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이익과 그 후계자들
2. 홍대용과 박지원
3. 이덕무·유득공·박제가·이서구
4. 이옥·정약용·이학규
5. 김정희 이후의 변모
2. 홍대용과 박지원
3. 이덕무·유득공·박제가·이서구
4. 이옥·정약용·이학규
5. 김정희 이후의 변모
본문내용
秋史體)라고 알려진 서체를 개척해 독특한 기풍을 나타내었으며, 시를 논하면서 성령론(性靈論)을 주장했다. 성령론은 시가 심성의 도리를 구현한다든가 정해진 격조(格調)를 따라야 한다든가 하는 데 대한 반론이다. 그런 주장을 장지완최성환정지윤 등 위항 시인들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개성의 가치를 인정하는 논거로 삼았다.
유희(1773~1837)는 벼슬길에 진출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평생 학문에만 몰두하는 동안에 당시까지 개척된 지식의 거의 모든 영역에 걸친 탐구를 <문통>(文通>이라는 이름의 방대한 저술에 집대성 하였다.
이규경(1788~ ? ) 또한 오직 학문을 본분으로 삼으며, 박학다식을 존중하는 실학파의 학풍을 백과사전 편찬으로 발전시킨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를 저술했다.
최한기(1803~1877)는 중세 이념에 결정적인 비판을 하는 근본적인 논리를 마련했다. 경험적인 지식을 확대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경험의 근거를 찾는 데 몰두함으로써 새로운 경지에 이르렀다. <추측록>(推測錄)에서 성현의 도리니 지난날의 규범이니 하는 것을 근본적으로 부정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고, <인정>(人政)에서 논리에 따라서 현실적인 문제를 하나씩 다루었다.
유희(1773~1837)는 벼슬길에 진출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평생 학문에만 몰두하는 동안에 당시까지 개척된 지식의 거의 모든 영역에 걸친 탐구를 <문통>(文通>이라는 이름의 방대한 저술에 집대성 하였다.
이규경(1788~ ? ) 또한 오직 학문을 본분으로 삼으며, 박학다식을 존중하는 실학파의 학풍을 백과사전 편찬으로 발전시킨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를 저술했다.
최한기(1803~1877)는 중세 이념에 결정적인 비판을 하는 근본적인 논리를 마련했다. 경험적인 지식을 확대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경험의 근거를 찾는 데 몰두함으로써 새로운 경지에 이르렀다. <추측록>(推測錄)에서 성현의 도리니 지난날의 규범이니 하는 것을 근본적으로 부정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고, <인정>(人政)에서 논리에 따라서 현실적인 문제를 하나씩 다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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