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서평]A.J 크로닌의 천국의 열쇠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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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A+ 서평]A.J 크로닌의 천국의 열쇠를 읽고..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하였고, 이렇게도 아름다운 삶이 또 있을까라는 깊은 감동을 느낌과 동시에 치셤의 그 삶을 열렬히 동경하게 되었다. 그는 진실로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이요, 그의 평생 변함없이 영혼들을 사랑했던 사람으로 내게 각인이 되었던 것이다.
본「천국의 열쇠」에서는 주인공 '프랜치스 치셤과 '안셀모 밀리'가 등장하는데 그들은 같은 성직자로서 헌신한 동료였지만 그 삶은 판이하게 달랐다. 프랜치스 치셤은 화려해 보이는 성공과는 거리가 먼, 외형적으로는 볼품없는 생을 살았던 인물이며, 반면에 안셀모 밀리는 소위 종교적인 성공을 거두고 높은 성직의 반열에 오르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추앙받는 생을 살았던 사람이다.
하지만 그 삶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누가 과연 더 가치있고 아름다운 생을 살았는지는 쉽게 구분할 수 있게 된다. 프랜치스는 성직을 준비할 때도 순수한 사랑으로 인한 고통을 감내하였으며, 이후 중국선교사로서 숱한 고난을 겪으면서도 끝까지 영혼들을 보듬어주고 그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사랑하는 삶을 감당하였다. 결국 그 삶의 여정속에서 그리스도를 닮은 참 사랑을 사람들과 함께 절절히 나눔으로써 그의 생은 참으로 의미있고 아름다운 일생이었던 것이다.
나는 이러한 삶을 하나하나 읽어나가면서 사회적인 명성이나 성공 자체만을 추구하는 그 삶은 진정으로 가치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깊이 있게 느끼게 되었다. 프랜치스는 명예나 부를 누리는 것에는 욕심도 없었으며 그가 추구하는 삶은 오직 다른 영혼들에 대한 사랑이었지만 그 삶을 그의 마음중심으로 진실되게 실천함으로써 생의 소임을 다한 그 자체로 가치있는 삶이였던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무엇이 부족한 듯 갈망하면서 자신의 욕심이나 야망을 채우려는 '결핍동기'(缺乏動機)로써 성공을 추구하며, 다른 이들을 대하곤 한다. 하지만 거기에는 진정한 가치도, 삶의 의미와 행복도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에 여기 프랜치스 치셤이 보여준 사랑의 동기(動機)로 사는 삶이 있다. 나는 그것을 결핍동기와는 반대되는 개념으로 '충만 동기(充滿動機)'라고 부르고 싶다. 다른 이들을 향해 흘러넘치는 그 사랑의 동기(intention)를 갖고 사는 삶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삶에 사랑으로 말미암는 내적인 풍성함과 행복이 함께 나누는 모든 사람들에게 깃들게 되는 것이다.
사실 우리의 내면안에는 이러한 이상적이고도 완전한 사랑이 충만하게 내재되어 있지 않다. 사랑의 동기보다는 결핍동기로 살아가는 내 자신을 늘 보게 된다. 하지만 치셤의 삶을 통해 우리가 감화를 받고, 참된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지속적으로 배울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아름다워질 수 있으리라고 소망해본다.
정말 세상에는 아슬아슬한 일들이 많은 것 같다. 간발의 차로 행운이 되기도 하고 불운이 되기도 하니 말이다. 나도 이번 시험 때, 정말 많이 겪어 보았다. 정말 안타깝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다. 세상을 산다는 건 늘 이렇겠지... 이렇게 간신히 신학교를 졸업한 프랜치스는 어느 작은 성당에 보좌 신부로 부임하게 된다. 하지만 또 그를 못 마땅히 여기는 주임 신부 때문에 중국 선교를 나서게 된다. 하지만 중국 선교에서도 원장 수녀와 마찰을 겪게 된다.
참, 왜들 다 진실을 올바로 보지 못하는 걸까? 프랜치스의 진실 된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것일까? 하지만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는 것이다. 원장 수녀도 전염병 사건과 홍수 사건을 겪고 프랜치스의 진가를 이해하게 된다. 여기서 나는 하늘은 그렇게 불공평하지는 않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이 나에게 뭐라고 하든지 나는 내 할 일만 하면 된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묵묵하고 꿋꿋이 하면 남들도 나를 인정하게 될 것이다.
이야기 속에서 안셀모와 프랜치스의 만남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어린 시절 그들의 만남, 신부가 되기로 결심한 안셀모는 늘 위엄있고 의젓한 행동을 하기를 좋아했다. 그러한 안셀모를 프랜치스가 흙탕물에 빠뜨린다. 성인이 되었을 때, 중국에서의 그들의 만남. 프랜치스는 새 주교가 된 안셀모의 방문을 위해 새로 성전을 정비하고 준비하느라 정성을 다했지만 홍수 때문에 다 허사가 되고 만다. 화려한 치장과 멋진 말만 하는 안셀모와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된 프랜치스. 그 둘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아마도 세상에 대한 처세에 대한 문제가 아닐까 한다.
주위를 둘러 보면 남이 자신을 알아 줄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이 있고, 남에게 자신을 알게 하고, 마음에 들게끔 아첨하는 사람도 있다. 안셀모는 바로 처세술이 좋은 사람이고 그와 반대로 프랜치스는 처세술이 약간 부족한 사람이 아닐까? 세상을 살아가려면 처세술이 필요할 테지만 너무 얍삽하고 비열한 아첨이나... 등등 그런 것은 별로 좋지 않다고 본다. 언젠가 사람들은 그 사람들이 겉과 속의 다름을 알게 될 것이 아닌가? 나는 약간 우둔하지만 강직한 프랜치스의 인간형이 더 좋다. 그리고 프랜치스는 남은 여생을 고향에서 보내기를 희망하여 안셀모에게 신부직을 그만 두는 것을 이야기하려고 마냥 기다리는데 재미있는 건 안셀모의 마차 때문에 프랜치스가 진흙탕을 뒤집어 쓴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미 안셀모와 인간적인 프랜치스. 어쩌면 이 두 요소는 우리가 항상 비교하면서 고민하고 시샘하며 생활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과연 사회적인 부가 중요한 것일까, 따스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보람있는 것일까?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가질 순 없을까? 프랜치스는 사회적인 명예나 부를 누리는 것에는 소질도 없었고, 욕심도 없었다. 단지 그가 추구하는 생활, 사람들간의 화목, 사랑만을 위하여 살아 왔다. 늘 사람들은 사회적인 면을 외면하는 그에게 불만을 가졌지만 그는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단번에 바꾸려 하지 않았다. 보용하고 묵묵한 행동으로서 그의 진심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실 안셀모와 같은 삶을 살기란 쉽지 않다.r그렇지만 어느 누구나 그 길에 빠지긴 쉽다. 편안하고 안락한 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랜치스와 같은 이상과 생활에의 실천을 가지기란 쉽지 않다. 정말 존경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인물이다. 바로 작가 자신도 사회적인 욕심에 반해 청렴하게 살고 싶었던 한 가닥의 미련에 프랜치스와 같은 인물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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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04.07.28
  • 저작시기2004.07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6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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