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주자학 때문에 망했는가?
본 자료는 5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해당 자료는 5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5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조선은 주자학 때문에 망했는가?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序論

本論
가. 주자학이란 무엇인가?
-1.주자학이란 무엇인가.
-2. 주자학이 항상 문제적인 사유체제라는 통념의 이유.
a. 화이론의 수용
b. 지나지게 배타적이고 경직된 조선 성리학의 체제
나. 통시적인 관점에서 보는 주자학의 변화과정
-1. 여말의 국가증흥론과 주자학
-2. 선초의 주자학 <국가의 안정을 위한 성리학적 질서의 수용>
-3. 조선의 성리학
-유교정치 기반의 확립
-관학파의 학풍
-사림파의 대두와 성리학 발달
-17C 교조화된 주자성리학
-4. 조선사회의 실학
-사회적 원인
-학문적 배경

다. 조선은 주자학 때문에 망했는가?(-본격적인 text 비판)
-1. text를 비판함에 있어서의 전제
-2. 김경일과 최병철의 논쟁
-3. 주자학 비판에 담긴 유학 비판의 뉘앙스
-4. text에 대한 비판(-비평 조의 비판에 대해)
-대외적인 상황이 결여되었다는 비평 조의 비판
-주자학이 조선에 들어와서 변천한 모습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는 비판

