇몇 좌익의 전향 등으로 좌익은 현저히 약화되었으며 상대적으로 우익은 강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우익 문화인들은 정부의 미온적인 좌익 견제에 항의를 표시하기도 한다.
세계관과 문학관을 위해서 활발했던 해방 이후의 우리 문단의 비평활동은 이 무렵부터 논쟁의 열기를 잃고 초보적인 문제로 되돌아가게 된다. 새로 진주한 외세 또한 이데올로기에 대한 거부반응을 강압적으로 행사하기 시작했다. 49년 8월 창간된『문예』와 49년 12월 한국문학가협의회 결성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다. 우익에 의한 민족정신 양양의 깃발이 펄럭이고 반공문학의 기치가 비로소 드높여지기 시작한다. 우익은 이제 이론적 근거 모색을 위해 총력을 경주하게 된다. 김동리의 민족문학론 재론과 이헌구의 반공문학 제창은 이 시기의 새로운 가치 정립의 도정에 있는 것이고 조지훈은 고전과 전통에서 이론적 근거를 모색해보려 꾸준히 노력했다. 그리고 우익의 논리 속에 외국통치의 노예화정책에 반대해 총궐기해야 한다고 천명했던 소수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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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5.11
  • 저작시기2004.0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48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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