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의 書}(The King's Book of Sports)를 통해 본 근세 영국의 레저(leis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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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2. {스포츠의 書}(King's Book of Sports)
3. 근세 영국의 레저: 정의
4. 근세 영국의 스포츠: 존재의 당위성
5. 결론

본문내용

일상의 한 부분으로 성행한 이유가 평등한 사회에 대한 일종의 환상의 기능을 하기 때문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 Keith Thomas, Religion and the Decline of Magic (New York, 1971), pp. 20, 111 참조
스포츠 역시, 같은 행위를 함으로서 공동체 의식을 함양시킬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도박에서와 같이 자신이 처한 사회적 상황과는 전혀 다른 규칙과 자질로 승부하는 일종의 평등한 경쟁이라는 새로운 환경에의 간접 체험이 아니었을까? 따라서 마을 축제에서 나타나는 스포츠의 이런 측면이야말로 통치자가 인지하고 있던 일종의 안전장치가 아니었나 하는 분석을 할 수 있겠다. 이런 맥락에서 Stuart 초기의 두 왕이 전통적 농촌 축제의 스포츠 행위를, Duke of Newcastle의 말처럼 "사람들 생각을 즐겁게 하여, 해롭지 않은 행동을 지속시키고 국왕에 대항하는 파당이나 반란을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
) A. S. Turberville, A History of Welbeck Abbey and its Owners, vol. I, (1938), pp. 174-76.
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 않았나 하는 추측을 해볼 수 있겠다.
5. 결 론
흔히 내란은 청교도들에 의한 스포츠 활동의 암흑기로 생각되어져 왔다.
) Allen Guttman은 크롬웰 집권 시대는 영국 스포츠사의 빈 페이지가 되었다고 표현했다. Guttman, "English Sports Spectators: The Restoration to the Early Nineteenth Century," in Journal of Sport History, vol.12, no.2 (1985): 103.
1644년 4월 8일의 법령은 "안식일에 어떤 게임, 스포츠, 혹은 오락도 불허한다"는
) W. B. Whitaker, Sunday in Tudor and Stuart Times (London, 1933), p. 147에서 발췌.
는 청교도들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 법령은 또한, 위배시 구금형을 시행하였을 뿐 아니라 『스포츠의 書』와 기타 안식일 준수에 위배되는 책과 팜플렛을 압수하여 공개적으로 불태울 것을 명하였다. 그러나 이 같은 강경한 억압책에도 스포츠 활동 자체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1652년 영국으로 돌아온 John Evelyn의 일기는 내란기에도 온갖 스포츠가 지속적으로 행하여지고 있었음을 잘 보여준다 Evelyn과 같은 지배 계층은 오랜 습관인 사냥, 매사냥, 마차 경주, 볼링과 뱃놀이를 즐겼고
) 1652년에서 1654년 사이에 Evelyn과 그의 아내가 즐긴 스포츠와 오락의 일부분이다. John Evelyn, ed., W. Bray, The Diary of John Evelyn (Oxford, 1955).
그보다 낮은 신분층 또한 과거와 같은 스포츠와 오락을 지속하였다. 법적 규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연극은 계속 상연되었고, 투계 또한 성행하였다. 실제로, Oliver Cromwell조차도 학창시절 열렬한 스포츠맨이었고, 1655년에는 Hyde Park에서 150여명의 콘월인들이 펼치는 헐링(hurling)
) 원래 밴디(bandy)라는 전통 경기에서 유래하여 후에 아일랜드인들에 의해 하키로 발전된 경기.
경기를 관전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 P. M. Young, The History of British Football (London, 1973), p. 65.
1647년 의회는 크리스마스, 부활절, 그리고 성령강림절(Whitsuntide)의 교회 축제를 금하는 대신 "학자, 견습공들, 그리고 기타 하인들"
) Whitaker, pp. 155-56.
에게 매달 둘째 화요일에 특별한 "레크리에이션과 휴식(relaxation)의 날을 가지도록 하는 법령을 발표하였다.
) Hill, p. 164.
즉, 날짜는 바뀌어 일요일은 아닐지라도 레크리에이션이 지속되는 것이다. '휴식' 이외에 레크리에이션을 지목하여 포함시킨 이 공위시대의 법령은 체제나 종교와 같은 이념의 포장 아래서 결코 사라지지 않는 즐거움의 추구라는 인간의 특질이 배어나는 스포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케 한다. 내란이 한창인 시기 청교도인 John Bunyan은 스포츠와 마을 오락이 얼마나 죄악인가를 강론하는 설교를 듣고도 "내 오랜 관습인 스포츠와 게임의 유혹을 떨칠 수 없어 기쁜 마음으로 설교 내용을 머릿속에서 털어버리고 놀러 나갔다"고 고백한다.
) John Bunyan, Grace Abounding (London, 1666), p. 45.
이 같은 본능의 추구는, 고대로부터 비롯한 종교적 의식과 융합된 형태로 지속되어 왔고, 사회 변화에 따라서는 단지 합법적 틀을 갈아입곤 하였을 뿐이다. 그리고 정치체제는 이 본능적 추구에 세부적 조절과 통제를 가하며 신분을 규정짓는 요소로 동원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영국 근세에 나타난 스포츠는 위로부터 부여한, 생산의 지속을 위한 필요악적 원기 회복의 기회였기보다는 삶의 한 부분인 본능의 추구라는 전통의 지속이라는 성격을 띠고 있었고, 통치자는 이를 필요에 따라 잘 배분하여야 할 일종의 의무를 갖고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James와 Charles의 『스포츠의 書』는 단순히 청교도를 향한 탄압의 기제가 아니라 근세 영국 사회에서의 스포츠가 지니는 전통적 중요성에 근거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레저를 완벽한 휴식의 개념으로 이해하고자 하였던 청교도들과는 달리 James와 Charles는 레저란 재미라는 요소가 첨가되어야 할 적극적 자유의 경험으로 보았고, 레저가 곧 스포츠 활동을 의미하던 피지배층에게 스포츠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의식의 연장이자 평등한 삶에의 일종의 간접 체험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다양한 스포츠 활동에 대한 장려와 금지는 근세 영국의 통치 메커니즘이 얼마나 숙성되어있었는지를 잘 나타내어 주고 있는데, 내란 이전의 스포츠 정책만을 통해 본다면 이들 통치자의 국민에 대한 이해와 통치 기술이 청교도들의 세계관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것이었다는 분석을 가능케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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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11.29
  • 저작시기2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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