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무도 머무르지 못한다. 형은 일찍이 집을 나가고 누나는 팔리듯 시집을 가 모진 고생을 한다. 둘째 아들 역시 결국은 집을 나가고 돌아오겠다 하지만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어머니는 차례 차례 자신의 딸의 한 서린 죽음과 큰 아들의 허망한 죽음을 접하게 된다. 어머니는 차마 자신이 자식들의 백을 거둬드릴 수가 없어 작은 아들을 찾아가게 되고 결국은 작은 아들 손에 모두가 묻히게 된다.
그러나 결국 작은 아들은 돌밭가 언덕에 쓸쓸한 비목 하나만을 남기고 바다에 뿌려진다. 그가 이해조라고 한다.
여담이지만 오늘「한국현대문학사」시간에 1900∼1920년의 한국문학에 대해 강의를 듣는데 이인직의 이야기는 많이 나왔지만 이해조의 이야기는 거의 다뤄지지 않아 아쉬웠다.
강의가 끝나고 이해조에 대해 생각해 보았는데, 내가 너무 그의 작품에 대해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새와 나무」에서 '집터'를 찾던 '시장이'가 계속 생각이 났다.
글을 마치면서
어설픈 글을 마치면서 나는 다시 한번 이 책을 본다. 내가 다니는 이 학교에 - 나는 이 글을 학교 컴퓨터 개방실에 앉아 쓰고 있다. 이 글을 다 쓰면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여의도로 가야한다. - 도서관에는 단 2권뿐인 책이고 모두 대출 중이였다. 그래서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책은 가톨릭 대학교 컴퓨터 공학과에 재학 중인 친구에게 부탁해 가대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다. 곧 돌려줘야 하는데 다시 한번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에 친구에게 다시금 부탁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청준의 소설은 마치 영화를 보는 듯 머릿속에 영상이 잘 그려지는 글이였다. 아마도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화까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이 책을 덮고 나니 「서편제」라는 영화를 보지 않은 걸 잘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원작을 먼저 보는 걸 좋아한다.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라면 책부터 보는 것이 좋고 영화를 책으로 써낸 것이라면 영화부터 보는 걸 좋아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책을 잘 읽고 나니 강의 시간에 영화를 볼 기대가 차 오른다. 과연 영화는 정해진 영상을 나에게 보여주겠지만 책과는 다른 느낌을 또 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그려내지 못한 판소리 한 구절 한 구절을 영화는 나에게 들려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소리와 어우러지는 풍경을 볼 수 있을 것도 같아 기대가 된다.
책은 아쉽지만 여기서 덮도록 한다. 다음엔 다른 소설로 다시 이청준을 읽어야 겠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어머니는 차례 차례 자신의 딸의 한 서린 죽음과 큰 아들의 허망한 죽음을 접하게 된다. 어머니는 차마 자신이 자식들의 백을 거둬드릴 수가 없어 작은 아들을 찾아가게 되고 결국은 작은 아들 손에 모두가 묻히게 된다.
그러나 결국 작은 아들은 돌밭가 언덕에 쓸쓸한 비목 하나만을 남기고 바다에 뿌려진다. 그가 이해조라고 한다.
여담이지만 오늘「한국현대문학사」시간에 1900∼1920년의 한국문학에 대해 강의를 듣는데 이인직의 이야기는 많이 나왔지만 이해조의 이야기는 거의 다뤄지지 않아 아쉬웠다.
강의가 끝나고 이해조에 대해 생각해 보았는데, 내가 너무 그의 작품에 대해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새와 나무」에서 '집터'를 찾던 '시장이'가 계속 생각이 났다.
글을 마치면서
어설픈 글을 마치면서 나는 다시 한번 이 책을 본다. 내가 다니는 이 학교에 - 나는 이 글을 학교 컴퓨터 개방실에 앉아 쓰고 있다. 이 글을 다 쓰면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여의도로 가야한다. - 도서관에는 단 2권뿐인 책이고 모두 대출 중이였다. 그래서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책은 가톨릭 대학교 컴퓨터 공학과에 재학 중인 친구에게 부탁해 가대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다. 곧 돌려줘야 하는데 다시 한번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에 친구에게 다시금 부탁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청준의 소설은 마치 영화를 보는 듯 머릿속에 영상이 잘 그려지는 글이였다. 아마도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화까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이 책을 덮고 나니 「서편제」라는 영화를 보지 않은 걸 잘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원작을 먼저 보는 걸 좋아한다.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라면 책부터 보는 것이 좋고 영화를 책으로 써낸 것이라면 영화부터 보는 걸 좋아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책을 잘 읽고 나니 강의 시간에 영화를 볼 기대가 차 오른다. 과연 영화는 정해진 영상을 나에게 보여주겠지만 책과는 다른 느낌을 또 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그려내지 못한 판소리 한 구절 한 구절을 영화는 나에게 들려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소리와 어우러지는 풍경을 볼 수 있을 것도 같아 기대가 된다.
책은 아쉽지만 여기서 덮도록 한다. 다음엔 다른 소설로 다시 이청준을 읽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