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정치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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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국의 정치 경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일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중국의 헌법은 공공 소유가 여전히 경제의 근간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영기업들은 운송, 통신, 석유 및 가스 그리고 전력공급 등의 핵심를 맡고 있었다. 장쩌민은 이러한 국영기업을 개혁하여야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 모든 분야에서 장쩌민은 21세기 중국 경제에서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의 새로운 역할을구상한다. 그의 12대 관계는 내용과 실질 모두에서 마오의 개념을 빌린 것으로, 국가의 역할을 좁게 규정한 덩샤오핑의 정책을 수정하여, 약간의 간섭을 통하여 더 효율적인 국가를 만들고자 한 것이다.
Ⅳ.후진타오 시대 개막
1.후진타오 약력
이름 : 후진타오 (胡錦濤)
출생 : 1942년
학력 : 칭화대학교 수리공정과
약력 : 1965년 공산당 가입
1984년 공산주의청년단 중앙위원회 제1서기
1992년 중앙당 정치국 상무위원 겸 중앙위원회 서기
1998년 제9기 국가부주석
2003년 중국국가주석
2004년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작년 10월 국가주석을 승계하여 새로운 리더로 떠오른 후진타오는 이미 제2세대인 덩샤오핑이 선택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후진타오에겐 '황태자'라는 별명이 늘 붙어다녔지만, 정작 후진타오는 언론의 조명을 받지 않으려고 극도로 조심해왔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가 지나치리만치 몸을 사리고 바로 윗세대인 장쩌민의 뜻에 따라 움직인 까닭에, 후계자의 자리를 온전하게 지켜왔고 마침내 거대 중국을 이끌어갈 확실한 지위를 얻은 셈이 되었다.
후진타오는 1942년 12월생으로 안후이(安徽)성 지시(績溪)현 사람이다. 명대(明代) 중기에 병부상서(兵部尙書)를 지낸 후중시엔(胡宗憲)이 그의 조상이라고 후진타오의 고향 사람들은 말하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혁명가도 항일(抗日)투사도 아닌 평범한 사람으로, 찻잎을 파는 가게 주인이었다. 어머니는 후진타오가 열 살도 채 되지 않았을 때 세상을 떠났으며, 홀아버지 밑에서 자라났다.
21세기 중국의 새 지도자로 부상한 후진타오는 명문 칭화대 출신 그룹을 일컫는 칭화방(淸華幇) 네트워크의 수혜자다. 1992년 중국 공산당 제14기 전국대표대회(14대)에서 50세의 나이에 7명으로 구성된 최고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에 발탁될 때까지만 해도 그는 철저히 베일 속에 가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지난 82년 정치적 선배인 쑹핑(宋平)의 천거로 40세에 최연소 중앙위원이 됐고 후야오방(胡耀邦) 총서기에 의해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중앙서기처 제1서기,구이저우(貴州) 서기,티베트자치구 서기 등 3개 서기직을 수행하면서 주목을 끌었다.
그가 최고지도부의 관심을 끌게 된 계기는 티베트 독립운동 진압과정이다. 89년 3월5일 1만명의 승려들과 티베트인들이 수도 라사 거리를 점거,사태가 최악으로 치닫자 그는 철모를 쓰고 진압을 진두지휘하면서 지도자의 위용을 과시했다.
이때의 강인한 인상이 그를 권력 상층부로 이끌게 된 것이다. 92년 14대 직전의 일이다. 정치국 상무위원 최종 심사에서 ‘후진타오 파일’을 받아본 당시 최고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은 “내 보기에도 이 사람은 괜찮은 것 같더군”이라며 상무위원 진출을 승인했다. 지방의 당 서기에서 무려 3단계나 건너 뛴 파격이었다.
그는 철저한 외유내강형의 지도자다. 98년 3월 제9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국가 부주석직에 오른 데 이어 당중앙 군사위원회 부주석직까지 거머쥐었지만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 겸 당총서기의 심기를 건드리는 일을 저지르지 않으며 내일을 기다리는 지도자임을 보여줬다.
2.후진타오 체제 공식 출범
중국의 후진타오 국가부주석이 15일 공산당내 최고 권력 자리인 총서기에 공식 선출됐다. 이로써 장쩌민 국가주석 등 3세대 지도자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1949년 건국 이후에 활동을 시작한 4세대 체제가 새롭게 출범했다.
공산당은 이날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제16기 중앙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16기 1중전회)를 열어 후진타오를 총서기로 선출한 데 이어 그를 포함해 우방궈 부총리, 원자바오 부총리, 자칭린 베이징시 전 서기, 쩡칭훙 정치국 전 후보위원, 황쥐 상하이시 전 서기, 우관정 산둥성 서기, 리창춘 광둥성 서기, 뤄간 중앙정법위원회 서기 등 순으로 9명의 정치국 상무위원을 뽑았다. 관측통들은 당내 권력의 핵심인 정치국 상무위원 9명 가운데 5명이 장 주석의 측근인 데다 장 주석이 중앙군사위 주석에 유임돼 그의 영향력이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후 총서기는 내외신기자 400여명을 상대로 한 연설에서 “이번 당 대회에서 당장(헌)에 포함시킨 ‘3개대표’ 사상은 역사적인 결정이자 우리가 나가야 할 방향”이라며 “당과 전 인민들은 일치단결해 개혁·개방과 현대화 건설을 지속적으로 추진해가자”고 강조했다. 그는 내년 3월 의회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국가주석으로 선출될 것이 확실하며 다른 상무위원들도 요직을 맡게 될 예정이다.
3.후진타오 체제 구성과 운용, 전망
이번에 2명이 늘어나 9명이 된 새 정치국 상무위원의 평균연령은 62살로 3세대와 10년 차이가 난다. 4세대의 활동은 전인대가 열리는 내년 3월부터 본격화한다. 후진타오 총서기는 국가 주석, 원자바오는 총리, 우방궈는 전인대 상무위원장에 각각 오를 것으로 보인다. 정협 주석에는 자칭린과 쩡칭훙이 거론된다. 뤄간은 중앙기율검사위를 맡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은 앞으로 5~10년간 중국을 이끈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장쩌민 주석의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장 주석과 후 총서기가 모두 ‘개방의 설계사’ 덩샤오핑이 지명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장 주석은 제4세대의 ‘연착륙’을 지원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는 이전 덩샤오핑의 방법을 답습한 것이다. 특히 장 주석은 상임위원 가운데 측근인 쩡칭훙·우방궈·황쥐·자칭린·리창춘 등 5명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관측통들은 장 주석이 ‘3개 대표’론의 토대를 다진 뒤 완전 퇴진할 것으로 내다본다. 후 총서기는 젊고 유능한 전문관료들로 진용을 구축해 기반을 다져갈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에서 경제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반테러 문제 등에서는 미국과 협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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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25페이지
  • 등록일2005.03.29
  • 저작시기2005.0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9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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