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와 무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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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존재와 무공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들어가며

2. 본문
(1) 죽음에 관한 여러 생각들
① J. P. Satre(장폴 사르트르)
② M. Heidegger(하이데거)
③ 루크레티우스
(2) 영화 <나라야마 부시코>를 통해 본 죽음의 세계
(3) 자아(自我)와 무공

3. 맺으며

※참고 자료

본문내용

7%의 두배에 불과하며, 오랑우탄과 침팬지의 차이인 3.6%보다 훨씬 가깝다.
그러나 이 1.6%의 차이는 7백만년이라는 기나긴 시간과 그 사이에 일어난 무수한 생명체의 죽음, 생각의 발전등이 얻어낸 결과이기에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더 중요한 문제가 아닐까? 단순히 생물학적인 죽음과 삶, 진화보다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형이상학적 세계관, 철학적 세계관 등에 더 포커스를 맞추어야 할 것이기 때문에...... 즉, 인간은 생물학적, 환경적 억압이 분명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그 어떤 정신적 가치를 창조하고 추구해 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 죽음(Death)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라야마 부시코에서 오린이 생각했던, 아니 생각해야만 했던 방법대로 주어진 것에 대한 약속사항일까? 아니면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에게 다가와 버린 것일까?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한 답은 말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실 모든 죽음은 자기 자신이 스스로 경험하지 않으면 그것이 어떤 것이라고 정확하게 개념정의하기 어려운 것이다. 너무 경험주의적인 사고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본적도 없는 것들에 관해 정확하게 정의내리거나 한정지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사실 우리는 죽음의 순간을 알 수없기 때문에 구원이나 천국이라는 또 다른 세계를 꿈꾸며 윤회론에 의지해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이 세계가 아닌 또 다른 세계에서 다시 살아갈 것이라는 식의 방법으로 말이다.
나는, 혹은 우리는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존재하지 않게 될 것도 또한 안다고 할 수 있는가? 사실대로 말하자면 이것은 전적으로 내가 무엇인지에 달려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알고 있다고 상상해 보는 죽음, 즉 무공의 세계가 다가오고 있다고 하는 끔찍한 사실은 다만 우리들 머리 속에서 빚어진 것일 뿐이며 우리의 분석적 지성, 즉 존재 전체를 산산히 조각내어 버리고 이것들을 각기 독립된 존재들로 만들어서는 즉시 우리의자아를 이것 혹은 저것과 동일한 것으로 생각하고, 그리고 나서는 저것을 포함하여 모든 날개들은 쇠퇴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 공포 속으로 물러서는 지성의 결실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 각자가 망각되도록 운명지어져 있다고 보는 것은 바로 자아(自我)그 자신인 것이다.
Richard Taylor, 『형이상학』, 종로서적, 1987
다른 수억의 인간이 똑같은 운명을 기다리고 있든, 그보다 더 많은 인간이 그 길을 지나갔든 우리는 상관하지 않으며 관심이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이 지닌 자아의 숙명이라는 것이다. 그럼 여기서는 죽음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자아(自我)에 관하여 좀 더 알아봄으로써 존재에 대한 문제, 그리고 자아중심적인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 것이고 부분적인 사고인지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을 해보도록 하자.
(3) 자아(自我)와 무공
-자아라는 말을 백과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정의 된다.
①. 자기. 자기 자신.
②. 철학에서, 천지 만물에 대한 인식이나 행동의 주체로서의 자기를 이르는 말.
나1 객아(客我) 비아(非我) 타아(他我).
③. 심리학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이나 관념을 이르는 말.
두산 세계 대 백과 사전(인터넷 www. naver .com 검색 엔진이용)
이를 한마디로 요약해보면, 사고, 감정, 의지 등의 여러 작용의 주관자로서 이 여러 작용에 수반하고, 또한 이를 통일하는 주체라 정의할 수 있을 것인데 이렇듯 자아에 대한 생각은 아주 다양하다. 그리고 그런만큼 딱히 무엇이다라고 정의하기 힘든 대상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자아라는 개념은 철학사에 있어서 가장 관심있는 대상중의 하나이다. 특히나 근세철학에 있어서는 이 자아라는 개념이 더욱 부각되는데 이러한 자아라는 것은 내가 보기에 존재해야만 가능한 것이기에 살아있음, 즉 삶과 연계된 문제가 아닐까 싶다. 즉 모든 것의 주재자로서 자아는 존재하는 것이지 객관적인 존재로서 타인(他人)과는 다른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데카르트나 흄, 로크등의 사상가는 끊임없이 자아의 모습을 찾기 위해 자기 내면으로의 깊은 성찰을 해 나갔다. 특히 데카르트같은 경우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말처럼 자아의 모습을 탐구하기 위해 끊임없는 생각을 하였다. 그리하여 '사유하는 자아'만이 존재한다고 결론지었는데 그럼 과연 그 사유하는 자아란 어떠한 존재인가? 그리고 그러한 자기 내면에로의 끊임없는 성찰이 존재와 무공이라는 문제에서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사실 이러한 내면에로의 육박은 다분히 추상적이고 환상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가 자기 내면으로 육박해 나가는 것과 우리 자아가 소멸해 나간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연한 존재적 과정이라 할 수 있는 비자아, 즉 무공의 상태로 되어감에 있어서는 자아중심적인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서로 다른 자아와 사물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상호주관성이 필요하다. 자아라는 큰 섬에 갇혀서는 어떠한 형이상학적 물음들에 대한 답을 내리는게 불가능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파스칼이나 뉴톤등이 말한바 잇는 자연의 광대함과 무한함 속에서 모래알과 같은 미약한 존재인 우리 자아의 존재를 형이상학적으로 바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자아와 거리가 먼곳으로부터 분명히 자아가 아닌 것들을 찾아내고 또 내주위에 아끼는 물건들로 옮겨가서 이제 타자와의 관계를 생가해야만 할 것이다. 즉, 자아와 자아가 아닌 것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자아와 자아 아닌 것들이 상호 협력하고 관계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것들로부터 나 자신에게로, 나머지 모든 것들을 지각하는 것에게로, 이 모든 것들을 타자라고 부르는 관계에 있는 그것에로 마지막 단계를 밟아 나가는 것이 무공 즉, 존재하지 않은 nothing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무공, 즉 죽음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 우리들 각자가 망각되도록 운명지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름아닌 자아인 것이며 우리가 무공을 두려워하고 자기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며, 광기로 몰아가는 것 또한 무공을 인식한 나 자신, 곧 자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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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05.04.02
  • 저작시기2005.0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9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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