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스피노자의 철학 세계
2. 에티카를 읽고
1) 신에 대하여
2) 정신의 본성과 기원에 대하여
3) 정서의 본성과 기원에 대하여
4) 인간의 예속 또는 정서의 힘에 대하여
5) 지성의 능력 또는 인간의 자유에 대하여
3. 에티카를 마치며..
2. 에티카를 읽고
1) 신에 대하여
2) 정신의 본성과 기원에 대하여
3) 정서의 본성과 기원에 대하여
4) 인간의 예속 또는 정서의 힘에 대하여
5) 지성의 능력 또는 인간의 자유에 대하여
3. 에티카를 마치며..
본문내용
다면, 그는 자기 자신의 커다란 변화 없이는 그들에게 거의 순응할 수 없을 것이다. 또 인간에게는 서로 교제하며, 그들 전체를 하나로 만들기에 가장 알맞은 유대를 결속하는 것, 일반적으로 말해 우정의 강화에 도움되는 행위가 무엇보다도 유익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것을 위해서는 기량과 주의가 요구된다. 이는 인간은 다양하긴 하지만 대체로 질투하며 동정보다는 복수에 기울기 때문이다. 또, 정의, 공평, 단정함에 속하는 것들이 화합을 가져온다. 그 밖에 인간은 관대함에 의해서도 정복된다고 하였다. 또, 타인에 대한 여러 가지 슬픔의 정서는 정의, 공평함, 경건함, 종교심에 직접적으로 반대된다. 비록 분개가 겉으로 일종의 공평함으로 보인다고 할지라도, 모든 사람이 다른 사람의 행위에 대하여 판단하고 자기나 다른 사람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이 각자에게 허용되는 그러한 곳에서는 법이 없는 것이다. 또 우리들은 자연에서 인간 말고는 우리들이 즐길 수 있는 어떤 것도, 또 우리들이 그것과 우정 또는 어떤 종류의 교제를 맺을 수 있는 어떤 개물도 자연의 정신 속에서 찾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의 이익을 고려하는 이성은 인간 이외에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유지를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성은 그것들을 다양한 용도에 따라서 보존하거나 파괴하며 또는 모든 방법으로 우리들의 필요에 적용하도록 우리들을 가르친다.
제5부 지성의 능력 또는 인간의 자유에 대하여
마지막으로 그는 자유에 도달하는 방법 또는 길에 관한 윤리학의 다른 부분으로 넘어가면서 이 5부에 대하여 쓰는데 이성 자체가 정서에 대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제시하고 다음으로 정신의 자유 또는 지복
) 지복은 덕의 보수가 아니라 덕 자체이다. 우리들은 쾌락을 억제하기 때문에 지복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지복을 누리기 때문에 쾌락을 억제할 수 있다. (제 5부 정리 42)
이 무엇인지를 제시하면서 이성의 능력에 대하여 다루었다. 또 무엇보다도 그는 이성이 정서를 억제하고 조정하기 위해서 이성이 정서에 대하여 얼마나 크고, 그리고 어떤 종류의 권력을 가지는지를 제시하였다.
