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계이윤 좌시아형 엄택곡부 미단숙영 환공광합 제약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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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반계이윤 좌시아형 엄택곡부 미단숙영 환공광합 제약부경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반계이윤 좌시아형
(磻溪伊尹 佐時阿衡)

엄택곡부 미단숙영
(奄宅曲阜 微旦孰營)

환공광합 제약부경
(桓公匡合 濟弱扶傾)

본문내용

다.
이에 주공은 다른 동생 여공(呂公) 희상(姬爽)에게, "내가 유언비어에 신경쓰지 않고 정사를 맡는 이유는 천하가 주나라를 배반할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라고 하였다.
주공이 정사를 맡은지 4년째 되던 해에 관숙과 채숙(蔡叔)이 주왕(紂王)의 아들 무경(武庚)과 결탁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원래 상나라를 멸망시킨 후 무왕은 무경에게 상왕조 도읍 조가(朝歌)를 계속 다그리게 하고, 관숙과 채숙으로 하여금 무경을 감시토록 하였었다.
그런데 그 두 사람은 동이(東夷)의 여러 부락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켰던 것이다.
주공은 즉시 성왕의 명을 받들고 동으로 출정하여 상왕조의 잔여세력을 깨끗이 토벌함과 동시에 관숙과 무경을 죽이고 채숙을 추방하였다.
또 강숙(康叔)을 위(衛)에 봉하고, 상왕조의 중신을 송(宋)에 봉하여 상왕조의 옛땅을 다스리게 했다.
주공은 동방에 대한 통치를 강화하기 위해서 상왕조의 귀족들을 성주(成周)에 모아두고 새 도읍지 낙양(洛陽)을 건설하였다.
성왕이 장상한 후 주공은 정권을 성왕에게 돌려주고 신하를 자처하면서 제후의 예를 갖추었다.
성왕이 정사를 맡은 뒤에 주공은 모함을 받아 초(楚)나라로 쫑겨났다.
나중에 성왕이 일의 진상을 알고는 울면서 주공을 모셔왔다.
주공은 성왕이 주색이 빠질 것을 엄려하여 <다사(多士)> <모일(母逸)> 등의 글을 지어 상(商)의 탕(湯)이나 무정(武丁), 조갑(祖甲), 주의 문왕(文王)과 같은 성군이 되도록 충고하였다.
그리고 <주관(周官)> <입정(立政)>등의 책을 지어 관리들이 지켜야 할 본분과 임무에 대해서 밝히고, 각종 개혁을 시행하여 주왕실의 기초를 공고히 다졌다.
"주례(周禮)"의 제정, 장자 상속제, 봉건제, 제반 관제 등 주대의 제도는 대부분 주공에 의해 정해졌다.
주공은 중국 전통문화의 선구자로 추앙받고 있다.
위로는 요순(堯舜)을 계승하고 아래로는 공맹(孔孟)을 열어주어 수천년간 사람들의 존경을 받아왔던 것이다. 주공은 음력 1월 6일에 태어났기 따문에 매년 이 날에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주공의 사당(周公廟)을 찾아가 예를 올린다.
태공망은 부국강병책으로 주나라의 건국을 도왔다면, 주공은 문물제도로써 주나라의 기틀을 세웠다. 그래서 태공망이 봉함을 받은 제나라는 경제가, 주공의 나라인 노나라는 학문이 발달하였다.
桓公匡合 濟弱扶傾
桓公匡合
桓 (굳셀 환. 10획) : 木 (나무) + 구하다. 나무로써 무엇을 구하려면 힘이 있어야한다는 데서 "굳세다."
公 (공변될 공. 4획) : 八 (나누다) + 사사롭다. 사사로운 것을 나누어 함께한다는 데서 "공변되다."
匡 (바를 광. 6획) : 감싸는 통모양 + 王 (임금). 임금이 국경내를 질서있게 다스린다는 데서 "바르다."
合 (합할 합. 6획) : 위에는 集 (모을 집)의 변형자. 아래는 口 (입). 여러사람의 의견을 모은다는데서 "합하다."
해석 : 제나라 환공이 천하를 바로 잡아 제후를 모아놓고 맹약을 지키도록 하였다.
濟弱扶傾
濟 (건널 제. 17획) : 水 (물) + 齊 (가지런하다). 여럿이서 줄지어 물을 건넌다는데서 "건넌다."
