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매트릭스와 그 구도의 메시지

본문내용

면 그만이야. 빨간 알약을 선택하면 당신은 이 이상한 나라에 남게 되고, 그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보게 될 거야."
빨간 약을 먹고 난 네오는 이제 매트릭스를 위한 에너지를 제공하는 속박된 삶에서 벗어나 실재를 똑바로 인식할 수 있는 본래의 눈을 뜨게 된다. 그가 가상현실의 네오에서 진짜 세계의 네오로 다시 태어날 때의 장면은 무척 인상적이다. 잠수함에서 목이 없는 누더기 같은 옷을 걸치고 잠에서 깨어난 네오의 골방에 역시 비슷하게 남루한 옷을 입은 모피어스가 들어온다. 머리털이 거의 없는 남루한 차림의 두 남자의 모습은 마치 깨달음에 도달하기 위해 고행의 길에 접어든 스님의 행색마저 느끼게 한다.
어쨌거나 이제 네오는 그야말로 그 알약을 먹기 이전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삶을 살게 된 것이다. 그가 매트릭스 안에서 토머스 앤더슨으로서의 삶을 사는 동안 실제로는 에너지 공장의 부속품처럼 속박되어 있으면서도 그는 멋을 내고 맛있는 것을 먹고, 멋진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삶을 산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의 본래 모습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 말이다. 그러나 이제 그 모든 매트릭스 안의 삶의 모습이 덧없는 것임을 네오는 깨닫게 되었다. 자신을 마음의 감옥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첫발을 내딛은 것이다.
영화가 보여 주는 온갖 드라마틱한 폭력과 전투 장면들에도 불구하고 이후의 네오의 모습은 마치 불교의 가르침과도 같이 자신의 마음을 자유롭게 하는 면모가 차근차근 그려지고 있다. 네오가 오라클을 만나러 갔을 때 대기실에서 나눈 동자승과의 대화가 그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혼자 앉아서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숟가락을 굽혔다 폈다 하는 동자승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네오에게 동자승이 말을 건넨다.
"휘게 하려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건 불가능해요. 진실만을 깨달으려고 하세요."
"무슨 진실?"
"숟가락이 없다는 진실. 나의 마음만이 있을 뿐이예요."
"숟가락이 없다고?"
"그러면 숟가락이 아닌 나 자신이 휘는거죠."
고승들의 선문답을 연상시키는 이 대화는 나중에 네오가 트리니티와 같이 요원들에게 붙잡힌 모피어스를 구하러 갈 때 그가 잡혀 있는 빌딩의 엘리베이터의 줄을 타고 올라가면서 서로에게 외치는 주문으로 다시 한 번 사용되고 있다. 이것은 설사 동자승과의 그 대화가 선문답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이야기라 할지라도, 현실보다 더 생생해서 오히려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드는 가상현실 매트릭스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매트릭스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진정 느끼는 나의 마음만이 있을 뿐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깨달으라는 메시지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또 한 가지 이 영화가 불교적 구도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는 포인트는 반복적으로 개인적 깨달음에로 이끌어 가는 방식에 있다. 모피어스와 트리니티는 항상 의문스러워 하고 당혹해하는 네오에게 자신들이 해줄 수 있는 것은 문 앞까지 그를 안내하는 일뿐이라고 한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은 그가 직접 해야한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매트릭스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말로 설명할 수는 없고 직접 경험해야 한다고 알려 준다. 이것은 깨달음이 책 속에 있지 않다고 하는 불교의 가르침을 은연중에 생각나게 한다. 누구나 깨달음에 도전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구든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그것은 다른 사람이 대신해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날이 혁명적으로 발전해 가는 과학과 기술의 전성기에 이처럼 실재란 무엇인가라는 무거운 주제를 건드리면서 그 실재를 볼 수 있는 힘을 종교적인 메시지를 통하여 암시하고 있는 영화 "매트릭스"는 상대적으로 약하게 느껴지는 종교의 의미를 다시금 진지하게 생각하게 해준다.

키워드

영화 감상,   매트릭스,   평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