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에 그려진 여성상에 대한 연구 -『금오신화』에 나타난 여성상 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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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소설 속에 그려진 여성상에 대한 연구 -『금오신화』에 나타난 여성상 규명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 론
1) 연구사 개관
2) 연구의 필요성

Ⅱ. 『금오신화』에 나타난 여성상
1) 자기 확신에 찬 의지적 여성
2) 의사소통에 적극적인 표현적 여성

Ⅲ.「금오신화」에 나타난 여성상의 의미

Ⅳ.결론

본문내용

보았는데,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기 확신에 찬 의지적 여성'이다. 『금오신화』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한결같이 三從의 첫 번째 항목인 '아버지를 따르기'보다는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성에 따라 자신의 배우자를 스스로의 의지로 선택하고, 三從의 두 번째 항목인 '남편을 따르는'것으로부터도 자유로워 대개의 고전소설 속 여성인물들이 순종만을 미덕으로 여겨 남편에게 철처히 예속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과는 달리 남성을 주도적으로 이끌 뿐만 아니라 관계를 정리하는 마지막 발언까지도 여성에 의해 이루어짐을 보여준다.
둘째, '의사소통에 적극적인 표현적 여성'이다. 조선 시대 남성 중심의 지배적 가치에 절대적으로 맹종하면서 당연히 말하여야 할 상황에 처하여서도 이른바 女德이라하여 최소한의 善女稿藥의 감정마저도 표현하지 못하고 '말'의 자유를 억압당했던 조선의 전형적 여성 인물들과는 달리, 『금오신화』에 등장하는 여성 인물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 의견을 말함에 있어 망설임이 없다. 자신의 善女稿藥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다양한 개성의 소유자들인 여성들과의 의사소통 과정에서 상대 남성 인물은 자식의 어머니로서의 牲愛의 즐거움을 나누는'대화상대로서의 여성'과의 관계 형성을 통해 만족감을 얻듣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셋째, ' 母性으로 전형화 되지 않은 개성적 여성'이다. 『금오신화』속의 여성들은 살아있는 여자로서의 '몸'을 갖지 못했던 인물들이다. 그녀들이 남성 인물들과의관계 맺음에 있어서 그렇게 동등하고 주체적일 수 있엇던 것은, 그녀들이 더 이상 '아이를 낳는 몸'으로서의 여자가 아닌 데에 있다. 즉, 그녀들은 당대 여성들이 七去之惡이라는 폭력 앞에 숙명처럼 받아들였던 전통적 성별 역할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웠는데, 이는 그녀들이 '몸'으로부터 자유로웠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장례 후 양생 앞에 마지막으로 나타난 여인이 양생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며 '다른 나라에서 남자의 몸으로'태어나게 되었음을 알리는 대목은, 어쩌면 '이 나라에서 여자의 몸으로' 사는 것의 고달픔을 시사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와 같이 『금오신화』에 나타난 여성상을 세 항목으로 나누어 제시해 보았는데, 이러한 여성상은 오늘날에 비추어 보았을 때초자도 상당히 놀라울 정도로 능동적이며 주체적이다. 당시에 이렇게 '자기 확신에 찬 의지적 여성, 의사소통에 적극적인 표현적 여성, 母性으로 전형화 되지 않은 개성적 여성'의 모습이 작품에서 구현될 수 있었던 것은, 조선 사회에서 개별적인 것으로 지나쳐버릴 것이 아니며, 재산이나 제사 상속 등 전반적인 가족관계에 있어 아들과 딸, 사위와 며느리가 비교적 대등했던 17세기 이전의 사회 분위기를 어느 정도는 반영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는 오랜 세월동안 우리사회에서 여성은 남성의 地者로만 존재하여 남성과의 관계에서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여성이 전통적이요 이상적인 것으로 여겨져 왔던 그간의 여성관을 다른 시각으로 재정립해 볼 수 있는 하나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페미니즘 문학 비평에서는 여성으로서의 독해를 강조하며, 이른바' 여성의 눈'으로 작품의 곳곳에 내재한 남성 중심 이데올로기를 지적해내고 비판해내는 작업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개개의 작품을 분석하면서 문학이 어떻게 여성에 대한 남성의 정치적
지배를 정당화하고 가부장제를 굳히는 수단으로 이용되어 왔는가를 분석·비판하는 것도 물론 의미 있는 작업이겠으나, 한편으로는 본고의 시도처럼 남성 중심의 시각이나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왜곡되지 않는 본래의 긍정적 여성상을 찾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시습의 문학세계는 아직까지도 완전하게 규명되었다고 볼수 없다. 시대를 앞서 살다가 뛰어난 한 천재의 삶과 작품을 한두 마디의 말이나 한두 편의 논문으로 요약한다는 것은 애초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시각으로 다양한 문제를 추구할수록 더욱 깊어지는 것이 김시습의 문학세계가 아닌가 한다. 앞으로도 김시습에 관하 연구가 계속되어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실 조선 시대의 가부장적 性문화는 남성 우월주의로 일관된 사회 원리로 인해 남성의 性的 우월성과 남성 본위의 性관습을 정착시킴으로써, 여성에게는 性을 금기시하고 여성의 정절을 목숨보다 소중한 것으로 여기도록 교육해왔다. 임진왜란 때 행해진 표창 숫자를 보면 효자가 67명, 충신 11명, 열녀 356명으로 열녀의 수가 효자, 충신을 합한 수보다 약 다 섯배나 되었는데, 이는 '열녀'가 양반에게는 몰락한 가문을 다시 일으키게 하는 수단이 되었고, 양인에게는 과중한 부역의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는 도구였으며, 천민에게는 신분 상승의 유일한 통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엄청난 숫자의 열녀가 '만들어진' 것은 결국 딸이나 며느리로 하여금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마저 억제하면서 수절의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이도록 내면화시킨 비정한 부모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렇듯 비인간적인 父 으로 딸들을 속박했던 부모와는 달리 최랑의 부모는 혼인에 소극적인 이생 집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말로 안심을 시킨다.
"모든 예물을 드리는 절차와 의장은 저희 집에서 다 처리할 것이니 좋은 날 만 가려 가약을 맺게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최랑의 부모는 이생의 집안에 대해 적극적인 의사 타진을 함으로써 딸에게 가장 든든한 지지자의 역할을 다해주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妻家주도의 혼인이 가능했던 것은,『성종실록』에도 기록되어 있는 바대로 우리나라의 풍속은 (남자가)처가에서 자라나니, 처부모를 볼 때 오히려 자기 부모처럼 하고, 처의 부모도 또한 그 사위를 아들처럼 대한다는 조선 전기까지의 관습이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이생규장전」의 최랑이나 「만복사저포기」의 여인이 상대 남성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여성상으로 나타나는 것에 대해서는, 단순히 조선 시대 소설로서는 예외적인 것으로만 취급해버릴 것이 아니라, 재산이나 제사 상속 등 전반적인 가족관계에 있어 아들과 딸, 사위와 며느리가 비교적 대등했던 17세기 이전의 사회 분위기에서 충분히 가능할 수 있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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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02.24
  • 저작시기20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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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286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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