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외교정책사 (루즈벨트에서 레이건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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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미국 외교정책사 (루즈벨트에서 레이건까지)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루스벨트의 전시외교
1. 미국의 고립주의 외교전통
2. 제2차 세계대전 참전
3. 미국의 외교정책 변화

Ⅲ. 트루먼과 냉전의 시작
1. 트루먼 독트린
2. 마샬플랜
3. 북대서양조약기구

Ⅳ. 아이젠하워의 핵전략
1. 새로운 전망(New Look)
2. 군비통제
3. 냉전의 고착과 확장

Ⅴ. 케네디의 쿠바 미사일위기
1. 소련의 쿠바 미사일배치 배경
2. 쿠바 미사일위기
3. 미사일 위기 이후


Ⅵ. 존슨의 베트남 전쟁
1. 동남아에서의 미국의 국익
2. 베트남 곤경
3. 베트남 전쟁의 영향

Ⅶ. 닉슨, 포드의 세계평화를 위한 새로운 구조
1. 닉슨 독트린
2. 전략무기제한협상
3. 데탕트

Ⅷ. 카터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1. 새로운 세계질서 제시
2.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3. 현실주의의 재강조

Ⅸ. 레이건의 강력한 미국건설
1. 강력하고 풍요로운 미국건설
2. 전략방위계획
3. 페레스트로이카

Ⅹ. 결론

본문내용

되었고, 양적 목표 달성의 중시되었던 소련의 경제구조를 개혁하는 것이었다. 또한 군사력 증강을 위해서 중공업 위주의 산업을 육성한 결과 불균형적인 성장이 이루어 졌고 소비재 공업과 농업은 낙후성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또한 가장 중요한 부정적 현상으로 집단주의에 기초한 유인제도로 인하여 개인의 창의성과 작업에 대한 열의를 약화시켰다. 국가에 의해서 보장되는 직업, 의료, 주택은 개인의 발전을 위한 노력을 무디게 하는 기재로 작용했으며 국가에 대한 높은 의존도를 나타나게 하여 사회발전을 지체되게 하였다. 페레스트로이카는 이러한 스탈린주의의 문제점에서 시작하여, 소련이 정치과정상 사회주의 원칙인 참여와 분배적 사회주의 원칙을 채택하지 않는 한 생산적 사회주의 체제 자체의 붕괴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즉 경제적인 측면에서 미국의 시장경제 우월성을 일정부분 수긍할 수밖에 없었음을 나타내는 것이었고, 외교정책상 탈이데올로기와 탈군사화를 지향하는 것이었다. 특히 탈군사화는 퇴보한 경제를 부흥하기 위한 정책들과 맞물려 해외군사개입과 국방비 삭감을 유발하였다. 소련의 막강한 군사력을 뒷받침하던 이념과 국방비 투자가 감소하자 미국에게는 커다란 위협이 사라진 형국이 되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이른바 신데탕트의 시대가 도래하고 미국과 소련의 냉전체제는 급속도로 해빙되었다. 그리고 1989년 소련이 붕괴됨과 동시에 냉전의 상징이었던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면서 미국과 소련의 차가웠던 전쟁은 그 막을 내리게 되었다.
Ⅹ. 결론
루즈벨트는 건국이래 미국의 전통적인 외교노선인 고립주의 정책을 지향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의 참전과 함께 고립주의를 수정하고 패권국가로 도약하기 위한 기틀을 마련했다. 트루먼 행정부에 들어와서 미국은 소련과의 냉전에 돌입하였고 그것은 마샬플랜과 북대서양조약기구를 통해서 경제적, 군사적으로 소련을 압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대 공산권 봉쇄정책의 일환이었고 냉전시대 전반에 걸쳐서 봉쇄정책은 유효했다. 아이젠하워 행정부 집권 시, 미국은 양적으로는 열세였지만 핵우위를 바탕으로 군사력의 질적인 향상을 거두었고 그것은 미국이 세계 제일의 군사강대국으로 입지를 굳히는데 일조 했다. 그리고 그러한 군사력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해서 소련에 대해서는 핵무기 및 수소폭탄 대해서 지속적인 군축을 제안했다. 그러나 소련은 가식적인 제안들에 대해서 거부했고, 미국 역시 감축할 의향은 없었다. 미국의 국익은 폭을 확대해 나갔고 그만큼 냉전 영역과 범위는 확장, 고착화되었다. 양 진영의 첨예한 갈등은 케네디의 집권기에 와서 쿠바미사일 사태를 야기하게 되었다. 그러나 케네디는 이 위기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면서 소련과의 화해, 협력시대를 열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하였다. 