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종교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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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일본의 종교
1. 무종교성
2. 종교에 얽매이지 않는 일본인
3. 이중적인 종교 생활
● 역사 속의 종교
1. 불교와 신사 신도(神社 神道의) 밀접한 관계
2. 일본의 지리적 특성
3. 기독교의 도입
4. 현세 이익 신앙의 유행
5. 1868년 메이지 유신과 국가 신도(神道)의 국교ㆍ통일화
6. 태평양 전쟁 패배 후의 변화
● 생활 속의 종교
1. 생활 속에서의 신도(神道)
2. 생활 속에서의 불교
3. 생활 속에서의 카톨릭(기독교)
● 종교와 일본인의 국민성
1. 화(和)의 사상
2. 다양성
3. 집단주의 - “혼네와 다테마에”
4. 실용주의 - “좋은 것만 취한다”
5. 폐쇄성 - 일본은 섬나라
● 신도(神道)- 일본인의 종교적 뿌리
1. 신과 함께 사는 민족
2. 혼합을 통한 발전
3. 일본적 주체성 지키기

본문내용

오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원령공주’이다. 이 두 편의 애니메이션을 보면 듣도 보도 못한 많은 신이 나옴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주로 자연에 붙어있는 신들이며, 일본 곳곳에 퍼져있는 존재들이다. 또한 수업 시간에 일본인들은 집의 넓이를 따지는 것보다 조그만 땅이라도 소유하여 그 곳에 사는 것을 선호하고 땅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고 배웠는데 이것 또한 일본의 땅 또한 인간과 한 곳에서 나왔다는 신도 설화에서 유래한 현상이라 생각된다.
2. 혼합을 통한 발전
#유불교의 영향
일본은 역사적으로 유교와 불교의 유입을 환영하였다. 두 종교는 일본의 종교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유교의 조상숭배 형식이나 불교와 함께 들어온 기술적인 변혁 등이, 이 종교들을 일본에 유입되기 쉽도록 만들었다. 정서적인 면이나 실리적인 면에서 요구점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또한 체계적인 중국의 사상을 받아들임으로써 신도의 형식을 발전시키고, 황실과 신도의 기원을 공고히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들 종교는 환영을 받을 수 있었다. 결국 일본은 ‘일본의 종교’를 발전시키기 위한 형태로 타종교들을 흡수한 셈이 된 것이다.
#무사도
대표적인 혼합 작품으로 무사도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무사도에 있어서 신도는 대군주와 나라에 헌신하는 정신을, 유교는 윤리적인 실체를, 선불교는 개인이 수행할 자기규율의 방법을 제공한다. 이 중 어디까지나 유교의 영향이 가장 크지만 그 속에 녹아있는 혼합성을 무시하지는 못할 것이다.
3. 일본적 주체성 지키기
#일본화 된 외부의 신들
많은 외국의 신들이 일본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일본화 될 필요가 있었다. 이를테면 불교 경내에 신궁사라는 사원을 세워 가미에게 봉헌하는 것처럼, 일본인의 긍정과 동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 많은 종교들이 일본인의 구미에 맞도록 변화를 꾀했는데 이는 ‘일본성’을 지키려는 일본인들의 의식적고도 무의식적인 노력이 깃들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신도(神道) 되찾기의 움직임들
일본은 종교 유입에 굉장히 너그러운 편이었지만, 타 종교가 지나치게 유입되어서 일본적인 색채가 사라지고 있다고 여겨지면 어김없이 신도를 되찾기 위한 움직임들이 일어나곤 했다.
