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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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영국
-스톤헨지 (Stonehenge)
-웨스트민스터사원(Westminster Abbey)
-베스(Bath)

2. 프랑스
-몽생미셸(Mont saint Michel)
-퐁텐블로(Fontainebleau)
-베르사이유궁전

3. 독일
-상수시 궁전
-뤼벡-한자의 도시
-뷔르츠부르크 주교관

4.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sankt peterburg)
-자고르스크 (세르기예프 파사드 : Sergievo Posed)

5. 이탈리아
-베네치아
-로마 역사 지구 (로마의 구도심 : Historic Centre of Roma : 문화, 1980/1990 )

6. 스페인
-안토니오 가우디
-알함브라 궁전

7. 포르투칼
-벨렘 탑

8. 스위스
-성 갈렌수도원
-베른의 구도심

9. 폴란드
-바르샤바

10. 체코
-프라하

본문내용

본디 이 지방을 지키기 위해 구축했던 성채 자리에 세워져 있어, 지하 1층 통로에는 14세기 후반의 성벽 일부가 그대로 남아 있다. 또한 16세기에 만들어진 아케이드와 분수등이 옛도심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시켜 주고 있다.
Ⅸ. 폴란드
19. 바르샤바
폴란드의 수도로 바르샤바평야의 중심부인 비슬라강(江)의 중류 양안에 있다. 13세기에 건설되고, 14세기부터는 그 지방을 차지한 여러 제후령(諸侯領)의 중심도시가 되어오다가 1596년부터 폴란드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그 후 17세기 후반부터 폴란드 분할에 이르기까지의 100년간 크게 발전하여, 1795년에는 프로이센 할양지(割讓地), 1807∼1815년에는 바르샤바대공국(大公國), 1815년부터는 바르샤바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다시 1830∼1831년, 1863∼1864년에는 폴란드 민족봉기의 중심지가 되고, 19세기 후반에는 공업의 발달에 따라 노동운동도 격심해졌다. 1918년 폴란드가 공화국으로 독립하자 다시 수도가 되어 급속한 발전을 보이다가, 1939년 9월에 독일군의 포위를 받아 시가지가 파괴되었다. 1943년 4∼5월의 게토우 봉기에 이어 1944년 8월 1일∼9월 2일에는 유명한 바르샤바 봉기로 해서 격렬한 시가전이 벌어졌고, 시내 건물의 80% 이상이 파괴되었다.
1945년 1월 17일, 나치스 독일로부터 해방되자, 다음해부터 시가지의 재건이 시작되어, 도시의 근대화와 역사적인 건축물의 복원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이때 폐허가 된 시가지를 예전과 같이 복구 시킬 수 있었던 것은 그림 한 장 때문이었다. 너무나 정교하게 사실적으로 그려졌던 이 그림은 폴란드의 재건을 성공시킨 것이다. 폴란드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이며, 철도·도로교통의 요지이기도 하다. 전차·버스 노선망이 발달하였으며, 아울러 하항(河港)·공항도 있다. 프라가·제라니 두 지구에는 기계·금속·자동차·화학·섬유·광학기기·정밀기계·인쇄·식품·트랙터·자동차·양질강(良質鋼) 등의 공장이 들어서 있다. 교육·문화시설로는 폴란드아카데미, 바르샤바대학(1817 창립), 민족·역사·고고학의 3개 박물관, 도서관 및 바르샤바대극장 외에 높이 230m의 문화과학궁전 등이 있다. 한편, 비슬라강(江) 우안에 자리한 고도시(古都市)에는 제2차 세계대전 후에 복원된 중세의 성터와 유적들이 많이 있다.
또한 폴란드의 건축물들은 어느 건물하나 같은 건물이 없다. 각각의 집들이 독특한 양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번지가 필요 없을 정도다. 그러나 튀지 않고 환상적인 앙상블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 매우 특이점이라고 꼽을 수 있다.
Ⅹ. 체코
20. 프라하
프라하는 황금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역사적으로 섬이었기에 변방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그러나 카를 4세의 건설계획으로 발전하게 된다.
