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 그 군중조작의 역사에 대한 고찰과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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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볼 수 있다.
오늘날 공산주의라고 할 때는 문헌에만 남아 있는 죽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하나의 정치세력으로서 활동하고 있는 현대 공산주의, 즉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리킨다. 즉, 20세기 초 러시아의 특수한 조건 하에서 발전시킨 사상 및 이론의 체계와 실천운동으로서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 공산당이 수립한 과거 소련·동유럽·중국대륙·북한·인도차이나반도 등지의 정치체제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와 파시즘의 유사성 문제다. 위에서 든 파시즘의 특징 중‘민족주의’만 빼면 나머지는 그대로 스탈린주의 정치문화에도 적용된다. 대중동원, 수령 숭배, 일당독재, 폭력의 정당화. 실제로‘나치’라는 말은‘민족+사회주의’라는 말의 약자다. 파시즘의 창시자 무솔리니 자신이 한때 잘 나가던 공산주의자였고, 파시스트 대중의 상당수가 공산주의적 과거를 갖고 있었다. 이 놀라운 유사성과 친화성. 그 때문일까? 파시즘 운동의 초기엔 공산주의자들 역시 파시즘을 공산주의의 길에서 잠깐 벗어난 이단종파 정도로 생각했다. 심지어 칼 라덱이란 사람은 아예 코민테른에 독일공산당과 국가사회주의의 공동전선을 꾸릴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자유주의에 대항하는 공산주의와 파시즘의 공동전선?
물론‘공산주의=파시즘’이라는 간단한 등식에는 좌익을 범죄시하고, 파시즘의 책임을 엉뚱하게 공산주의 정치문화에 돌리려는 우익 이데올로기의 냄새가 난다. 하지만 양자 사이의 유사성과 친화성은 부정할 수 없다. 가령 언젠가 러시아 극우파들의 깃발을 보았다. 빨간 바탕의 깃발에 검은 색의 선으로 둘러싸인 둥근 원. 그 안쪽 하얀 바탕에 그려진 검은색 낫과 망치. 나치 깃발과 소련 깃발의 이 기묘한 공존. 어떻게 이 두 극단이 사이좋게 공존할 수 있을까? 혹시 둘 사이에 뭔가 공통의 바탕이 있는 게 아닐까? 실제로 있을 게다. 그 공통의 바탕이란 시민의식의 미성숙이다. 모든 것을 집단 혹은 그것을 대표하는 지도자에 투사해놓고 그와의 동일시 속에서 제 정체성을 찾는 자기소외의 정치학. 이 수준 낮은 코미디는 정치적 자의식을 가진 자율적 시민에게는 통하지 않을 게다.
또한, 한 가지 지적해야 할 점은, 무솔리니나 히틀러나 정략적으로 사회주의를 공격하면서도 사회주의적 요소를 은연중에 드러내야 할 필요가 있었다고 하는 1920년대와 30년대의 정세이다. 무솔리니의 파시스트당과 히틀러의 NSDAP에만 국한시켜 볼 때에 그들은 다양한 계층의 지지를 받을 필요가 있었다. NSDAP의 25개 조 강령을 흔히 '모자이크'라고 표현한다. 그 만큼 다양한 계층을 만족시켜주기 위한 다양한 이데올로기가 담긴 공약을 내걸었다는 점으로, 그 중에 사회주의적 성격을 띄는 강령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노동자를 포섭하고, 또한, 자본주의 경제 체제 하에서 피해를 입고 있으면서 동시에 볼쉐비즘에 대한 공포를 갖고 있던 소시민층을 포섭하기 위한 정략으로 봐야만 할 것이다. NSDAP의 좌파의 경우,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를 동시에 추구하려던 그룹으로 좌파적 경향이 짙었던 것이 사실이다. 돌격대 총수였던 룀, 슈트라 사 형제, 괴벨스가 여기에 해당하는데, 그러나 그들의 이념은 히틀러를 필두로 한 당 우파의 민족주의 세력에 의해 초기에 제거되었다. 이것은 거꾸로 말하면 사회주의는 파시즘 내에서 근본적인 이념이 아니었고, 정권장악 때까지 노동자들의 지지를 끌어들이는데 필요한 수단에 불과했음을 보여준다고 할 것이다.
결국 파시즘은 사회주의와 민족주의를 결합시킨 것은 아니었다. 사회주의적 요소가 보인다면, 그것은 일반 대중의 지지를 획득하기 위한 방편이다. 사회주의 세력을 누르기 위해서 일반대중의 지지를 획득하려 했다면, 민족주의말고도 그들을 유인할 수 있는 요소가 필요했던 것이다. 히틀러의 측근으로서 선전상을 지냈던 괴벨스는 공산당을 누르고, 나치가 승리를 얻기 위해서는 공산당이 취하는 방식으로 그들을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절인 5월 1일을 독일노동전선의 축제일로 삼은 것도 그들의 이러한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대중들은 교활하다. 43년 무솔리니가 실각한다. 탈출 도중 적발되어 사살된 ‘두체’(‘위대한 장군’이란 뜻)의 시체가 밀라노의 어느 주유소 건물에 거꾸로 매달리자, 대중들은 생시의 그를 맞던 때만큼 열광적인 환호를 보낸다. 이를 바라보며 자기의 최후를 예감한 히틀러는 “현명한 자”답게 제 시체를 흔적도 없이 태워버리라고 명령한다. 그후 50여년. 적어도 유럽에서 파시즘은 이제 과거의 일이 되었다. 물론 최근에 극우파들이 다시 등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걱정할 거 없다. 마르크스의 말대로 역사는 두번 반복된다.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희극으로. 낡은 역사를 반복하는 극우파들은 목하 마르크스가 말한 그 희극을 연출하는 중이다. 인류에게 파시즘에 대한 내성은 어느 정도 갖추어졌다.
20세기를 야만의 세기로 기록하며 파시즘은 우리에게 한 가지 교훈을 남겼다. 사실 자유민주주의에는 한 가지 맹점이 있다. 즉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다 보니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사상의 자유까지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민주주의의 수단으로 민주주의 자체를 파괴”하겠다는 자들까지 포용했던 바이마르 민주주의는 그 대가로 합법적 자살을 해야 했다. 합법적으로 파시스트에게 전권을 넘겨줄 수는 있다. 하지만 거기서 합법적으로 민주주의로 돌아오기란 불가능하다. 이것이 파시즘이 우리에게 남긴 교훈. 그래서 우리는 관용을 부정하는 파시스트들에게만은 관용을 베풀 수 없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자기부정이다.
얼굴 없는 군중 대 극성스런 초인의 콘트라스트. 이것이 파시스트 선동의 기본구도다. 이 초대형 키치 예술은 파시스트 독재의 미학적 이미지, 즉 “지도자는 번거로운 의회의 매개 없이 군중의 의지를 직접 대변한다”는 생각의 그림이다. 또 그것은 “진리는 지도자의 입에서 군중에게 직접 전달된다”는 파시스트 반지성주의의 그림이기도 하다. 원래 군중과 천재의 굳건한 결합 속에는 대화와 지성이 끼여들 자리가 없는 것이다. 얼굴 없는 군중과 극성스런 천재, 극단적 몰개성과 극단적 초개성, 마조히스트 군중과 사디스트 초인의 이 행복한 결합. 그것이 바로 파시즘의 초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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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9.22
  • 저작시기20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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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268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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