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종교-기독교와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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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 론

Ⅱ. 불교의 기본 교리
1. 불교 교리의 출발점
2. 사체(四諦)

Ⅲ. 불교의 구원관
1. 윤리적인 고행단계(해탈의 깨달음)
2. 선정(Dhyana)
3. 지혜(Panna)

Ⅳ. 불교의 종말관
1. 고와 멸망과의 관계
2. 무명과 멸망과의 관계
3. 오온과 멸망과의 관계
4. 업과 멸망과의 관계
5. 멸망에 관계된 네 부류의 인간상

Ⅴ. 기독교와의 비교
1. 불교와 기독교의 구원관의 비교
2. 불교와 기독교의 종말 사상 비교

Ⅵ. 결 론

▣ 참고도서

본문내용

적인 관계가 지속되는 세계는 아니다.
7. 자아가 부정된다.
자아가 오히려 분명해진다.
2. 불교와 기독교의 종말 사상 비교
) Ibid., p.253.
불교는 멸망의 인자를 고난에 두고 있으며 이 고난을 본성적으로 관계된 필연성으로 보는데 비하여 기독교는 멸망의 인자로 죄를 제시하는데, 이 죄의 본질은 필연성과 관계된 점도 없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자기를 소외시키고 격리시키고자 하는 잘못된 자유의지에 바탕하고 있는 점에서 불교와 그 개념을 달리하고 있다. 기독교에서는 죄의 개념을 언제나 초월자와 관계짓고 있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고'는 초월자로부터의 고립이 아니라 언제나 자아와 관계된 것이다. 그리고 불교에서 고난으로부터 자기를 격리시키고 초월시키고자 하는 노력은 신성시될 수 있는 수도자의 자세이지만 기독교에서 죄에서 해방되고, 죄와 상관없는 자아가 되기 위한 일체의 노력은 반대로 자기의 능력을 하나님의 능력에 맞서게 하기 때문에 그것은 죄로 간주된다. 불교에서 말하는 고난은 발전적이고 창조적인 자아를 이루는데 기여한다는 기독교의 이해와는 뜻을 달리하고 있다. 불교에서 인간 그 자체는 운명적으로 멸망에 처해 있는 존재로서 현재만이 아닌 윤회속에 있는 과거, 현재, 미래의 존재 형태를 모두 포함한 전체적인 사슬에 묶여 있다. 더군다나 불교에서는 인간으로 태어나는 그 자체가 전생에 잘못된 업의 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인간은 멸망의 집합체로 보았다.
불교는 인간을 멸망과의 관계에서 과거, 현재, 미래와의 역사적 전체성과 관련짓고 있지만 기독교에서는 한 인간에 관계되고 있는 멸망의 요인의 죄와의 관계에서 유일회적인 현재의 실존만을 문제로 삼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유일회적인 현재의 실존이 하나님의 지배로부터 자기를 이탈시켜 자아의 욕망에 추종하여 살아가고자 하는 것이며, 이러한 단독자의 삶이 자신을 멸망시키는 유려한 요인이 되는 것으로 기독교는 이해하고 있다.
Ⅵ. 결 론
본 소고를 작성하면서 불교가 과연 종교학적으로 보았을 때에 종교라고 불리울 수 있는 종교일까를 끊임없이 생각해 왔다. 일부 이단 사이비 종파들에게서 볼 수 있는 현상들과 같이 조금은 허무맹랑하게 보일지언정 그들의 신을 모시고, 그들만의 신들에게 천지가 개벽할 만한 중량감을 느낄만한 요행은 아니더라도 개인의 안녕을 빌어 볼만큼의 종교성이라도 불교라는 종교에 존재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 때문이었다.
불교는 인격적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신이 궁극적 존재와 동일시된다. 아울러 신과 만물이 차이가 없는 단일론이며 범신론이다.
) 전호진, Ibid., p.227.
불행한 사실은 인격적 신의 존재를 부정함에도 많은 신들과 우상들을 섬기는데 이것은 결국 인간들의 마음에 내재하는 종교성, 신 개념은 뛰어넘지 못한다는 것이다. 불교의 무신론이 결국에는 범신론, 다신론이 되어 버린 것이다.
철저하게 자기를 비워야 한다는 출발점은 자기를 부인하라고 명령하는 기독교와 유사하게 보이지만, 결국 자기를 비우는 것이 고행으로 가야만 하는 단계라는 사실에 답답함도 경험한다. 기독교에서는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영으로 가득 채워지는 것이기에 늘 풍성함으로 결말지어지기에 그 안타까움은 더하게 된다.
기독교인들이 기독교적인 시각으로 불교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선교를 위해서이다.
1960년대 기독교는 타종교와 대화를 해야 한다는 대화 운동으로, 전도는 종교적 제국주의로 매도되었다. 지금도 많은 신학자들과 종교학자들은 종교 간의 대화와 공존을 바람직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복음주의는 대화가 아니라 선교 변증이요 전도이다.
) Ibid., p.236.
그들에 대한 선교 또한 하나님의 명령이다. 이제는 종교간의 대화가 대화를 위한 대화로 머물러서는 안된다. 기독교적인 시각으로 그들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하며, 그것을 기초로 그들을 포용하는 자세로 대화에 임해야 할 것이며, 결국 그 모든 과정들이 선교를 위한 궁극적 목적의 바탕 위에 세워져야만 할 것이다.
▣ 참고도서
Lester Sumrall, 『이방종교에 대한 기독교적 접근』, 류창경 역, (서울: 무림출판사, 1991)
김익원, 『그리스도인이 본 불교』, (서울: 성광문화사, 1989)
서재생, 『기독교와 불교의 비교론』, (서울: 신애출판사, 1992)
전호진, 『종교다원주의와 타종교 선교전략』, (서울: 개혁주의신행협회, 1992)
최준식, 『한국의 종교, 문화로 읽는다』, (서울: 사계절출판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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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6.14
  • 저작시기20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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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255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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