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론] 나쓰메 소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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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탄생과 성장

2. 개인적 업적

3. 활동과정·일화·어록

4. 다른 인물과의 비교

5. 사후평가

본문내용

악화되어 다량 의 출혈 후 혼수 상태에 빠졌다가 겨우 호전된다.
1911(44)- 2월, 문학박사 학위 거부. 『문』간행
1912(45)- 1월 『피안에 이르기까지』를 아사히 신문에 연재. 이 무렵 남화풍의 수채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12월부터 『행인(行人)』을 아사히 신문에 연재. 『피안에 이르 기까지』간행.
1914(47)- 4월부터 『마음(心)』을 아사히 신문에 연재.
9월, 위궤양으로 네 차례에 걸쳐 와병. 『행인』,『마음』간행
1915(48)- 3월, 교토로 놀러가는 도중에 위궤양으로 인해 다섯차례나 쓰러진다. 8월부터 『미치구사(道草)』를 아사히 신문에 연재한다. 『미치구사』간행.
1916(49)- 5월부터 『명암(明暗)』을 아사히 신문에 연재(12월 사망함으로서 중단됨)
8월경부터 많은 한시를 짓는다.
12월 9일, 내출혈로 사망
4. 다른 인물과의 비교
반자연주의의 두 거목은 모리 오가이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이다. 모리 오가이는 소 설『청년』『기러기』등을 발표하고, 나츠메 소세키는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산 시로(三四郞)』 『명암(明暗)』등이 있고, 그의 문하에서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 介) 또는 기쿠치 간(菊池寬) 등과 같은 신현실주의 작가가 배출되어 현실을 이지적으로 재 구성하였고, 역사소설에 새바람을 불어넣으며 명확한 주제를 담았다.
그들은 각각 영국(영문학)과 독일(의학)에서 유학한 메이지 시대의 대표적 지식인이자 문 학가이다. 영국과 독일만큼 대조적인 두 사람의 삶과 문학세계를 비교해보면,
▲ 나츠메 소세키는 일본 근대화의 문제에 정면으로 부딪쳐나간 작가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유명한 강연 중의 하나인 '현대 일본의 개화'에서 외압에 의해 강요된 일본의 개화 는 피상적일 수밖에 없으며, 그런 개화의 영향을 받은 일본 국민은 왠지 모를 공허함·불 안·불만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러일전쟁의 '대승리'에 대한 찬미는커녕 전쟁의 비 인도성에 비판의 메스를 가한 소세키의 문학 세계는 성급한 서구화의 문제점과 군국주의의 폭력성을 경고했다. 소설 『산시로(三四郞)』에서는 등장인물 내면의 암울과 슬픔을 도쿄로 상징되는 현대문명과 대비시켜 강조함으로써 그것이 외압적 개화의 필연적 결과임을 전하 고 있다.
▲ 모리 오가이(森鷗外)에게 서양은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극복해야만 하는 이상이었다. 그는 지식욕과 호기심, 미래에 대한 야망으로 가득 찬 청년이었다. 그러나 현실에 굴복한 그에게는 소세키와 달리 근대화의 모순은 필연적으로 내면화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일 본 현실의 중압과 근대화(모리 오가이에게 있어서〈못다한 꿈〉)의 사이에서 고뇌하고 결 국 현실에 순응함으로써 좌절을 경험한 메이지 지식인의 내면적 굴절과 우울을 그의 소설『무희(舞姬)』에서 잘 표현하고 있다.
5. 사후평가
나츠메는 일본 문학사에서 가장 빛나는 존재였으며 일본 최고의 영문학자이자 진정한 일 본 지성인이었다.
그는 가장 일본인다운 사람이었으며 동시에 가장 일본인답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메이지 유신으로 일본인들이 서구화와 군국주의에 열중할 때, 그는 성급한 서구화의 문제점과 군 국주의의 폭력성을 경고했다. 그리고 러일전쟁의 승리로 기고만장한 일본인에게 일본은 곧 망할거라고 말했다. <산시로>에 이런 부분이 나온다.
"수염 기른 남자는, '우린 서로가 불쌍하군!'하며 얘기를 시작했다. '이런 몰골을 하고 이 렇게 볼품 없어서는, 아무리 러일 전쟁에 이겨 일등국이 되어도 소용없지요.'
…(중간 생략)…
산시로는 러일 전쟁 이후 이런 사람을 만날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 했다. 정말이지 일 본인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이제부터 일본도 점점 발전하겠지요.'라고 변호했다. 그러자, 그 남자는 태연하 게, '망하고 말거요.' 라고 말했다."
또 이런 부분이 나온다.
"새로운 서양의 압박은 사회상으로나 문예상으로나 우리 신시대의 청년들에게 있어서는 구식 일본의 압박과 마찬가지로 고통이다. 우리는 서양의 문예를 연구하는 사람이다. 그 러나 연구는 어디까지나 연구다. 그 문예 밑에 굴종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우 리는 서양의 문예에 얽매이기 위해서 이것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 얽매인 마음을 해 탈하기 위해서 이것을 연구하고 있는 것이다. "
이는 곧, 지나친 서양에 대한 동경과 열등의식을 경계하는 나츠메의 '자기본위' 정신을 보 여주고 있다.
나츠메 소세키의 '자기 본위' 사상은 우리 한국 지식인도 머리에 새겨 둘 가치가 있다. 동 양 지식인들에게 뿌리깊게 남아 있는 서구 문명에 대한 열등감과 지나친 동경, 우리는 그 것을 극복해야 한다. 서구 지식 중에서 쓸데없는 것은 배우지 않으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 다. 서구 지식이라면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선입견도 버려야 할 것이다.
영국 유학 시절, 그는 밥보다 책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책을 사기 위해 식비를 줄인, 말 그대로, 그는 학문에 미친 사람이었다. 미학, 철학, 역사, 문학, 과학, 회화, 음악 등 다양 한 분야의 지식 습득과 끝이 안 보이는 독서량은 특히 본받아야 할 점이다.
우리 나라 소설가들은 글을 써서 성공하면 국문과 교수가 되는 경우가 많다. 소세키는 그 반대였다. 교수직을 박차고 나와 전업 작가가 되었다. 또, 일본 문무성에서 박사 학위를 수 여하겠다고 제안했을 때 거절했다. 남들이 그렇게 바라는 지위와 명예를 훌훌 털어 버리고 글쓰기에 전념했다. 그는 진정한 작가였다.
♤참고 문헌 및 자료 출처
·권 건,『일본근대작가의 이해』학사원, 1997
·시사일본어사, 『坊っちゃん』
·中村みすお,고재석/김환기 역『일본 메이지 문학사』동국대학교 출판부, 2001
·http://kundera.com.ne.kr/japannovel/soseki.htm
·http://100.lycos.co.kr/directory/10020405/10020405_1.shtml
·http://www.jls.co.kr/japan/information/jmony.htm
·http://hometown.weppy.com/~hotfood/book/liter/novel/jap/sansiro.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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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9.20
  • 저작시기20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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