미국의 국익이 구현되는 영역이 더욱 확장되어 가면서 분쟁지역은 더욱 늘어갔다. 그 중에서 베트남은 케네디 행정부 당시, 봉쇄정책의 일환으로 공산주의 팽창을 목적으로 개입했으나 존슨 행정부에 들어서서 군사활동의 범위가 확대되고 급기야는 대규모 지상군이 투입되었으나 패전함으로서 미국에게 심각한 타격을 안겨주었다. 패전의 후유증은 미국이 다시 고립주의 외교노선으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기도 했으나, 닉슨과 포드 행정부는 약화된 미국의 힘이 회복되기를 기다리며 소련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전략무기제한협상을 벌였고, 중국을 비롯한 공산권과 정상외교를 펼쳐 데탕트 시대를 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집권한 카터 행정부는 매우 미국이 새로운 세계질서를 이끌어 가기를 원하며 매우 유화적인 외교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의해서 또다시 현실주의적 국제관계에 더 큰 힘이 실리게되었다. 강력한 미국을 표방한 레이건 행정부는 일방주의적인 자세를 견지하며 세계 곳곳의 분쟁에 개입했으며 스타워즈라고 불리는 전략방위계획을 수립했고 이것은 오늘날의 MD로 계승되고 있다. 한편 1985년 소련의 개혁과 개방정책에 의해서 공산진영은 급격히 붕괴하였고 소련 대 미국의, 공산진영 대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대립구도로 나타났던 냉전은 종식되었다. 냉전의 종식과 함께 공산진영은 종주국 소련이 각각의 독립국가로 분열되면서 사라졌다. 미국이 이끌었던 자유민주주의 진영 역시 1970년대부터 성장한 유럽과 일본의 경제, 정치적 영향력에 의해서 다극화 추세를 걷게 되었고 미국은 군사적인 지위를 제외한 다른 부분에서 점차 과거와 같은 영향력의 크기를 발휘하는데 적지 않은 제한을 받게 되었다.
냉전시대 동안에 발생했던 주요 사건들을 중심으로 미국의 외교정책을 분석해 본 결과 다음과 같은 기본 골격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을 승전으로 이끌면서 전통적인 외교노선이었던 고립주의에서 탈피하여,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권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봉쇄정책을 펼쳐, 공산주의의 확장을 억제해 왔다. 둘째, 그러한 봉쇄를 효율적으로 실시하기 위해서 진영 내부의 하부구조로서 구축한 미국시스템을 중심으로 패권을 추구해왔다.
미국은 강력한 적이 사라진 탈냉전시대에 절대강자로서 군림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와 같은 미국시스템은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았고, 과거 미국의 우방국들은 새로운 관계를 요구하고 나서기 시작했고 이것은 새로운 갈등을 낳게 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미국은 9·11 이후에 대 테러전쟁을 선포하고 악마와 같은 테러리스트 진영과 평화의 미국진영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새로운 형식의 갈등구도를 창출해 냈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차례로 점령하였다. 비록 형식적이나마 UN의 승인을 얻지 않고도 자위권을 주장하며 대규모 전면전을 감행하는 미국의 행보는 많은 우려를 낳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다분히 냉전시대부터 흘러온 미국의 패권추구을 위한 일방적인 외교노선이 표출이며 그 방법으로서 탈냉전 이후 RMA 등을 통하여 더욱 막강하게 구축된 군사력을 십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미국은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구축해온 이분법적인 논리를 더욱 강화하고, 그것으로부터 설정되는 위협으로부터의 보호를 위한 새로운 우산으로서 MD를 내세우면서, 세계 최강의 군사력 기반의 일방주의 외교노선을 앞으로도 추구해 나갈 것으로 예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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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5.16
  • 저작시기20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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