프라하 성은 체코를 대표하는 국가적 상징물이자,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거대한 성이다. 9세기 말부터 건설되기 시작해 카를 4세 때인 14세기에 지금과 비슷한 모습을 갖추었고, 이후에도 계속 여러 양식이 가미되면서 복잡하고 정교한 모습으로 변화하다가 18세기 말에야 현재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
프라하 구시가지의 블타바강(江) 맞은편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길이는 570m, 너비는 128m이며, 9세기 이후 통치자들의 궁전으로 사용된 로브코위츠 궁전 외에 성(聖)비투스대성당·성조지바실리카·성십자가교회 등 3개의 교회와 성조지수도원 등 다양한 부속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 건설될 당시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으나, 13세 중엽에 초기 고딕 양식이 첨가되고, 이어 14세기에는 프라하 출신인 카를 4세에 의해 왕궁과 성십자가교회 등이 고딕 양식으로 새롭게 건축되면서 이 때부터 체코를 대표하는 상징물이 되었다. 그 뒤 블라디슬라프 2세 때 후기 고딕 양식이 가미되고, 1526년 합스부르크왕가가 이 지역을 지배하면서 다시 르네상스 양식이 도입되었다. 그러다 바로크시대인 1753년부터 1775년 사이에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었는데, 시작에서 완성될 때까지 900년이나 걸렸다.
1918년부터는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면서 내부 장식과 정원이 새롭게 정비되었다. 왕궁뿐 아니라 성 안에 있는 모든 건축물들이 정교한 조각과 높이 솟은 첨탑, 화려하고 다채로운 장식으로 꾸며져 있어 유럽에서도 중요한 역사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카를교는강 서쪽의 왕성(王城)과 동쪽의 상인거주지를 잇는 최초의 다리로, 보헤미아왕 카를 4세 때(1346∼1378)에 건설되었기 때문에 이 이름이 생겼다. 후에 양쪽 난간부에 상인들의 석상을 세웠고, 다리 양쪽에는 탑이 있는데 그 사이의 다리 길이는 약 500m이다. 다리 서쪽은 칸파라고 하는 작은 운하가 있는 지구로 소(小)베네치아라고도 한다. 프라하의 관광 명소로 잘 알려져 있다.
스트라홉 수도원은 프라하 구시가지의 블타바강(江) 맞은편 언덕에 있는 프라하성(城)에서 서쪽으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스트라호프 광장(廣場)의 남쪽에 위치한다. 플라디슬라프 2세 때인 1140년에 건립되었으나, 그 뒤 전쟁과 화재 등으로 인해 소실되거나 파괴되어 본래의 모습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지금의 건물은 17~18세기에 다시 지어진 것이다. 따라서 중세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건축 양식이 혼합된 복합 건축 양식을 띠고 있다.
1783년 수도원 해체령이 내렸을 때는 학자들의 연구기관으로 지정되어 해를 면하였고, 이후 수도승들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1951년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폐쇄되었다가, 1953년 체코 국립문학박물관으로 바뀌었고, 1989년 사회주의 정권이 물러나면서 다시 수도원 기능을 회복하였다. 현재는 문학박물관이자 수도원으로서 두 가지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수도원 내에는 1258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초기 고딕 양식으로 재건된 뒤, 17세기에 다시 바로크 양식이 가미된 성모마리아승천교회(성모교회)와 바로크 양식의 강당이 있다. 문학박물관에는 총 14만 권에 달하는 장서가 있는데, 종류에 따라 '철학의 방', '신학의 방' 등 2개의 고전 도서관과 고전주의 이후의 도서를 모아 놓은 근대 도서관으로 구분해 놓았다. 도서관은 일반에게도 개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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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12.28
  • 저작시기20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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