이 부분에서는 말 그대로 인간의 지성과 자유에 대한 무언가를 알기를 원했다. 하지만 역시 여기에 있는 정리들로서는 그것에 대한 이해를 얻기 어려웠고, 특히 아무도 신을 미워할 수 없다는 정리는 그것을 어떻게 증명하던지 간에, 매우 납득하기 어려운 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리하면 그는 5장에서 우리들이 단순하게 표상하고, 필연적으로도 가능적으로도 우연적으로도 표상 하지 않는 것에 대한 정서는 다른 사정이 같은 경우 모든 정서 중에서 가장 강하다고 하였다. 즉, 정신은 모든 것을 필연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한에서 정서에 대하여 더 큰 힘을 가지거나 정서의 작용을 덜 받는다는 것이다. 또 우리는 우리의 본성과 대립되는 정서에 압도당하지 않는 동안에는 지성에 일치하는 질서에 따라서 신체의 변용에 질서를 부여하고 그것을 연결하는 힘을 가진다고 하였다. 또한 5부에서도 신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는데 정리 15에서 자기 자신과 자신의 정서를 명석 판명하게 인식하는 사람은 신을 사랑하며, 자기 자신과 자신의 정서를 더 많이 인식하면 할수록 더욱 더 신을 사랑한다고 하였다. 또 신에 대한 사랑은 정신을 가장 많이 수요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였으며, 정리 18에서 아무도 신을 미워할 수 없다고 하였다. 신을 사랑하는 삶은 반대로 신이 그를 사랑하게끔 노력할 수 없다고 하였다. 또 정리 35에서는 신은 무한한 지적 사랑에 의하여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고 하였는데 신은 절대적으로 무한하다고 하였으며, 신의 본성은 무한한 완전성을 즐기며, 신의 본성은 신의 관념을 즉, 원인으로서의 자신의 관념을 동반한다고 하여 이것들을 지적 사랑이라고 그는 말하였다. 그는 우리가 비록 우리의 정신이 영원하다는 것을 알지 못할지라도, 우리들은 경건함과 종교심을 그리고 일반적으로 말해 우리들은 4부에서의 용기와 관용에 속한다고 제시한 모든 일을 가장 중요하다고 여길 것이라고 하였다. 덕이나 올바른 생활 방식의 첫째 가는 유일한 기초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신이 무엇을 유익하다고 명령하는지를 결정하는 데 우리들은 정신의 영원성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는데, 여기 5부에서 알게 되었다며 그는 말하고 있다. 우리들이 비록 그 당시에는 정신이 영원함을 알지 못했을지라도 우리들은 용기와 관용에 속한다고 우리들이 제시한 것을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비록 우리들이 지금도 그것을 알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이성으 명령을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게 될 것이다.
스피노자 에티카를 마치며..
스피노자는 「에티카」에서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윤리적이거나 이성적인 문제를 다루는데 관심을 두는 것 같다. 그러므로 스피노자는 철학적 문제는 실천 영역에서 출현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렇지만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진실인지 알아야 하고, 그러기에 지적 노력이 필연적으로 수반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처럼 「에티카」에서 여러 명제들과 정리들과 주석을 달면서 그것들이 어떠한 것들인지 알아가려고 노력한 것 같다. 인간의 실천적 삶에 관심을 두면서도, 그것을 종교적 수행이나 사회적 투쟁을 통해 실천적으로 해결해 보려고 하기보다는 철저하게 이론적이고 과학적이며 형이상학적으로 해결해 보고자 하였던 것 같다. 윤리적, 종교적 문제에 관심을 두면서도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바의 윤리나 종교와 전혀 관계가 없는 다른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스피노자는 무 윤리적이고 비종교적인 방식으로 인간의 삶과 구원의 문제를 다루어 보고자 했던 것 같다. 신이라는 개념이 종교적인 의미와 전혀 다르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힘들게 책을 읽고, 정리하면서도 아직 의아한 부분이 많이 남아 있다. 도저히 나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상당부분 있었는데 이러한 부분을 이해하지 못함이 내가 아직 부족한 탓이라 생각이 들고, 앞으로 철학이나 윤리에 더욱 많은 관심을 기울여서 노력하여 다시 한번 이 책을 손에 들었을 때에는 힘들지 않을 만큼 소화할 수 있게 노력할 것이다.
제5부 지성의 능력 또는 인간의 자유에 대하여
마지막으로 그는 자유에 도달하는 방법 또는 길에 관한 윤리학의 다른 부분으로 넘어가면서 이 5부에 대하여 쓰는데 이성 자체가 정서에 대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제시하고 다음으로 정신의 자유 또는 지복
) 지복은 덕의 보수가 아니라 덕 자체이다. 우리들은 쾌락을 억제하기 때문에 지복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지복을 누리기 때문에 쾌락을 억제할 수 있다. (제 5부 정리 42)
이 무엇인지를 제시하면서 이성의 능력에 대하여 다루었다. 또 무엇보다도 그는 이성이 정서를 억제하고 조정하기 위해서 이성이 정서에 대하여 얼마나 크고, 그리고 어떤 종류의 권력을 가지는지를 제시하였다.
