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희곡 페이퍼] Artist Descending a Staircase 에 나타난 전위 사조의 평가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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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다. 극중에 언급되는 다다이즘을 위시해 모든 전위는 과거의 예술과 문화의 철저한 파괴와 부정을 주창하는 운동이었다. J. P. Sartre의 말처럼 아방가르드는 그가 창조해낸 것보다는 그가 거부한 것에 의해 더 잘 정의 내릴 수 있다. 여기에 대한 비꼼은 극중 변심한 Donner의 대사에 나타난다.
Page 21
Donner : An artistic imagination coupled with skill is talent.
.......
Donner : Skill without imagination is craftsmanship and gives us many useful objects such as wickerwork picnic baskets. Imagination without skill gives us modern art.
Beauchamp : A perfectly reasonable summary.
전위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예술가적 숙련의 부재에서 조금 더 나아가게 된다. "아방가르드를 포함한 현대 미술에서 대중은 언제나 불청객이었고 아방가르드라는 이름은 미술가들이 대중을 골탕먹이고 주눅들게 한 죄악"이라는 미국 뉴저널리즘의 기수로 이름 높은 T. woolf의 치밀한 논죄에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보낸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K. Greenberg의 말을 빌리자면 "아방가르드가 자기자신을 점점 전문화했다는 사실, 즉 아방가르드의 가장 훌륭한 예술가야말로 예술가중의 예술가이고, 시인 중의 시인이라는 인식"이 팽배해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Greenberg는 예전에는 문학과 예술을 즐기고 감상할 능력이 있던 대다수의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전문인들끼리의 놀이로 되어 이제 대중은 그들의 작품 속 비밀을 알려고 하지도 않고 또 알 수도 없게 되어 버렸다고 진단을 내렸다. 아방가르드는 대중과 결별해버렸던 것이다. Stoppard가 이러한 내용의 언급을 놓칠 리가 없다.
Page 24
Donner : We were no longer accountable. We were artists by mutual agreement.
......
Donner : It seems there is something divine about modern art nonetheless, for it is only sustained by faith. That is why artists have become as complacent as priests. They do not have to demonstrate their truths. Like priests they demand our faith that something is more than it appears to be- bread, wine, a tin of soup, a twisted girder, a mauve square, a meaningless collection of sounds on a loop of tape... (this is said so bitterly that-)
본인이 보기에는 Stoppard는 전위의 손을 들어주지도 않고, 그렇다고 전통적 미술관에 대한 회귀의 방법을 찬성하지도 않는다. 전위에 대한 부정은 Sophie의 초상화를 통한 예술적 가치의 재고를 통해 이루어진다. Martello의 Sophie에 대한 기억이 Donner보다 더 추악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Donner는 이를 표현한 팝 아트를 확실히 거부한다. 전통에 대한 부정은 Donner와 Sophie의 죽음을 통해 이루어진다. 예전에도 죽었으며, 다시 돌아가려다가는 죽는 것이다. 끊임없이 예술의 본질이 무엇인가로 귀결되는 토론의 전개는 다만 전통과 전위 사이의 대립을 통해 명확하게 보여진다. 예술 작품 앞에서 문화적인 각성을 얻어낸다면 그것은 어떤 형태로 이루어지며 어떤 당위성을 지니게 될 것인가. 우리는 이제 결론에 도달한다.
이것은 본인이 이 Paper를 읽는 모든 분들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고, 또한 Stoppard가 이 라디오극을 듣고있는 청취자들에게 의도적으로 각인 시키는 질문이다. 보이는 것을 어떻게 인지할 수 있는가를 스스로 의심해 본 적이 있는가.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믿어도 좋은가. 그러나. 수없이 난립하는 예술적 사상에 경도된 체 깽깽이 잡음이 눈으로 볼 수 없는 심오한 예술적 갈증을 성취하려는 거룩한 시도라 설득 당하기 전에. 옛 여인에 대한 찬양을 담은 밀짚 뭉치가 실로 시간의 안배를 뛰어넘은 예술가의 주관적 인상 완성이라 마침표를 찍기 전에. 이 혐오스러울 수밖에 없는 자극에 '거룩한'이라는 고상한 단어를 누가 붙이도록 강요했는가.
보이는 만큼 볼 수 있다는데 대해 부끄러워하지 마라. 이것이 본인이 파악한 이 작품에서 얻어낸 최종적인 귀착지이다. 거부감도 친밀감도 모두 감상자 자신의 충실한 감정이며 예술 작품과 감상자 사이의 교감의 문제는 전위가 지나친 자기만족에만 빠져들었던 최근에 결과에서 보자면 위화감이 없는 게 이상한 일이다. 대중이 예술가라는 전문적 문화 창작 집단에 대한 환상을 벗어버리고 과감하게 자신들의 감성에 충실할 수 있는 자세, 예술가에 대해 열등 의식을 지니지 않을 수 있는 자세가 이제부터의 예술과 미술을 결정지을 미래라 믿고 싶다. 물론 이러한 태도가 개인적 취향이나 키취즘에의 영합과는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토를 달 수 밖에 없지만. Stoppard가 굳이 대중 쟝르인 헐리웃 영화의 각본 작업을 무게를 두고 해나가는데 대한 나름대로의 해답이 문화 창작 집단으로부터 마저도 소외당하는 대중의 수용에 있다고 봐도 좋지 않을까. 미흡하지만 미술사 책에서 인용되었던 한 구절을 옮기는 것으로 본 Paper는 끝을 내고자 한다.
작가가 하는 일은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현실과 역사에 기반하여 아직 개방되지 않은 영역, 신천지를 개척하는 일이다. 관객은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그 스스로가 다시 창작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러나 관객이 발견하는 것은 작가가 보여주고자 혹은 말하고자한 것은 아니다. 관객들은 그들이 아는 만큼, 그들의 경험의 깊이에 따라서 그들이 발견하는 의미만큼의 각자 다른 수확을 걷을 수 있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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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4페이지
  • 등록일2005.01.27
  • 저작시기20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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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283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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