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국과 약소국의 외교현황(중국과 대만의 외교현황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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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강대국과 약소국의 외교현황(중국과 대만의 외교현황에 대해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중국의 대만 정책과 대만의 중국 정책
1. 중국의 대만 정책
(1) 등소평 시기
(2) 강택민 시기
2. 대만의 중국 정책
(1) 장경국 시기
(2) 이등휘 시대
(3) 진수편 시기

Ⅲ. 중국과 대만의 대외관계에 따른 중ㆍ대만 관계
1. 대미관계
2. 기타 서방 주요국가와의 관계

Ⅳ. 결론

본문내용

계발전에 주력하되 다른 한편으로는 대만과의 비정치적 관계를 유지해 중ㆍ대만의 현상을 유지하고 이를 통해 미국의 정치ㆍ경제ㆍ군사적 이익을 최대화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對中정책과 對臺灣정책은 충분히 변화할 수 있다. 이러한 의도는 1994년 9월 클린턴행정부가 미국의 ‘북미사무조정협의회(The Co-ordination Council for North America Affairs)'를 ’대만대표부(The Taipei Economic and Cultural Representative Office)'로 격상시키고 부분적으로 대만 고위관리들과 상호 접촉을 허용하면서 점차 현실화 되었고 1995년 5월 22일 李登輝 총통의 訪美를 허용하면서 표면화되었다. 이것과 관련하여 중국은 강경한 반응을 보이며 보복조치의 일환으로 6월 16일 이도예 주미대사를 소환하기로 결정하는 한편, 訪美중이던 중국 군사대표단의 귀국조치, 지호전 국방부장의 訪美연기, ‘미사일기술통제협약(MTCR)' 협상 중단 등의 조치를 취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7월 10일 미국무부 대변인의 성명을 통해 중국을 유일한 합법정부로 인정하는 하나의 중국정책에는 변화가 없으며, 더욱이 대만과의 수교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러한 입장표명 이외의 별다른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1995년 8월 1일 Brunei에서 개최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참석과정에서 성사된 중ㆍ미 외무장관 회담은 양국간 현안을 논의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지만, 양국의 상이한 주장으로 별다른 성과를 얻지는 못하였다. 그 이후 中美 관계개선 과정에서도 미국의 ’대만관계법‘강조, 클린턴 美 대통령의 티베트 망명정부의 지도자 달라이 라마 접견, 대만 이원족 부총통의 訪美허용 등의 일련의 사건으로 계속된 갈등이 야기되었다.
이렇듯 대만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미국은 각자 자국에 이익이 되는 정책을 취했다. 중국은 中美관계와 대만문제 사이에서 양자를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조화시키기 위해 고민할 수밖에 없으며, 이것이 중국이 안고 있는 대외정책의 최대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기타 서방 주요국가와의 관계
李登輝정부가 대만의 UN가입 추진 등 국제적 지위 강화를 위한 공세적인 대외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 주요 국가들의 대만정책 변화 움직임 역시 양안관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이다. 특히 프랑스와 독일은 대만에 대한 무기판매문제와 관련하여 이미 중국과 적지 않은 갈등을 겪은 경험이 있으며, 앞으로도 미국의 대만정책 변화 여부에 따라 대만과의 관계변화를 추진할 가능성이 다분히 있다. 따라서 중국은 이 국가들과의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이들의 대만정책 변화 움직임을 계속 억제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1980년대 이후 프랑스와 독일은 중국과의 관계발전에 주력하고 대만과의 관계는 민간차원의 경제ㆍ문화교류에 국한시켰으나,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대만에 대한 무기판매와 고속전철, 원자력발전소 건설 등 대규모 프로젝트 참여와 관련하여 대만과의 관계발전을 조심스럽게 추진하여 왔다. 그러나 중국은 이들의 대만정책 변화조짐은 물론 정책변화를 부추기는 대만정부의 외교공세를 신랄하게 비난하는 등 지극히 민감한 반응을 보여 왔다. 특히 1993년 당시 대만에 미라지 2000 전투기 60대를 판매했던 프랑스에 대해서든 무기판매 교섭창구 역할을 해 온 광주 주재 프랑스 영사관 철폐를 요구하는 등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이처럼 90년대 초반 프랑스와 독일의 대만정책 변화조짐은 중국의 강한 반대로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였으나, 95년 이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대만에 대한 중국의 군사적 위협이 가해지면서 프랑스의 대만에 대한 무기판매문제가 부각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중국과의 관계를 우선순위를 두고 있기 때문에 이를 손상시키면서까지 대만과의 관계발전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 밖에 더욱 중요한 것은 미ㆍ일 신 안보체제 출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확대, 대만문제에 대한 미국의 노골적인 개입 등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반미감정이 집약적으로 표출된 ‘북경 공동선언’이다. 여기에서 양국은 미국의 패권주의 반대, 중국의 인권문제와 대만문제, 러시아의 체첸사태 처리에 대한 상호지지, 러시아의 아태지역 진출에 대한 중국의지지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였다. 이는 미국에 대한 반감을 기초로 한 중국과 러시아의 정치적 연대의 성격을 띄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Ⅳ. 결론
앞서 보았듯이 양국간의 교류는 활발해지고 있지만 국제사회에서의 지위 문제에서는 극단적인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대만의 입장에서는 과거에 가지고 있던 국제사회에서의 지위를 회복하려하고 있지만 중국의 입장에서는 절대적으로 방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대만은 나라가 아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대만 역시도 주권을 가지고 있는 하나의 국가이자만 중국이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이유 때문에 공식적인 국가로 인정받고 있지 못하는 것이다. 그 예를보면 올림픽 때 대만은 메달을 획득해도 국기가 올라가지 못하고 올림픽기가 올라간 것을 보면 알 수가 있다. 대만 입장에서는 억울하고 답답한 입장 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과거 손기정 선수가 금메달을 따고도 기미가요를 듣던 기분과 같을 것이다. 서론에서도 말했듯이 국제사회는 힘의 논리가 지배한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가 버티고 있기 때문에 작은 나라 대만은 지금처럼 살아가야 한다.
이처럼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한 강대국의 적극적인 외교정책으로 약소국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소극적인 외교를 취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잔인하겠지만 국제사회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힘의 논리가 지배한다면 힘을 기르는 방법 밖에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참고문헌>
문흥호, “양안관계 연구”, 『중국정치연구론』정재호 편, 나남
박두복, “이총통의 발언으로 중국 대만관계 악화”, 외교안보연구원 1999년 7월
정용하, “대만의 선거와 양안관계”, 한국민족문화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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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11.21
  • 저작시기2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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