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를 찾는 내몽골 대장정 대흥안령산맥 탐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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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8월 16일(토) 심양-장춘-우란호터

8월 17일(일) 우란호터(오란호특)

8월 18일(월) 빠라커따이(파랍극알) 부근의 고구려 성들

8월 19일(화) 우란호터 - 색륜(색륜) - 수목구(수목구)

8월 20일(수) 대흥안령을 넘는다

8월 21일(목) 날씨 맑음, 염지 - 서오주목필기 - 임동

8월 22일(금) 임동 -상경성 - 고구려 집터 - 요나라 조주성 - 임서

8월 23일(토) 임서 -고구려 마을 - 시라무렌강 - 홍산 - 적봉

8월 24일(일) 심양 - 서울

본문내용

뷔페에 가서 오랜만에 잘 먹었다. 점심시간에 현지에 사는 유일한 에스페란티스가 기차표를 사가지고 왔는데 침대표는 사지 못했다고 한다. 다행히 고와 여사가 이미 열차표 문제를 해결해 놓아 큰 시름을 놓게 되었다.
홍산(홍산)문화와 하가점(하가점)문화
식사를 마치고 나니 3시가 다 되었다. 적봉에 와서 홍산을 다녀가지 않을 수 없다. 오후의 현지 답사를 안내하기 위해 박물관 연구원인 유소협(유소협) 선생이 동행하였다. 홍산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유선생은 우리를 먼저 하가점 문화가 나온 유지로 안내하였다.
"이것은 하가점하층 유물, 이것은 상층 유물"
유선생의 현장 실습 강의가 시작되었다. 큰 유물들은 없지만 작은 도기편들이 상당히 많이 보였다.
"하층은 무늬가 있고, 상층은 없고, 하층은 회색에 질박하고, 상층은 적색기운이 있고 …"
얼마 뒤 나는 거의 틀리지 않고 상층과 하층의 유물을 구분해 내는 총명한 학생임을 실증해 보였다.
1935년 일본학자가 홍산을 발굴한 뒤 '적봉제2기문화'라는 개념을 발표하였다. 홍산문화가 신석기문화인 반면 신석기에 이어지는 시기의 유물을 말한다. 1960년 중국인 학자들은 적봉의 약왕묘와 하가점유지를 시굴하고 적봉제2기문화는 서로 성질이 다든 두 개의 다른 청동문화라는 것을 밝혔다. 그것이 하가점 하층문화와 상층문화이다. 이 지역은 우리 (고)조선과 관계가 있는 지역이고, 하가점문화는 연대로 보아 조선의 유적이라고 볼 수도 있기 때문에 대단히 관심을 가지고 보아야 한다.
"저쪽 건너편이 홍산문화 유지입니다."
하가점문화 유지보다 좀 더 높은 곳이다. 보통 손님이 오면 하가점유지만 보여주고 홍산문화유지는 가보지 않은다는데 유선생은 정성을 다해서 우리를 안내한다. 복군하고 같은 지도교수한테서 공부한 인연때문이라는 것이다. 중국에서 '펑여우(붕우)'의 위력은 대단하다는 것을 다시 실감한다. 홍산문화유적지에는 가시가 달린 나무를 심어 놓아 유물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 가상했는지 유선생이 도와줘 석기 1점과 토기를 여러점 접해 홍산문화의 특징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었다. 적색 토기들은 신석기 토기 답지 않게 수준이 높았다. 청동기 토기인 하가점 유물보다 오히려 거 수준이 높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교한 것도 있었다.
홍산문화는 앞에서 잠간 보았지만 1935년에 일본인이 처음 발굴했는데, 적봉에 있는 홍산에서 발굴했다고 해서 홍산문화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홍산문화는 중국의 대표적인 문화인 황하유역의 양사오(앙소)문화의 중.말기와 같은 시기의 문화이면서도 양사오와 전혀 다른 문화형태를 취하고 있어 우리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그 뒤 요서지역 대능하 유역에서 대단히 발달된 동종의 문화 유적.유물이 발굴되어 세계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빗살무늬 등 토기 문양이 요동지방과 압록강 유역의 출토물과 같아 앞으로 우리고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야 할 부분이다.
