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철학과 철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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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세의 철학과 철학자들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중세철학의 시대구분 및 특징

(2)교부철학의 시대
1.교부철학시대의 주요문제들
2.아우구스티누스

(3)스콜라철학의 시대
1.신의 존재증명문제
2.토마스아퀴나스

(4)중세말기
1.일반적고찰-보편논쟁의 발생
2.보편 실재론
3.보편 명목론

본문내용

편 개념(universalis, 즉 플라톤이 생각한 idea의 개념과 같은 것)이 실재하는가 아니면 단지 명칭에 불과한 것인가라는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 자체에 관한 논의는 이미 스콜라 철학의 전성기 때로부터 등장한 것이지만 이것이 본격적인 하나의 논쟁으로 발전된 것은 중세 말의 오캄에 이르러서이며 이 논쟁은 결국 중세가 막을 내리고 근대로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보편 논쟁은 쉽게 바꾸어 말하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사이의 존재론 또는 실체관의 차이가 중세에 들어와 기독교라는 종교의 교리와 연결되어 등장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중세에 미친 영향을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예이다. 보편 논쟁으로부터 출발된 논의는 후에 계속 발전되면서 인간의 사고의 결과로 얻어진 관념과 정신의 외부에 존재하는 대상들을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라는 문제로 이어지게 된다. 즉 우리가 경험하는 외부의 대상은 항상 개별적인 개체인 반면 우리가 사고하거나 언어로 사고를 표현할 경우에는 많은 보편 개념들이 등장하는데 이들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가라는 문제로 발전하게 되었다.
2. 보편 실재론(實念論, Realism)
* 보편 실재론은 플라톤의 이데아와 같은 보편이 실재한다는, 즉 우리가 갖는 보편 개념에 대응하는 어떤 보편적인 존재가 실재한다는 주장을 기본으로 삼아, 완전한 존재로서의 보편이 개체에 선행하여 초월적으로 실재하며 모든 개체들은 이 보편을 근거로 하여 성립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중세의 기독교에서는 신, 삼위일체 등의 많은 교리가 보편적 추상개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므로 이런 존재들의 실재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보편 실재론을 주장하였다. 따라서 보편 실재론이 중세의 정통 교리였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보편 실재론이 잘 드러나는 예로서는 아담과 이브의 죄악은 바로 보편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본질을 손상시킨 것이었으며 따라서 그 이후에 등장하는 모든 인간도 이렇게 손상된 보편적 인간에 기초하고 있으므로 원죄를 지닌다는 원죄설을 들 수 있다. 중세에 지동설을 부정하고 천동설을 택한 것도 유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데 천동설을 택한 것에는 보편적 존재로서의 교회나 보편적인 신의 의지가 구현된 지구가 움직여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기본에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3. 보편 명목론(唯名論, Nominalism)
* 보편 실재론과는 반대로 오직 개체만이 실재하며 보편은 개체에 대한 경험을 통해서 형성된 추상관념이거나 언어적 표현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보편 명목론이다. 이미 스콜라 철학의 전성기에 이런 생각이 등장하기 시작하였으나 이는 정통설에 배치되는 것으로 이단시되었다. 스콜라 철학 시대에 보편 명목론을 내세운 대표적 학자로는 11세기 중엽에 등장한 Roscellinus(1050-1125)를 들 수 있다. 그는 색깔을 띠고 있는 사물이나 실제의 물감이 없이는 '색'이라는 보편관념을 지닐 수 없음을 주장하면서 보편은 단지 언어로 드러나는 추상관념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다가 파문 당하였으며 결국 화형 당하였다. 그는 세계 안에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단지 개체뿐이며 보편은 어떤 사물이나 구체적 대상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로 표현된 단어 또는 명사에 불과하며 따라서 추상적인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 이어 프랑스 출신의 Abelardus(1079-1142)는 이전의 생각을 더욱 발전시켜 보편은 실재가 아니며 인간의 지성을 통해서 형성된 추상관념에 불과하며, 보편은 개별적 사물로서 형성된 영상에 불과하다는, 즉 보편은 개체로부터 추론된 것이라는 주장을 펴나갔다. 그는 보편이 어떤 본질이나 실체를 의미하지 않으며 따라서 개체와 같은 확실성을 지니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는 교회와 학계의 상당한 고위직을 차지하기도 하였으나 이러한 유명론의 사상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제자였던 Heloise와의 연애 사건으로 파문 당하고 추방되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기본적으로 보편 실재론을 택하여 신이나 삼위일체 같은 교리와 관련해서는 보편개념이 실재함을 인정하였으나 개체에 있어서는 보편이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과 같이 일종의 개념으로서 내재한다고 생각하였는데 그의 이런 생각은 실재론과 유명론의 중간적 입장으로서 개념실재론(Conceptualism)이라고 부른다.
* 이렇게 보편을 둘러싼 논쟁이 계속되는 과정에서 영국 출신으로 대륙으로 건너와 파리대학의 교수를 지냈던 Occam(또는 Ockham, 1285-1349)이 등장하였다. 그는 완전히 유명론의 입장을 택하여, 보편은 인간의 정신이 만들어 낸 추상적인 것에 불과하며 오직 개체만이 실재한다고 주장하면서, 보편개념은 오직 언어적 명칭(nomina)에 불과하므로 보편개념에 대응되는 어떤 대상이 실재하는 것이 아니고, 경험적으로 파악되는 개체와 개체의 속성들만이 실재한다고 생각하고 경험적인 것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였다(그의 이런 생각은 영국 경험론의 근거를 이룬다). 그는 보편개념을 근거로 삼고 있는 교리나 교회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종교와 교회 등은 더 이상 지식으로 정당화되거나 확보되는 영역이 아니며 단지 지식과는 별개인 신앙의 영역에만 한정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세속적 지식의 영역을 종교와 연결시키려는 스콜라 철학적인 생각은 잘못이라는 지적을 하였다. 오캄의 생각은 이른바 Occam's Razor라는 비유를 통해서 잘 드러나는데 그는 지금까지 지식과 학문의 영역에서 불필요하게 보편과 개체 또는 초월적 이데아계와 현상적 사물의 세계라는 두 세계로 나누어져 있던 존재의 세계에서 보편이나 이데아의 세계를 제거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그의 사상이 그러한 보편의 세계를 존재의 영역 안에서 마치 면도칼로 잘라내듯이 제거한다는 의미에서 비유적으로 '오캄의 면도날'이라는 식으로 표현된다. 지식과 신앙의 영역을 분리한 그의 생각이 점차 확대되어 교회와 국가 사이의 주종관계도 파괴되며, 국가나 사회 등이 신의 의지나 섭리를 바탕으로 한 필연적 존재가 아니라 계약에 의하여 성립되는 가변적인 존재라는 이른바 근대정신이 싹트게 되었다. 이런 여러 가지 요소가 경제, 사회적 변화와 결합되면서 중세가 막을 내리고 근대로의 전환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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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5.02
  • 저작시기2004.0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48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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