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와 조선의 도자공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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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서론 ◉
1.고려 도자기(高麗陶磁器)의 전반적 흐름
① 전기(前期):발생기(發生期)
② 중기(中期):최성기(最盛期)
③ 후기(後期):쇠퇴기(衰退期)
2. 조선 도자기(朝鮮 陶磁器)의 전반적인 흐름
① 전기(前期)
② 중기(中期)
③ 후기(後期)
◉ 본론 ◉

Ⅰ.청자란?
◈고려청자◈
1.햇무리굽계 청자
2. 녹청자(綠靑磁)
3. 순청자(純靑磁)
4. 철화청자
5. 상감청자(象嵌靑磁)
◈조선 청자◈
1. 감화분청(嵌花紛靑)
2. 인화분청(印花紛靑)
3. 박지분청(剝地紛靑)
4. 선화분청(線花粉靑)
5. 철화분청(鐵畵紛靑)
6. 귀얄분청
7. 덤벙분장분청
Ⅱ.백자 (白磁)란?
◈고려시대
◈조선시대
1.상감백자(象嵌白磁)
2. 순백자(純白瓷)
3. 철화백자(鐵華白磁)
4. 청화백자(靑華白磁)
◉ 맺음말 ◉

본문내용

늬에 있어서도 표면에 공간을 많이 남기던 초기에 비하여 굵은 필선(筆線)으로 표면 전체를 충분히 활용하였으며 화재(畵材)도 추초(秋草)무늬와 같은 15 16세기의 가냘픈 무늬에서 용(龍)소상팔경(蕭湘八景) 십장생(十長生) 등을 그렸다.
19세기의 청화백자는 조선시대 백자의 최후를 상징하듯이 표면이 거칠고, 유조(釉調)는 회색이 많았으며, 목이 높고 몸이 길어 불안정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청화의 안료는 서양에서 양청(洋靑)이라는 안료가 수입되어 그릇 표면을 메우다시피 그림을 그렸으며, 무늬도 저속하고 안일하여 격을 잃고 있다.
청화백자의 기형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용구에서 문인 계급에게 공급되었던 문방구류에 이르기까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하다. 그러나 항아리접시사발떡살 등의 생활용품과, 병주전자잔 등의 주기(酒器), 필통연적필세(筆洗)필가(筆架) 등의 문방구, 묘지(墓誌) 인형 등의 명기(明器)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청화백자에 그리는 무늬는 시대 또는 그릇의 종류에 따라 각양 각색의 그림이 그려졌으며 중기 이후부터는 매우 복잡해져 여러 식물동물산수(山水)십장생문자 등을 복합적으로 그려넣었다. 대체로 초기의 문양이 간결하고 청초한 데 비해 시간이 흐를수록 둔하고 번잡하하였다.
▶▶청화백자운용문호(靑華白磁雲龍文壺) 국립중앙박물관 http://www.museum.go.kr/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크기는 높이 42cm, 입지름 15.3cm, 바닥지름: 15.8 cm 이며, 문양장식은 운용문(雲龍文),물상문(物象文),연주문(連珠文)등이다.
조선시대 어기(御器)를 관할했던 사옹원(司甕院)의 분원(分院)이 지금의 광주군 분원리에 정착했던 시기의 전형적인 립호(立壺)이다. 구부(口部)주위와 굽주위에 각각 커다란 여의두문대(如意頭文帶)를 두고 그 사이의 넓은 공간에 좌향(左向)하는 운용문(雲龍文)을 배치하였는데 구름도 용과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듯 긴 꼬리를 우측으로 날치고 있다. 청화의 발색(發色)은 비교적 옅은 편이나 용의 눈과 비늘의 일부에는 청화안료룰 짙게 발라 악센트를 주고 있다.
유(釉)는 담청색을 띠고 있으나 부분적으로 산화되어 황미(黃味)를 띠는 부분도 있다. 굽 언저리 유를 훑어내고 굽 밑에 모래 섞인 내화토를 받쳐서 번조(燔造)하였다.
▶▶청화백자매죽문호(靑華白磁梅竹文壺) 호암미술관 http://www.hoammuseum.org/
: 국보 219 호
