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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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동서양 고전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A형
최재우
이익
정약용
아리스토텔레스
갈릴레오
니체
프로이트

B형
일연
데카르트
콩트
하이데거
사르트르
푸코

본문내용

성의 관련은 자신의 죽음과 만날 자유(das Freisein fur den Tod), 즉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고 그 죽음과 지속적인 관련을 맺는 것으로 체험된다. 불안 속에서 모든 존재자는 '무(無)와 무처(無處)'로 빠져들고, 인간은 자신의 실존 속에서 방황하면서 어디에서도 편안함을 느끼지 못한다. 인간은 무와 대면한다. 이제 평범하고 명백한 일상성은 모조리 사라져버린다. 사실 이것은 좋은 일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이제 진정한 존재의 가능성과 대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이데거의 경우, '맑은 정신의'(nuchtern) 불안과 그 속에 함축된 죽음과 대면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방법론적으로 중요하다. 즉 근본적인 것들이 드러난 것이다. 드러난 구조들 중에 기꺼이 행동할 가능성들도 있다("…아는 즐거움[die wissende Heiterkeit]은 영원으로 통하는 문이다"). 불안은 사람에게 존재로 가는… 길을 열어준다. 그렇다고 해서 존재가 두려움의 어두운 측면과 연루되어 있다는 말은 아니다. 존재는 빛과 즐거운 일(das Heitere)과 어우러져 있다. 존재는 "자기 마음대로 방침을 정한다". "존재를 사유하는 것"은 자신의 (참된) 집에 이르는 것이다. 하이데거 연구자들은 존재와 사유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로 자주 골머리를 앓지만, 분명한 것은 하이데거가 인간 숭배를 거부하고 좀더 큰 어떤 것에 주의를 기울이려 했다는 사실이다.
사르트르 : 사르트르는 파리에 있는 앙리 4세 리세에 들어갔으나, 얼마 뒤 어머니가 재혼하고 나서는 라 로셸에 있는 리세로 옮겼다. 거기서 그는 유명한 고등사범학교에 입학, 1929년에 졸업했다. 사르트르는 자신이 이름붙인 '부르주아적 결혼'에 저항했지만, 아직 학생이던 시절 시몬 드 보부아르와 결합하여 평생동안 안정된 동반관계를 유지했다. 시몬 드 보부아르의 회고록 〈얌전한 처녀의 회고담 M moires d' une jeune fille rang e〉(1958)과 〈나이의 힘 La Force de l' ge〉(1960)은 학생시절부터 50대 중반 때까지 사르트르의 생활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는 고등사범학교와 소르본 대학에서 장차 매우 유명한 문필가가 될 여러 사람을 만났는데, 그중에는 레몽 아롱, 모리스 메를로 퐁티, 시몬 베유, 에마뉘엘 무니에, 장 이폴리트,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 등이 있었다. 1931~45년에 사르트르는 르 아브르, 라옹, 마지막으로 파리의 리세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 활동은 2차례, 즉 한번은 베를린에서 1년 동안의 연구생활과 또 한번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 위해 1939년 징집되면서 중단되었다. 그는 1940년에 포로가 되었다가 1년 뒤 풀려났다.
르 아브르에서 가르치는 동안 〈구토 La Naus e〉(1938)를 출판해서 처음으로 명성을 얻었다. 일기체 형식으로 쓴 이 소설은 로캉탱이란 사람이 사물 세계와 마주치면서, 즉 다른 사람들의 세계뿐만 아니라 바로 그 자신의 신체를 인식하면서 겪는 감정의 급작스런 변화를 묘사한 것이다. 몇몇 비평가는 〈구토〉를 병리학적인 증상으로, 즉 신경증적인 현실도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비평가들은 이 작품이 매우 독창적이고 지극히 개인주의적이며 반사회적인 작품이고, 나중에 전개할 철학적 주제가 담겨 있는 작품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르트르는 독일의 철학자 에드문트 후설로부터 현상학적 방법을 이어받았는데, 이 방법은 연역보다는 주의깊고 편견 없는 기술(記述)을 제안한다. 그는 이 방법을 매우 능숙하게 사용하여 연속적인 세 작품, 〈상상력 L'Imagination〉(1936) 〈감정 이론 개요 Esquisse d'une th orie des motions〉(1939) 〈상상적인 것:상상력에 관한 현상학적 연구 L'Imaginaire:Psychologie ph nom nologique de l'imagination〉(1940)를 썼다. 그러나 뛰어난 재능을 지닌 대가의 면모를 드러낸 작품은 〈존재와 무 L' tre et le n ant〉(1943)이다. 그는 인간의식 또는 비사물성(n ant 無)을 존재, 즉 객관적 사물성( tre 存在)과 대비시킨다. 의식은 바로 이 특징 때문에 모든 결정성에서 벗어나 있다. 이 작품의 메시지는 그 모든 내용과 더불어 희망적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노력이란 지금도 앞으로도 쓸모없는 것이라는 끊임없는 여운 때문에 이 작품은 비극적이기도 하다.
푸코 : 프랑스의 구조주의 철학자. 사회를 움직이는 여러 개념과 약호(略號), 특히 정상인과 비정상인을 구분하는 것처럼 사회를 규정하는 '배타 원리'에 대한 연구로 유명하다.
외과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파리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1960~68년 클레르몽페랑대학교와 독일(당시의 서독) 스웨덴 등지에서 강의했다. 그후 파리 뱅센대학교에서 2년을 보냈고, 1970년부터 죽을 때까지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사상사 교수를 지냈다. 초기에는 주로 정신병과 그 치료의 역사에 관해 연구했다. 〈광기와 문명:Folie et D raison:Histoire de la folie l' ge classique〉(1961)은 17세기에 정신병이 어떻게 분류되었는지를 다루고 있다. 〈감시와 처벌 Surveiller et punir:Naissance de la prison〉(1975)에서는 현대 형벌 체계의 기원에 대해 탐구했다. 이런 여러 저작에서 푸코는 정신병원 병원 감옥 등은 배타를 실행하기 위한 사회적 장치라고 주장했고 이들 장치에 대한 사회적 태도를 관찰함으로써 권력의 발달과 행사(行使)를 엿볼 수 있다고 보았다. 푸코의 또다른 저작으로는 〈사물의 질서:인문과학의 고고학 Une Arch ologie des sciences humaines〉(1966) 〈지식의 고고학 L'Arch ologie du savoir〉(1969) 등이 있다. 〈성(性)의 역사 Histoire de la sexualit 〉(3권, 1976~84)에서는 고대 그리스 이래 서양인이 성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왔는가를 추적했는데, 이 책으로 프랑스 지식인의 선두주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명성을 굳혔다.
  • 가격1,000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04.10.04
  • 저작시기2004.0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68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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