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길준과 최광옥의 대한문전 비교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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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유길준과 최광옥의 대한문전 비교연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 주제1 -
{대한문전}의 두 가지 이종(최광옥 저, 유길준 저)의 내용은 어떤 차이를 보이는가?

1. 음운에 대한 비교
1)최광옥의 ‘대한문전’에서의 음운
2)유길준의 ‘대한문전’에서의 음운
3)유,최의「대한문전」에서 어음의 몽수(蒙受)와 축약(縮約)

2. 품사 분류에 대한 비교
1)유길준과 최광옥 모두 ‘의미 기능주의’에 입각해 8개의 품사로 분류
2)8품사 분류의 대조
3)각 품사 대조
(1) 명사
(2) 대명사
(3) 동사
(4) 조동사
(5) 부사/첨부사
(6) 형용사(形容詞)
(7) 접속사(接續詞)
(8) 후사(後詞)
(9) 감동사(感動詞)

3. 문장론에 대한 비교

- 주제2 -
{대한문전}의 두 가지 책의 출판 경위와 관련된, 서로 다른 주장을 비교, 검토하라.

<유길준 옹호의 관점>
1.『대한문전』에 대한 논란
2. 김민수의 주장에 대하여

<최광옥 옹호의 근거>

주제3: {대한문전}이 국어 문법학사 상에서 갖는 의의는 어떠한가?

