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유적지를 다녀와서(풍납토성, 몽촌토성, 방이동고분)
본 자료는 3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해당 자료는 3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3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백제유적지를 다녀와서(풍납토성, 몽촌토성, 방이동고분)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풍납토성의 역사 및 위치
2. 몽촌토성의 역사와 위치
3. 방이동 고분군
4. 각각의 유적지 안내판 내용
5. 백제 고분의 변천
6. 답사를 하면서 느낀 점

본문내용

라 그런지 인상에 남는 것이었다.
풍납토성에 대해선, 이전까지는 서울에 그것이 있는지 조차도 모르고, 아마 그곳을 지나쳤더라도 저게 뭔데 저렇게 생기고, 또 저곳에 위치하고 있을까란 그저 의문의 단계에서만 끝났을, 색다르게 생긴 지형의 그저 한 형태에 불과했었다. 그러나, 이번 답사를 위해 조사하고 알아 가면서 너무나 신기했고 그렇게 허술한 보존의 손길 아래서 조금씩 그 모습을 잃어 가고 있음에 너무나 안타까웠다.
풍납토성, 찾기 어려우면 어쩌지란 불안을 완전히 깨버리고 너무나도 쉽게 그 자취를 드러낸 역사적 산물. 그러나, 그것을 보는 순간 불안만을 깨뜨려 버린 것이 아니라, 역사지 답사에 대한 나의 기대마저도 무너뜨렸다. 사실, 풍납토성을 처음 봤을 때 별 것 아님에 대한 실망보다는 현대인들의, 반만년 역사를 가진 민족의 후손임을 언제나 자랑스레 떠벌리는 우리네들의, 그 유구한 역사적 산물에 대한 횡포에 너무나도 어처구니없었고 화가 났다.
흙으로 쌓아 올린 성. 천 여년의 비바람과 모진 시련도 다 이겨내고 우리 앞에 여전히 그 자태를 자랑하고 있는 성. 그러나, 꼭대기라고 하는 곳에서 바닥과의 높이는 불과 몇 백미터쯤 될까. 이 성이 제 기능을 하던 백제시대엔 분명히 커다란 높이에 사람들이 올라가기 힘들었었을 높이였었겠지만, 그 시대를 지내고, 토성에 대한 인식이 잊혀져 감에 따라 조금씩 깎여지고, 허물어져서 이제는 누구나 쉽게 올라갈 수 있을 만큼의 두리뭉실한 언덕처럼 변해 버렸다. 그곳의 뒤쪽 잔디에서 어떤 꼬마 아이와 함께 오신 할머니께서 나물을 캐고 계신 것을 보았다. 너무나 한가로워 보이는 풍경이었다. 이제는 정말로 휴식터처럼 저런 어린애마저도 넘나들 수 있는 곳이 되어 버렸구나란 생각에 왠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아파트들과 주택가 한 가운데에 우뚝 서 있기 때문에, 풍납토성은 국보라기 보단 왠지 현대 문명의 걸림돌이기라도 한 듯 서있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토성 한가운데가 잘려져 사람들의 원활한 소통을 위한 도로가 나 있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누가 저런 짓을 했을까?" 이런 의문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사적 유물에 별고 관심조차 갖지 않았던 나였지만, 이번 풍납토성의 방문은 너무나도 충격이었고, 나와 같은 사람들의 역사에 대한 무관심이 우리의 소중한 보물들을 황폐케해 버린 것 같아 죄송스런 마음이 들었다.
일본에도 우리의 이 풍납토성처럼 시내 중심에 있는 옛 건축물이 있다고 한다. 잘은 모르지만, 예전에 뉴스에서 듣기론, 일본 사람들은 그 건축물 보호를 위해 여러 유능한 사람들의 계산적인 이론에 의해 건축물도 손상시키지 않고, 일본 사람들도 살 수 있도록 건물을 짓고, 도로를 만든다 하였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렇게 방치하고만 있는 것일까. 우리의 유산이 그네들보다 못해서인가? 분명 우리 선조들은 그들에게 전수까지 할만큼 뛰어난 기술과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우리는 그 위대한 유산이 황폐화되어 가고, 보존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데도 그저 방관만 하고 있단 말인가. 그 이유를 단순히 보존할 만한 여유가 없는 나라에 위치하고 있다는 탓으로만 돌려야 하는 것일까.