14~15세기에는 불교와 관련하여 이러한 움직임들이 있었다. 당시 불교의 오염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불교의 신이 일본 땅에 현현한 것이라고 하던 주장을 뒤집어 일본의 가미가 본체이고, 불교의 신은 권현이라고 하는 주장과 책을 내는 일들이 발생했다. 18세기에는 고신도 정신의 우월성을 주장하며 천황이 신의 직계후손이므로 어느 나라보다 우위에 자리잡고 있으며, 고로 모든 사람이 일본의 군주에게 충성을 바쳐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기독교와 관련하여서는, 2차 세계대전 중에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하여, 종교적 민족주의를 고양. 부처, 공자, 노자, 예수도 신도의 선교자라는 주장이 나왔던 적이 있었다. 당시 일본의 어느 대학 교수는 십자가에서 죽은 것은 예수의 남동생이며 진짜 예수는 아시아로 건너와 북부 일본에서 죽었다는 내용의 책을 여러 권 썼다고 한다. 이쯤하면 일본인들이 신도를 중심으로 한 일본의 정신 지키기에 얼마나 신경을 쏟아 왔는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혼란 속에서도 신도(神道) 지키기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나라들에서는 국가의 혼란시기에 정치적인 세력다툼이나 정세에 최고의 전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일본의 과거를 보면 조금 다르다. 그들은 우선 신도를 보호하기에 힘을 기울였는데, 근대화 과정에서 신도가 힘을 잃을 것을 짐작하고, 1889년 헌법에 육해군 통수권을 천황 밑에 두는 항목을 정하였다. 또한 황제를 해의 여신의 직계 후손으로 규정한 신화를 우회적으로 포함시켜, 국가 공식 의례를 두어 신도가 국민 생활에 지속적인 힘을 작용하길 기대하고 시행했다고 한다. 가히 신도 지키기가 일본인들에게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사안인지를 짐작하고도 남을 사실들이다.
물론 태평양 전쟁 후 민주주의 국가로 탄생하면서 신도의 강제성은 사라졌다. 1946년 천황은 현인신임을 부정하였고, 가미는 조상으로 탈바꿈시키며, 신도의 도덕성을 부각시키는 정책이 이어졌다.
마치면서.....
일본의 종교성과 의식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딱 잘라서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일본인의 사상적인 면, 역사적 사실 등 일본 종교에 있어 영향을 미친 요소들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며, 그 크기 또한 매우 클 수 있다. 하지만, 종교성에서 신도(神道)가 미친 영향의 독보적인 위치는 쉽게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어느 요소보다도 신도에 대한 애착과 친밀함이 현재의 일본 종교를 낳은 결정적 요인이 아닐까 생각된다.
비록 우리 조가 처음에는 신도의 영향력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 현대 일본 종교적 현상들을 만들어낸 원인을 역사, 사상 등의 여러 가지 면으로 조사하여 발표를 준비하였지만, 조사 과정에서 신도의 영향이 가장 막대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일본만이 가지고 있는 신도가 일본 종교에서만 아니라 일본 문화 그 자체의 형성에도 많은 영향력을 끼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도 지키기를 비롯한 여러 가지 역사적 사실에서 보이는 일본인의 긍지와 주체성 지키기는 과연 혀를 내두를만하다. 이런 일본성 지키기의 결과가 세계 속에 일본의 색깔과 문화를 퍼뜨리고 서구의 물결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도록 만든 것은 아닐까. 곳곳으로 퍼져나가는 일본의 수많은 애니메이션들처럼 말이다. ‘일본의 색깔을 잃으면 안 된다’는 맹세와도 같은 노력들에, 과연 전통을 지킨다는 건 어떤 것인지 다시 한번 돌이켜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점점 전통을 잃어가고 있는, 그러면서도 전통에 대한 정서적 끈은 놓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현재를 한 번 일본에 비추어 바라보아야 할 시점인 듯하다. 전통과 주체성 지키기의 과제를 멀지 않은 이웃나라에서 발견할 수도 있지 않을까.
참고문헌
역사 속에서 나타난 일본 종교, J. B. 노스 저, 윤이흠 역, 세계종교사, 현음사, 1998,
일본의 종교, 村上重良 저, 崔吉城 편역, 원 서 명 日本の宗敎, 예전사, 1989
먼 나라 이웃나라, 이원복 저, 김영사,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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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01.18
  • 저작시기20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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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282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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