弱 (약할 약. 10획) : 새끼 새의 양 날개모양을 본뜬글자.
扶 (붙들 부. 7획) : 手 (손) +夫 (사내). 남자가 손으로 잡아준데서 "붙들다."
傾 (기울 경. 13획) : 人 (사람) + ■(머리가 비뚤어지다). 사람의 머리가 비뚤어졌다는데서 "기울다."
해석 : 약한자는 구제하고 기울어가는 나라를 도와일으켰다.
환공광합(桓公匡合)하여 제약부경(濟弱扶傾)이라.
"환공(桓公)은 바로잡고 규합하여 약한나라를 구제하고 기우는 나라를 붙들어 주었다."는 뜻이다.
환공(桓公)은 춘추시대 제(齊)나라 군주로 기원전 685년부터 기원전 643년까지 집권하였으며 최초로 패자 칭호를 얻었다.
일찍이 영특하여 오패(五覇)중 하나가 되었다.
오패(五覇)는 제환공(齊桓公). 진문공(晉文公), 송양공(宋襄公), 진목공(秦穆公), 초장왕(楚莊王)이다.
환공은 희공(僖公)의 아들로, 형 양공(襄公)이 살해된 뒤 이복형 규(糾)와 싸워 군주가 되었다.
동해의 지리적 이점을 이용하여 제나라는 강국으로 발전하였으며, 제환공은 산융족을 징벌하여 연나라를 구하고 적나라를 평정하여 형,위나라를 지켜 주었다.
뿐만 아니라 주왕실의 난을 해결하여 주양왕의 사직을 보존하게 하였다.
환공은 포숙아의 도움으로 왕위쟁탈 때 자신을 활로 쏜 관중을 중용하여 중국 역사상 최고의 선정을 베풀었다.
환공 5년 째 노나라를 쳐 대승을 거두고 조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조말(蚤沫)이라는 노나라 신하가 갑자기 달려들어 환공의 목에 칼을 대고 빼앗은 땅을 모두 돌려달라고 협박에 엉겹결에 들어주겠다고 약속한 것을 관중의 진언에 따라 모두 돌려줌으로서 각국 제후들의 신의를 얻어 환공을 맹주로 추대, 춘추 첫 번째 패자가 된 것이다.
기원전 651년, 환공은 규구에서 노, 송, 정, 위, 허, 조등 제후들과 회맹하였으며 주공실에서도 사신을 보내왔다.
환공은 진(晉)의 문공(文公)이 망명시절 제나라에 들르자 환공은 자기 딸을 주어 후대한 바 있다.
환공은 B.C 643년에 죽고 7년 후인 637년에 문공이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이 두 호걸이 서로 패자를 다투지는 않았다.
그런 환공도 결국 노년에 들어 관중의 유언을 지키지 않고 수조, 역아들의 간신들에 넘어가 자식들의 왕위다툼으로 환공이 죽었을 때도 몇 달간 시신을 치우지 못할 정도로 혼란했었다 한다.
환공은 죽기 전 후계문제를 송나라 양공에게 부탁한 일이 있었는데 환공이 죽자 송양공은 제후들의 연합군을 이끌고 제나라에 들어가서 후계자 쟁탈전을 진압했고 昭를 옹립하여 내란을 평정해 준 적이 있는데 이를 두고 송양공을 패자로 인정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과욕이 지나쳐 패자로 자처하기 위해 초나라를 공격하여 쓸데없는 인의를 내세우다 화살에 맞아 죽었다는 이야기는 사기의 송나라편에서 말한 바 있다.
제환공은 43년 재위기간 동안 26차례의 회맹을 주재하였고, 관중은 환공의 패업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공자도 그의 존왕양이 정책에 극친했다.
환공이 죽은 후 내란이 일어나 국력이 크게 쇠약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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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5.11
  • 저작시기20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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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249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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