어깨가 팽만하고 양감이 좋은 조선초기의 특징적인 형태에, 화려한 청화문양이 베풀어진 대호(大壺)이다. 색이 맑고 푸른 청화안료를 사용하여, 구연부에는 이중원권과 보상화문을 교대로 배치하고, 어깨와 저부에는 화려하고 장식적인 연판문대를 돌렸다. 주문양대에는 다소 번잡한 듯한 매화와 대나무를 구륵법(鉤勒法)으로 정교하게 그려 넣었는데, 붓놀림이 사실적이고 회화적이어서 한 폭의 수묵화를 보는 듯하다. 매화는 약간 어두운 청화색인 반면 대나무는 밝은 편이어서 의도적으로 청화색을 달리 사용한 점이 주목된다. 푸른기가 도는 회백색의 유를 시유하였으나, 일부 청화 안료와 유약이 탈락되어 적갈색의 태토가 드러나 있으며, 굽은 안굽이고 바닥의 네 곳에 모래비짐을 넓게 받쳐 번조하였다. 중국 원말명초(元末明初)의 청화백자가 조선왕조에 도입되어 새롭게 발전하는 과정을 잘보여주면서, 유례가 극히 드문 초기 청화백자 가운데 크기나 문양, 청화발색 등 모든 면에서 단연 발군인 최고의 명품이다.
이러한 조선백자의 모습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에 걸친 격동기를 거치면서 분원의 민영화와 그 후원자이던 조선 왕실의 몰락, 그리고 일본의 근대자기(왜사기)의 물밀듯한 침투와 상품시장화, 급기야는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식민지국가로 전락되어 가뜩이나 현상태의 유지에 급급하던 조선백자의 제작에 큰 충격을 가져와 끝내는 오랜 전통의 단절이라는 위기의 모습을 보여줬던 것이다. 윤용이, 「아름다운 우리 도자기」, 도서출판 학고재, 1996, p.346
※분원(分院) 야후 http://kr.encycl.yahoo.com/
:조선시대 사옹원(司饔院)의 관영사기제조장(官營沙器製造場).
맺음말
도자기는 볼수록 오묘하고 복잡하며 신비로움을 우리에게 남겨준다. 그 기법과 문양의 다채로움과 색의 신비로움은 일상생활에서 보는 도자기와 다른 장인들의 숨결과 정신을 느낄 수가 있는 것이다.
한국 미술사에 포함되는 도자기 부분의 발표수업을 준비하면서 미술사에 대한 지식이 얕은 우리로서는 명칭이라든지 알기 어려운 부분이 아주 많았다. 책을 찾아보고 인터넷을 다녀보기도 했지만 소장하고 있는 곳이 다른 곳이거나 불명확한 자료가 많아서 자료를 찾고 수정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또한 도자기 문양이라든지 기형등의 부분들의 미술사적인 부분을 떠나서, 굽는 온도나 기법들에 의해 과학적인 기술이나 여러 분야의 지식을 요하는 부분이 많았다.
그리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무엇인가에 의문을 가지고 연구하고 학문한다면 우리나라에 있지 않은 유물들까지도 충분히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 발표수업을 통해서 집이나 도처에 보이는 도자기들에 대해서 더욱 새롭게 보게 되었고 애정을 가지게 될 수 있었던 기회였던 것 같다.
또한 그릇은 시공을 초월하여 영원히 살아 숨쉬는 생명체와 같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참고 문헌 및 참고 사이트 ※
김원용 , 개정판 「한국 고미술의 이해」, 서울대학교출판부, 2001
정양모, 「한국의 도자기(韓國의 陶磁器)」, 문예출판사, 1991
방병선, 「순백으로 빚어낸 조선의 마음, 백자」, 돌베개출판사, 2002
정양모외 13명, 「한국미술사의 현황(韓國美術史의 現況)」, 도서출판 예경, 1992
윤용이 지음, 「아름다운 우리 도자기」학고재, 1996, p270~274
야후 http://kr.encycl.yahoo.com/
네이버 http://100.naver.com/
이화여대 박물관 http://museum.ewha.ac.kr/
호암미술관 http://www.hoammuseum.org/
국립중앙박물관 http://www.museum.go.kr/
문화재청 http://www.ocp.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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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12.18
  • 저작시기20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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