본문내용

은 유길준의 오락된 4차 고본을 印佈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본다. 결국 유길준은 우리 나라 사람으로써 최초로 국어 문법을 연구, 저술하였으나 그 4차 고본을 표절(剽 )당함으로써 국어학사상 최광옥에 후행하는 제 2의 문법가로 오인되어 왔으나, 실제로는 유길준이 『조선문전』을 저술한 우리 나라 최초의 국어 문법가라고 하는 것이 김민수의 주장이다.
<최광옥 옹호의 근거>
1.구국운동의 일환으로서의 신교육 운동
- 사범교육 실시(안악근악회에서 최광옥을 중심으로)
2. 최광옥의 유저: 「교육학」(1908), 「대한문전」(1909)
3. 최광옥의 신분과 학력에 대한 김민수 교수의 오판
1) '방랑객'이라 칭함
2) 숭실중학을 2년제로 판정
3) 일본유학 확인 불가
4. 김민수「국어문법학사의 한 과제인 최광옥·유길준의 양문법에 대하여」
5. 밝히려는 3가지 문제와 변증
1) 최광옥의 신분
.독립유공자로 등록하지 않음
.평양 숭실중학은 5년제 과정(1회 졸업생); 베어드 학장의 증언
.일본유학; 김성업 선생의 증언
2)「대한문전」의 저자가 될 수 있다는 변증
.독립협회원은 주로 주시경, 지석영, 최광옥, 신해영 등의 회원들이 중심이 되어 본 격적인 국문의 근대적 연구를 수행하고 국문법을 만들고 맞춤법을 통일시킬 것을 구상
.숭실중학 재학시 국어문전을 수업 받음
.일본 유학시절「일본어 문법」의 국역
3) 유길준 선생의 '誤落'과 김민수의 '剽竊'문제
.'誤落'본의 전래된 제문제
- 정확한 의미의 불확정성(수중에서 나감, 다른 사람에게 감, 도둑맞음 등)
- 오락된 고본이 오늘까지 전함(유길준 후손들에게)
- '誤落'의 장소와 시일의 미정
; 유길준 선생의 귀국 1907년 9월 / 최광옥의「대한문전」초판과 재판 1908년
1월, 6월
.김민수의 剽竊설
; 유길준의 제 4차 고본「조선문전」
- 어느 구절이나 학리를 그대로 출간하지 않음
- 일본문법 체제를 도입: 사람들은 새로운 학문이 생겨난 것으로 봄
주제3: {대한문전}이 국어 문법학사 상에서 갖는 의의는 어떠한가?
우리 나라 국어학은 갑오경장 이후 획기적 전환을 경험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전환의 촉발은 바로 <대한문전>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갑오경장 이전의 국어학은 음운·문자학에 일관되어 있었고 학문적 배경이 되는 언어관도 글자의 생성과정을 이원론적으로 설명하는 역철학에 입각해 있었다. 즉, 국어학의 학문적 체계가 아직 미분화되어 연구 범위가 한정되어 있었으며 국어학을 인문과학의 한 부분으로써 위치지어 주는 근대적 언어관이 확립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갑오경장의 혁신적 변화는 우리 국어학에도 상당한 변혁을 가져왔다. 전래적 민족주의 사상을 더욱 굳히는 동시에, 언어관의 근대화와 연구의 대상 확대, 연구 방법론의 과학적 체계화등을 가져왔다.
우리의 국어 연구사상에 있어 <대한문전>이 가지는 가장 큰 의의는 '말본갈'이라는 새로운 연구 대상을 출현시켰다는 점에 있다. 물론 <대한문전>이전에도 문법적 서술이 종종 있었지만 대개 외국인의 손에 의하여 제작된 구라파어의 말본 연구서들이었다. 우리 나라 사람의 손에 의하여 연구된 것은 이봉운의 <국문정리>가 최초였다. 그는 단어들을 21종으로 나눠 문법적으로 분류시킨 '어토명목'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이는 의미상의 분류로써 서양문법의 체계와는 다른 관점이었고 따라서 언어학적 평가할 만한 가치는 없다고 할 수 있다. 인문과학으로서의 언어학적 평가 가치를 논할 수 있는 것으로는 두 말할 것 없이 <대한문전>이 최초의 저술이라고 할 수 있다. 초기국어문법은 학교문법에서 발생하고 발달하였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거의 영어문법에서 도입된 라틴 문법이었다. 그리하여 라틴 문법의 체계에 따라 국어를 8품사로 나누고 문장의 종류를 4종으로 구분하였다. 이것은 또한 서구문법을 모방한 초기의 일본문법을 두루 참조하였을 것으로도 짐작되고 있다.
근대 인문과학의 학문적 배경은 분석학과 논리학 및 심리학이었다. 그리고 국어학의 사상적 배경은 "국어는 우리 민족의 정신적인 새김이요, 우리 언어 공동체의 생각과 행동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라는 언어철학관이 전통적인 민족 자존의 사상과 결합하여 새로이 이룩되는 근대적인 민족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말본갈은 규범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이에 대해 최광옥은 '문전'의 뜻매김을 '사람의 사상을 써내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하였고 유길준은 '규범 문법이란 옳게 말하고 옳게 씀을 가리키는 법'이라 하여 <대한문전>의 규범 말본적 성격을 뚜렷히 하였다.
근대 국어학은 언어관에 있어서 분석주의적 관점에 선다는 면에서 전후의 국어학과 차별성을 보인다. 15세기 이래 음운론에서는 음성을 설명함에 있어 대체로 추상적 기술을 하고 '역'의 뜻을 더하는 이원론적 음성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대한문전>에 이르러 드디어 낱소리 인식에 있어 역학에 뜻을 두지 않고 물리적, 생리적, 음성학적으로만 설명을 하는 일원론적 음성학이 확립되었다. 그러나 낱소리 분석의 한계가 모호할 뿐만 아니라 음의 뜻매김과 모순되는 모습을 보이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품사 분류에 있어서는 의미-기능주의에 입각해 있었는데 이것은 의미를 중심으로 하고 기능을 부차적인 것으로 하는 것으로 분류에 있어 객관적 통일성이 보장되기가 힘들다는 한계가 있었다. 또 국어에 대한 언어관에 있어서 분석적 인식의 언어관에 기본을 둠으로써 어간과 접미사를 따로따로의 낱말로 인식하려는 의식이 엿보이고 있지만 그 분석의 한계가 모호하거나 혼란하고 종합적인 면모를 보인다는 한계점이 있다. 문장의 인식에 있어서는 기본문을 두고 구성요소를 나누어 그것을 더하거나 빼거나 해서 새론운 문장 형식이 만들어짐을 인식하고 있음이 보이는데 이것은 문장의 변환관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고 보조 과학으로써 논리학이 개입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대한문전>은 홑소리의 혼동과 낱말 한계의 모호성, 형태소 분석의 잘못, 낱말 경계에 있어 다원론적 관점의 도입 등 한계를 지적할 수 있으나 아직 국어 연구에 있어 과학적인 연구방법론 및 언어관을 최초로 적용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인정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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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9.16
  • 저작시기20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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