그 다음으로 방문한 몽촌토성을 보고 그래도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몽촌토성 역시 그곳이 공원으로 채택되지 않았다면, 풍납토성만큼이나 소홀히 관리되었겠지만, 이유야 어쨌든 간에 보호의 손길 안에서 잘 보존되고 있음에 왠지 감사함을 느꼈다. 풍납토성을 방문할 때와 달리 여기저기에서 답사 온 아이들의 모습도 쉽게 찾아 볼 수도 있었고, 게다가 공원 안에 들어서 있는 역사관에 의해 더 많은 정보까지 얻을 수도 있게 돼 있었다. 그 규모면에서도 풍납토성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방대했고, 역사관 안에서 볼 수 있었던 그 출토물들과 주거지였다는 곳에서 보여지는 옛 사람들의 흔적들....
몽촌토성을 답사하고 나서야, 다른 역사지를 답사했었을 때 흔히 느끼는 '여기가 우리 조상들이 살았던 곳이구나, 어머, 이런 것들을 썼었네'하는 식의 신기함과 감탄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답사지는 백제 고분군이었다. 서울에 이제까지 살아왔던 사실이 정말로 무색할 정도로 이 부근 일대에 유적지가 모여 있는 줄을 몰랐었다. 물론 다 모여있긴 했지만, 하루에 다 답사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러나, 왠지 모두가 연관되는 곳들이어서 함께 답사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한번 더 방문한 이곳, 유물 밀집 지대(?)는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초록빛 잎을 가지 나무들이 이제 막 생명의 활발히 시작한 양, 밝은 햇살을 받고 있던 나무들이 싱그러워 보였다 그리고 고분군 높은 담벼락으로 길게 늘어 뜨려져 있는 노란 개나리 잎들 또한 그 기분을 한층 더 돋구어 주고 있었다.
백제 고분군. 분명 무덤의 모습들이었지만, 파아란 잔디에 뒤덮혀서 잘 가꾸어진 나무들과 그 사이사이의 운치있는 길들이 한데 어우러져 그곳은 유적지라기보다 경치 좋은 휴식터, 혹은 산책로처럼 편안히 느껴지기도 했다.
이 곳에는 모두 8기의 고분이 있다고 하는데, 발굴 작업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곳도 있었다. 제1호분 앞에서 사진을 찍을 때에는 으시시한 느낌이 들면서 무덤가이기 때문에 이곳의 입장이 밤에는 허용이 안 되는 것일꺼란 추측도 했다. 그 내부의 모습은 너무 캄캄해서 볼 수 없었고, 들어가 볼 수도 없어서 횡혈식 무덤이라는 것이 도대체 어떻게 생긴 것인지 몰랐었는데, 저번에 역사 스페셜이란 TV 프로그램을 보던 중 유인촌이 방이동 고분군의 내부로 들어가서 횡혈식 묘의 형태를 보여준 적이 있어서 그때 대충 알게 되었다. 내가 답사했던 곳. 사전 지식이 있는 곳을 TV에서 보게 되니 더더욱 이해가 잘 가고 인상도 깊이 남을 수 있었다. 이렇기 때문에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던가!
어쨌든, 이번 답사들을 계기로 조금 더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좀 더 주의 깊게 주위를 둘러 볼 수 있게 되었다. 끝으로, 우리의 모든 소중한 유산에 대한 정부의 더 큰 관심을 바라면서 이번 답사 기행문을 마치려 한다.
참고문헌: <서울의 문화유산 탐방기> 숲과나무 서울학연구소 著
<우리고장 문화유산> 개마서원 전국 시장, 군수, 구청장 협의회 著
  • 가격1,000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04.10.23
  • 저작시기2004.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71160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