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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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아프가니스탄 내전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About 아프가니스탄?

2. 내란의 경과

3. 내란의 분석(원인,전망)

4. 결론

본문내용

계대전 이후 아프가니스탄은 비동맹 중립 노선을 취했지만 이웃 이슬람 국가들에 대한 경계의식 때문에 소련쪽으로 기울어지게 되었다. 소련에게 아프가니스탄은 꿩먹고 알먹는 지역이었다. 인도와 페르시아만으로 향하는 기가 막히는 지정학적 위치에다가, 혹시라도 있을 소련 내 이슬람 공화국들의 이슬람 운동을 막는 방패막이기도 했다. 79년 정부수반 무하마드 타라키가 암살되며 아프가니스탄은 소련의 후원을 받는 정부군과 이슬람 반군 사이에 내전이 일어났다. 그러자 소비에트군은 아프가니스탄으로 진군해 새로운 꼭두각시 정권을 만들려 했고, 이슬람 반군은 결사투쟁을 선포했다. '소비에트판 베트남 전쟁'의 시작이었다. 10만명이 넘는 소비에트의 군사 배치에도 불구하고 무자헤딘의 게릴라 전술은 소련군을 끊임없이 곤경에 처하게 만들었다. 이들은 미국 등 서방국가와 파키스탄으로부터 무제한의 무기와 자금을 지원받았고 수백만의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은 언제든지 지하드(성전)에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었다. 또한 서방은 모스크바 올림픽 보이콧을 비롯한 외교, 경제적 대소제재를 시작했고 중국을 위시한 각국의 공산당 역시 소비에트를 비난했다. 그러나 섣불리 발을 뺄 수 없었던 소비에트는 고르바쵸프의 집권 이전까지 끊임없이 아프가니스탄의 수렁에서 지리한 전투를 계속해 나갔다. 결국 고르바쵸프의 개방정책 하에서 유엔의 중재로 열린 협상은 1989년 2월 15일까지 소비에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완전 철수한다는 미-소 협정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소비에트군 철수 이후에도 내전은 끝나지 않았다. 소비에트의 허수아비 '나지불라 정권'에게 소비에트는 여전히 무기를 공급했던 것이다. 반면 반군은 내분에 시달리면서도 저항을 멈추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1992년 4월 무자헤딘은 수도 카불을 함락하고 나지불라를 처형하며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선포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끝이 아니었다. 무자헤딘의 각 파벌들은 정권을 잡기 위해 또다른 전투를 시작했던 것이다. 그 지리한 내전의 도가니에서 어느덧 아프가니스탄은 괴물을 낳을 태세가 되어 있었다. 1994년 수니파 이슬람 근본주의 학생 단체 '탈레반'이 등장했다. 파슈툰어로 '구도자'라는 뜻의 탈레반은 94년초 파키스탄 접경의 코란 학교에서 시작되었다. 그들은 인민을 선두에 앞세우는 철저한 이슬람 근본주의로 무장한 '신의 군대'였고 오랜 내전에 지친 아프가니스탄인들의 지지도 받았다. 각 파벌의 지도자들도 오래지 않아 상당수가 탈레반에 가담하기 시작했다. 결국 1996년 9월 27일 탈레반은 수도 카불을 점령하고 정통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의 태동을 알렸다. 북부지역으로 부리나케 도망쳐 역으로 쫓기는 신세가 된 정부군을 남겨두고...
전망
아프가니스탄 내전은 그 동안 세 단계의 국면 전환이 있어왔다. 첫 단계의 내전은 사회주의 노선을 추구하는 정부권력에 이슬람 무장세력이 저항하는 형태로 전개되었다. 두 번째 단계의 내전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구소련군과 그 지원을 받는 정부군에 반정부 무장세력이 저항하는 형태로 전개되었다. 오늘날 진행되고 있는 세 번째 단계의 내전은 1980년대 말 구소련군의 철수 이후 정국을 장악하기 시작한 탈레반세력에 대해 그 반대 정파들이 저항하면서 지속되고 있다. 현재로서는 탈레반 정부군이 그 반대 정파세력들을 무력으로 진압하거나 축출하는 국지적 군사작전이 지속되고 있으며, 그러한 양상은 아프가니스탄 내부에 다양한 정파들이 난립해 있다는 사실과 이제까지의 그들간 내전 진행 과정에 비추어 볼 때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아프가니스탄 내전은 향후 주변국의 개입으로 국제화될 가능성이 높다.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 등 주변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러시아는 아프가니스탄이 이슬람 원리주의를 신봉하는 탈레반세력에 의해 장악된 이후 각기 자국 내 이슬람세력의 움직임에 대해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다. 2001년 11월 들어 탈레반 정권은 한달이 넘는 미국의 공습과 국제적 지원을 받는 북부동맹의 공세에 밀리면서, 탈레반 세력의 주류인 파슈툰족이 거주하는 남부 지역으로 그 세력권이 급격히 축소되었다. 탈레반 세력이 산악지형을 이용한 게릴라전 방식의 저항을 하면서 반격도 준비할 태세를 가다듬고 있으나, 잃은 지역을 회복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오히려 탈레반 정권이 사실상 와해되면서 현재 탈레반 이후의 대체정부 수립이 논의되고 있으며, 다국적 평화유지군의 구성과 임무, 그리고 배치까지도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4대 종족으로 구성된 아프가니스탄을 일부 종족을 배제한 채 과도정부를 구성할 경우 또 다른 내전을 부를 수 있으며, 아프가니스탄 주변국이나 관련 이해국가간의 복잡한 국제관계는 대체 또는 과도정부 구성문제가 쉽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4. 결론
아프가니스탄 내전은 처음에는 정치 노선과 정국 주도권을 둘러싸고 상이한 정파들(사회주의세력:이슬람세력)이 무력적 대결을 벌이면서 촉발되었으나, 1970년대 말 구소련이 자국에 우호적인 사회주의정권을 확고하게 유지하여 이슬람세력의 자국 내 파급을 차단할 목적으로 전면적 침공을 감행함으로써 1980년대의 새로운 국제적 냉전을 초래하기도 하였던 국제정치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오늘날에는 그 동안 반군세력으로서 정부군에 저항해 왔던 이슬람원리주의세력(탈레반세력)이 정국을 장악하고 그 반대세력을 축출하는 군사작전을 전개하고 있어 국지전 성격의 내전이 지속되고 있다. 이 내전은 오래 지속되면서 대규모의 인명 살상과 난민을 발생시켰으며, 러시아와 파키스탄 및 이란을 포함하여 주변의 여러 국가들에게 정치て안보적 위험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에 내전이 격화될 경우 이 지역 전체의 불안정을 야기할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평화적 분쟁 해결 노력에도 큰 부담을 가중시킬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안보적 측면에서는 직접적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희박하나, 이 지역의 불안정이 심화될 경우 그 주변국에서의 경제적 이익 추구에 제한을 받게 될 것이며, 유엔 중심의 인도주의적 활동에 참여하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5. 참고문헌
* empas 백과사전
* 국방저널
* KIDS 한국국방연구원 세계분쟁 데이터베이스
  • 가격2,000
  • 페이지수14페이지
  • 등록일2005.04.09
  • 저작시기2005.0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9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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