우리가 여기서 한가지 더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적봉에서 맥족의 무덤이 발굴되었다'는 신화사통신의 보도를 확인해 보는 것이었다. 관계자들은 이 문제는 전혀 모르는 것이라고 했지만 앞으로 계속 밝혀가야 할 문제이다. 우리 민족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맥족의 유지가 여기서 발견된다면 역사서술이 사뭇 달라지기 때문이다.
답사를 마치고 돌아오니 5시 반, 고와 여사의 저녁식사 초대가 있었다. 우리는 먼저 운전사와 정산을 하기로 하였다. 계산해 보니 1694㎞, 5일만에 우리나라 이수로 4235리를 달렸다. 처음 준비할 때 1000㎞쯤이 나와 넉넉하게 1100㎞를 기준으로 계약했는데 그보다도 600여 킬로를 더 뛴 것이다. 1㎞ 당 30원씩을 더 달라는 것을 1500원을 더 주어 4500원에 결정하였다. 이제 이 운전사는 밤을 세워 다시 울란호터까지 돌아가야 한다. 그동안 참 열심히 해준 기사와 작별을 나누었다.
저녁식사는 사천식 요리로 했는데 모두가 매워서 눈물을 흘려야 했다. 한국인이 매워서 눈물을 흐렸다니 그 상황이 어떻했는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인들과 식사를 할 때 술을 마시지않는 필자에게는 항상 고통스러운 작업이 된다. 다행히 현선생의 능수능란한 화술과 제스츄어로 모든 것을 대신해 주어 분위기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서교수는 좀 취한 편이었다.
"몽고인의 습속에는 상대방이 술을 다 마실 때까지 계속 노래를 부른다."
마지막에 몽고 여인인 고왜 여사가 노래를 계속 부르고 있기 때문에 서 교수가 약간 과음을 한 것이다.
저녁식사를 너무 흥겹게 즐기다 보니 차시간을 잊을 뻔 했다. 허둥지둥 역에 도착하자 고왜의 친구가 기다리고 있다가 표도 끊지 않고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다행히 기차는 아직 떠나지 않았다. 역무원들에게 여러번 묻더니 맨 앞칸으로 간다. 이 칸이 바로 「질좋고 값비싼(우질우가)」열차다. 침대칸을 못 샀을 때 차선책으로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인데, 이것도 막강한 고여사의 빽이 아니었더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밤 8시 18분, 7박8일 동안 생사고락을 함께한 현선생, 그리고 적봉의 펑여우들과 헤어지고 심양으로 향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번 여행은 현선생이라는 대단히 훌륭한 안내를 만났기 때문에 여행도 순조로웠고 많은 결실도 얻었다. 긴 좌석을 한 개씩 점령하고 침대삼아 누어 서교수와 이런저런 얘기하며 마지막 밤을 보낸다.
8월 24일(일) 심양
자다 일어나 보니 새벽이 다 되었다. 언제들 탔는지 우질우가칸에도 사람이 꽉차 좌석마다 누어 자던 사람들이 대부분 일어나서 두 세명씩 같이 앉아 있다. 우리는 다시 눈을 감았다. 엊저녁 강력한 빽이 부탁해서인지 아니면 외국인이어서인지 차장이 우리는 깨우지 안하 다행이었다.
6시 36분, 심양역에 도착하였다. 우리 차는 대련까지 가는 차라 다 내리지 않았지만 내리는 사람 타는 사람, 역안은 무척 붐빈다. 제법 짐이 많아 우선 택시를 하나 잡아 타고, 옛날에 왔을 때 신세를 졌던 이경빈 씨 집을 찾았으나 실패했다. 아마 주소가 틀렸던 것이다.
공항에 도착하니 시간이 좀 이르다. 윗층에 올라가 식사를 하고 세수도 하는 등 시간을 보내다 12시 10분 무사히 중국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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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9.08
  • 저작시기20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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