이 부분에서는 말 그대로 인간의 지성과 자유에 대한 무언가를 알기를 원했다. 하지만 역시 여기에 있는 정리들로서는 그것에 대한 이해를 얻기 어려웠고, 특히 아무도 신을 미워할 수 없다는 정리는 그것을 어떻게 증명하던지 간에, 매우 납득하기 어려운 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리하면 그는 5장에서 우리들이 단순하게 표상하고, 필연적으로도 가능적으로도 우연적으로도 표상 하지 않는 것에 대한 정서는 다른 사정이 같은 경우 모든 정서 중에서 가장 강하다고 하였다. 즉, 정신은 모든 것을 필연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한에서 정서에 대하여 더 큰 힘을 가지거나 정서의 작용을 덜 받는다는 것이다. 또 우리는 우리의 본성과 대립되는 정서에 압도당하지 않는 동안에는 지성에 일치하는 질서에 따라서 신체의 변용에 질서를 부여하고 그것을 연결하는 힘을 가진다고 하였다. 또한 5부에서도 신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는데 정리 15에서 자기 자신과 자신의 정서를 명석 판명하게 인식하는 사람은 신을 사랑하며, 자기 자신과 자신의 정서를 더 많이 인식하면 할수록 더욱 더 신을 사랑한다고 하였다. 또 신에 대한 사랑은 정신을 가장 많이 수요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였으며, 정리 18에서 아무도 신을 미워할 수 없다고 하였다. 신을 사랑하는 삶은 반대로 신이 그를 사랑하게끔 노력할 수 없다고 하였다. 또 정리 35에서는 신은 무한한 지적 사랑에 의하여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고 하였는데 신은 절대적으로 무한하다고 하였으며, 신의 본성은 무한한 완전성을 즐기며, 신의 본성은 신의 관념을 즉, 원인으로서의 자신의 관념을 동반한다고 하여 이것들을 지적 사랑이라고 그는 말하였다. 그는 우리가 비록 우리의 정신이 영원하다는 것을 알지 못할지라도, 우리들은 경건함과 종교심을 그리고 일반적으로 말해 우리들은 4부에서의 용기와 관용에 속한다고 제시한 모든 일을 가장 중요하다고 여길 것이라고 하였다. 덕이나 올바른 생활 방식의 첫째 가는 유일한 기초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신이 무엇을 유익하다고 명령하는지를 결정하는 데 우리들은 정신의 영원성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는데, 여기 5부에서 알게 되었다며 그는 말하고 있다. 우리들이 비록 그 당시에는 정신이 영원함을 알지 못했을지라도 우리들은 용기와 관용에 속한다고 우리들이 제시한 것을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비록 우리들이 지금도 그것을 알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이성으 명령을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게 될 것이다.
스피노자 에티카를 마치며..
스피노자는 「에티카」에서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윤리적이거나 이성적인 문제를 다루는데 관심을 두는 것 같다. 그러므로 스피노자는 철학적 문제는 실천 영역에서 출현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렇지만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진실인지 알아야 하고, 그러기에 지적 노력이 필연적으로 수반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처럼 「에티카」에서 여러 명제들과 정리들과 주석을 달면서 그것들이 어떠한 것들인지 알아가려고 노력한 것 같다. 인간의 실천적 삶에 관심을 두면서도, 그것을 종교적 수행이나 사회적 투쟁을 통해 실천적으로 해결해 보려고 하기보다는 철저하게 이론적이고 과학적이며 형이상학적으로 해결해 보고자 하였던 것 같다. 윤리적, 종교적 문제에 관심을 두면서도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바의 윤리나 종교와 전혀 관계가 없는 다른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스피노자는 무 윤리적이고 비종교적인 방식으로 인간의 삶과 구원의 문제를 다루어 보고자 했던 것 같다. 신이라는 개념이 종교적인 의미와 전혀 다르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힘들게 책을 읽고, 정리하면서도 아직 의아한 부분이 많이 남아 있다. 도저히 나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상당부분 있었는데 이러한 부분을 이해하지 못함이 내가 아직 부족한 탓이라 생각이 들고, 앞으로 철학이나 윤리에 더욱 많은 관심을 기울여서 노력하여 다시 한번 이 책을 손에 들었을 때에는 힘들지 않을 만큼 소화할 수 있게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