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성결교회의 분열과 일치의 움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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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성결교회의 분열과 일치의 움직임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한편으로 볼때 당시 성결교신학 교 교장이었던 전영식 목사와 기독교연합선교회의 요컴 선교사와의 교리 논쟁이 하나의 불씨로 작용하게 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다른 교단의 분열사 에서도 흔히 나타나듯이, 이 분열에 있어서 직접적인 동기로 작용한 일 중에는 교리 문제와 함께 또한 신학교의 이권 문제를 둘러싼 몇몇 대표자들 사이의 갈등의 요인도 있었다. 그 결과 소위 ‘혁신’측 예수교대한성결교회가 분리되어지는 아픔을 겪었다.
그러나 혁신 측 교단으로 떨어져 나간 교회들과 분열 16년 만인 1988년 12월 13일에 서울 행촌동 총회 본부에서 감격스런 합동예배를 드림으로서 완전한 합동을 이루게 되었다. 이로 인해 예성 교단의 교세가 증가되어진 것은 물론이다. 교세가 큰 여러 교단에서도 이같은 합동을 성취해 낸 예성 교단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 한국교회 일치운동에 하나의 좋은 전례를 남기게 되었던 것이다. 배본철, 252.
1988년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혁신측 과의 합동을 하나의 분수령으로 예수교대한성결교회는 일치운동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하였고, 더 나아가 성결교 문학인들이나 역사가들의 학문교류와 성결교 출신 신학자들의 연구 모임 등을 비롯해서 기성과 예성간의 강단 교류 등이 점증되고 있는 추세이다.
특히 기성과 예성 두 교단 부흥사회는 ‘한민족 희년 기념 성결교회 연합부흥회’ 개최를 위한 모임을 1995년 8월 25일 가졌다. 이날 모임은 이병선 목사(기성측 회장)의 사회와 기성측 장자천 총회장의 기도, 예성 측 이강호 총회장의 “형제가 연합함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라는 제목의 설교로 예배를 드린 후, 공동대회장에 양 교단 부흥사회장. 강사도 역시 양 교단에서 거의 비슷한 숫자로 맡기로 하였다. 이어서 10월 30일부터 11월 3일 까지 오산리 최 자실 기도원에서 연합성회를 가졌다. 이 연합성회는 양 교단의 많은 성도와 교역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결교회의 일치와 화합의 성숙된 장을 일구어내었다.
특히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교회일치운동의 가장 강력한 행보가 기독교대한성결교회와 예수교대한성결교회 두 갈라졌던 형제 교단 사이에서 진행되었다. ‘교류협력위원회’로 발족되어 룡정 성결교회 복원, 납북지도자 추모예배 등 본격적인 일치의 행동으로 박차를 가해오다가 마침내 2001년 ‘한국성결교회연합회’를 태동시킨 것이다. 따라서 이 두 교단의 지속적인 일치운동에 현재 한국교회의 이목이 집중되어, 이운동의 진행이 앞으로 한국교회 일치운동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배본철, 269~270.
또한 교육적인 일치의 움직임도 활발해 지고 있다. 예성과 기성 두 교단은 2004년 현재 통합된 교과과정을 개발하였으며 통합된 공과를 제작하여 현재 여러 성결교회에서 성결과 비전, 그리고 성결클릭, 성결한 아이들 이라는 공과를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통합된 공과를 위해지난 11월 1일, 예성 총회본부에서는 한국성결교회연합회(기성, 예성) 공동으로 2005년도 여름 및 후반기 공과 제작을 위한 집필자 모임을 가졌다. 양 교단에서 선발된 2005년도 공과 집필자와 관계자 40여 명이 한자리에 모여 전체 모임 및 애찬의 시간을 가졌다. 이날 행사는 예성 교육부장인 문한배 목사의 사회로 예배가 시작 되어, 기성 총무인 김운태 목사가 “온전케 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엡4:11-16)이라는 말씀의 제목으로 설교를, 예성 총무인 허광수 목사가 격려사를 하였다. 이어 유윤종 목사(기성 교육국 간사)가 여름공동교재 및 후반기 공과 교육주제를 설명하였으며, 마지막 시간에는 각 파트 별 교재개발 워크샵 및 기성, 예성 양 교단 간의 교육 간담회가 있었다.
또한 기독교대한성결교회 교육국장으로 사역하는 박명철 목사는 2004년 9월 13일(월) 총회본부를 방문하여 김찬규 교육국장과 함께 교육국에 대한 상호협력사항 및 최근 근황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또한 이 날 만남에서 10월에 있을 예성, 기성 양 교단 간 합동공과 집필자 전체 모임을 예성 총회본부에서 열기로 하였다. 성결교단 홈페이지.
Ⅲ. 결론
한국 성결교회는 1936년에 일어난 총회의 분립 그리고 1961년에 일어난 예성과 기성의 분립으로 인해 시련과 아픔이 있었으며 두 교단으로 나뉘어 발전하는 형태를 띠게 되었다. 이러한 분립은 신학적 이슈나 신사참배로 인한 신앙적 대립 구조가 아니었다.
그것은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는 외면적으로는 교회연합기과인 NCC와 NAE라는 외래 사조에 대한 보수대 진보의 이념논쟁이었으나 내면적으로는 NCC, NAE와 관련된 세속적 이해관계와 더 나아가 교권욕 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정상운, 406.
또한 이러한 분립 사건들의 주요원인은 보수진영과 자유진영의 노선과 관련된 이해관계의 상충과 대립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1961년 당시 교단 지도부와 OMS 지도력의 한계 그리고 성결교회에 대한 역사의식이 부족한 한계점을 지적할 수 있다.
교단분쟁에 대한 평가는 어는 한쪽의 일방적 평가보다는 기성과 예성을 넘어선 한국성결교회 입장에서 미래지향적이고, 자기 고백적이며, 반성적인 면에서 서술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상운, 409
앞으로 한국성결교회는 화해와 일치의 움직임이 많아져야 하며 역사의식의 고취와 한쪽으로만 기울어진 역사의 편협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역사의 서술도 통합적이 시각에서 나아가야 한다. 또한 교단의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조심하여야하며 앞으로 1961년과 같은 외래사조 유입에 따른 내부의 혼란이 없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21세기에 한발을 내딛고 있는 한국성결교회는 앞으로의 과제와 문제를 올바르고 하나님의 시각 안에서 해결해야 할 것이다.
참고 문헌
1. 金英才. 「韓國敎會史」서울: 개혁주의신행협회, 1992.
2. 배본철. 「역사신학개론」안양: 성결대학교 출판부, 2001.
3. 정상운. 「성결교회 역사총론」경기: 한국복음문서간행회, 2004.
4. 기독교대한성결교회역사편찬위원회. 「韓國聖潔敎會史」서울: 기독교대한 성결교회 출판부,1992.
5. 중앙성결교회 출판위원회(편). 「中央敎會70年史」서울: 중앙성결교회,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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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12.24
  • 저작시기20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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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28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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