結論

본문내용

개한 견해는 유학을 발전적으로 수용하는 학자의 견해일 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바로 유학에서도 현대적인 관점에서도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우리의 유교적 가치관이 현대에는 이미 사장된 가치관이라고 말이다. 어찌 보면 틀리지 않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다.
‘그렇다면 과연 유교적 가치관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아마 그들이 말하는 유교적 가치관은 중세적이고 우리 한국의 현대적 발전을 저해하는 유교적 가치관의 한 단면일 것이다. 그러나 문제점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다 버려야 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 분명 암암리에 한국인의 피에 수혈되어 이제는 한국인의 피가 되어버린 이 유교라는 가치관에도 쓸모 있는 구석이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 다른 나라에 까지 이 유교라는 피를 헌혈해도 무방할 그 무언가 긍정적인 측면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그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유교적 가치관을 끊임없이 재해석해야 할까.
‘東道西紀’란 말이 있다. 그래 좋다. 그렇다면 동쪽의 도, 한국의 도, 한국의 가치관, 한국의 정체성이란 과연 무엇인가. 도와 정체성은 바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요 관점이며, 기준점인 것이다.
이미 세상은 중세적 기준점에서 벗어나 현대적 기준점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현대적인 기준점의 요건을 유교적 가치관은 갖추었는가. 앞에서 우리가 살펴보았던 것과 가치 유교적 가치관안 에서는 자본주의의 잘못된 방향을 올바로 잡아 줄 수 있는 힘이 있다. 또한 갈수록 각박해져가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도 유교문화는 사랑(仁 )과 孝에 대한 가치관을 제시해 주고 있는 것이다. 중세적 관점인 상하 관념은 버린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긍정적인 측면을 가진 유교적 가치관을 사장해야겠는가.
4. text에 대한 비판(-비평 조의 비판에 대해)
-대외적인 상황이 결여되었다는 비평 조의 비판
주자학을 대변해 주고 있는 저자의 의도는 안다. 저자가 잡고 있는 주제도 ‘주자학’과 조선 망국의 연관성에 대한 문제였다. 우리 조의 비평 조는 ‘주자학’과 조선 망국의 연관성에 대한 문제를 넘어서서, ‘대외적인 측면’과 조선 망국의 연관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저자의 주제와는 다소 벗어나고 있었지만 그래도 비평할 만하고 생각해 볼만한 문제이다. 하지만 이는 저자가 까먹어서 언급을 안했던 것이 아니라, 그 주제가 ‘주자학’과 조선 망국의 연관성에 대한 것이었으므로, 사실 상 text의 논지에서는 약간 벗어난 감이 있다. 저자의 초점은 ‘주자학’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대외적으로 볼 때, 조선은 수많은 외침을 당했다. 당연히 그 대외적인 침략적인 면에서 조선의 망국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조선 중기에 이르러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두 개의 큰 란을 겪었으며, 후기에 이르러서는 서구 열강의 땅따먹기에 놀아난 것이 조선이다. 이러한 대외적인 요소와 결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당시 권력층의 교조적인 모습과 비탄력성 이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주자학 자체의 문제 보다는 당시 권력층의 문제인 것이다. text의 초점이 ‘주자학’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비판할 것이 있다면 그 초점에 대한 비판에 중점을 둬야 한다. 대외적인 상황은 ‘조선의 망국’에 초점이 맞춰질 때 중점적으로 논의 되어야 한다. 물론, 우리 조 역시 비평 조의 지적에는 동감하지만 그 초점은 ‘주자학’ 에 맞춰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자학이 조선에 들어와서 변천한 모습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는 비판
발제문에 다 담기에는 너무 많은 불량과 한정된 시간으로 발표하지 못한 부분을 잘 지적해 주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우리 조의 설명은 ‘주자학의 교조화’라는 한 문장 속에 포함 모두다 들어 있기 때문에 언급하지 않은 것이다.
結論
고려 말의 성리학은 국내외의 극단한 衰亂을 극복할 새로운 교학이며 경세론으로 수용되었다. 성리학의 국가적 흥기를 통하여 고려는 오래 된 자국을 중흥하고자 시도하였다. 그러한 시도는 조선왕조로 접속되었다. 더구나 조선 건국의 주역들이 대개 성리학을 통해서 치세를 이룩해 보려는 개혁파 사류였다. 그들은 실천적이고, 보편적인 사유를 이용하여 사회를 개혁하려 하였다. 부상하고 있던 자영농을 끌어 앉고, 신분제도의 정당화, 객관적 통치규준의 확립 등의 문제를 성리학은 해결하였다. 주자의 화이론에 얽매이지 않았고, 개혁론적인 측면에서 그것은 분명한 자기 본위적 성리학이라 하겠다.
4차례의 사화를 겪고 난 후에, 조선 성리학은 16세기 후기의 사림정치기를 맞아 조선 성리학은 전성을 구가하게 되었다. 주자도 정리하지 못한 이와 기의 문제에 대하여 정리하였으며, 예학의 발달을 이룩하였다. 이런 점에서 조선 성리학은 독자적인 세계를 향유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조선 성리학은 중국의 경우보다 훨씬 외곬으로 朱子學을 신봉하고 있었다. 가령 조선 성리학이 양명학을 배격하여 일체 행세치 못하게 하고, 단일한 국가 교학으로서의 독점적 지위를 주자 계열 성리학에만 허용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매우 큰 특징의 하나였다.
또 그 후에 16세기 말부터 조선 성리학은 왜란호란의 참상과 치욕을 겪음과 동시에 격렬한 당쟁의 시대를 맞게 되었다. 당쟁에서 살아남고 이기기 위해서는, 옛날 주자의 경우를 원용하여, 더 뚜렷한 명분론과 義理論을 이론적 무기로 내세우는 것이 큰 힘이 되었다. 조선 성리학은 이제 더더욱 주자 숭봉의 외길을 걷게 되고, 마침내 집권당은 주자 교조주의의 길로 빠져들게 되었다. 그러므로서 시대적 상황에 대처하지 못하였고, 학문이 시대적 상황에 대처하지 못함은 결국 그 학문의 존재의의를 소멸시켰던 것이다.
주자학은 분명히 신분적 질서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그것이 중세적인 사상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본 바처럼, 우리는 주자 성리학의 문제보다는 교조화 시킨 조선의 사림들에게 더욱 더 큰 망국의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조선 망국의 책임을 주자보다는 그 수용자들의 책임을 묻는 것이 맞지 않을까?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며 이에 레포트를 정리한다.
  • 가격2,000
  • 페이지수17페이지
  • 등록일2004.12.28
  • 저작시기2004.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80372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