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서론
Ⅱ.혁명전의 프랑스 여성의 사회적 지위
Ⅲ.혁명기의 여성
1.혁명의 배경
1)17, 18세기의 살롱
2)계몽주의의 확산
2.혁명 활동
1)바스티유 그리고 베르사유로의 진격
2)살롱 중심의 여성 클럽
3)지롱드당의 몰락
Ⅳ.프랑스 혁명에서의 여성 배제 이데올로기
1.들어가며
2.여성의 정치참여에 대한 남성들의 불안감 - 자연적 질서의 파괴
3.공적인 여성들에 대한 비난과 애국적 어머니 상 강조
4.성차별에 대한 합리화 - 의학적인 뒷받침
5.요약
Ⅴ.프랑스 혁명과 여성의 지위
1.여성의 정치적 성장과 반동 이데올로기
2.프랑스 인권 선언의 남성적 성격
3.프랑스 헌법상 남성의 지위
1)혁명 전기 여성의 지위
2)혁명 후기 여성의 지위
3)정치적 권리의 획득
4.프랑스 혁명의 여성사적 의의
Ⅵ.결론
Ⅱ.혁명전의 프랑스 여성의 사회적 지위
Ⅲ.혁명기의 여성
1.혁명의 배경
1)17, 18세기의 살롱
2)계몽주의의 확산
2.혁명 활동
1)바스티유 그리고 베르사유로의 진격
2)살롱 중심의 여성 클럽
3)지롱드당의 몰락
Ⅳ.프랑스 혁명에서의 여성 배제 이데올로기
1.들어가며
2.여성의 정치참여에 대한 남성들의 불안감 - 자연적 질서의 파괴
3.공적인 여성들에 대한 비난과 애국적 어머니 상 강조
4.성차별에 대한 합리화 - 의학적인 뒷받침
5.요약
Ⅴ.프랑스 혁명과 여성의 지위
1.여성의 정치적 성장과 반동 이데올로기
2.프랑스 인권 선언의 남성적 성격
3.프랑스 헌법상 남성의 지위
1)혁명 전기 여성의 지위
2)혁명 후기 여성의 지위
3)정치적 권리의 획득
4.프랑스 혁명의 여성사적 의의
Ⅵ.결론
본문내용
후에도 여성은 정치 영역에서 철저히 소외되었고, 혁명을 통해 철폐될 것으로 보였던 봉건적 굴레들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프랑스 혁명을 여성의 역사에 있어 기념할 바 없는 사건으로 평가해야 하는가. 단정적으로 말해서 그런 결론은 올바르지 못하다. 반동의 과정 속에서도 여성들은 계속해서 투쟁했고 그를 통해 뜻깊은 성과들을 이룩해 냈기 때문이다.
프랑스 혁명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 혁명을 거치면서 비로소 공적 영역에서 여성의 역할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혁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여성들의 힘에 의해 세계는 여성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었고, 그것이 비록 그들에 대한 철저한 배제로 나타났다 할지라도, 이러한 사회적 흐름은 여성들이 스스로를 새롭게 자각하게 하였다. 여성들은 혁명에의 참여를 통해 자신이 사회적으로 한 인간임을 긍정하고 선언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여성들이 가시적 성과를 -정치적으로 동등한 지위를- 이루어내지 못했고, 시민적 권리의 부여라는 기존 체제의 사회적 안전망에 갇혀 서구 다른 나라들보다도 뒤늦게 선거권을 획득했다는 점 등에 대해서는 또 다른 평가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한계점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혁명 과정에서 보여준 여성들의 행동은 여성이 인간으로 거듭나는 기초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Ⅵ.결론
1789년 일어난 프랑스 혁명은 부르조아 민주주의 혁명의 가장 전형적인 예로서 많은 역사가들의 연구대상이 되어왔다.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 자유롭고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는 프랑스 인권선언 제 1조는 오늘날 다시 읽어도 가슴이 뛰는 인간 존엄의 선언이고 평등의 외침이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의 인간 존엄이 남성만을 위한 존엄이었고, 프랑스 혁명의 만민 평등이 실은 남성들만의 평등이었음은 지금까지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것 같다.
바스티유 감옥 진격에 앞장섰던 테로아뉴 드 메리클과 같은 혁명적 여성들, 남성들과 더불어 토론을 벌이며 정치의 장에 적극 개입했던 살롱의 여성들이 프랑스 혁명을 성공으로 이끄는데 적지 않은 공헌을 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혁명 후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선언'을 기초한 드 구즈의 처형이나 여성 정치 연합의 해체 등에서 드러나는 가혹한 탄압이었고 공적인 영역에서의 철저한 여성 배제였다.
1791년 헌법이 공포된 이래 1852년에 이르기까지 6차에 걸쳐 개정된 프랑스 헌법은 일관되게 여권 문제를 무시했고, 혁명의 반동기에 만들어진 나폴레옹 헌법은 이미 해체되고 있던 봉건적 윤리관으로 되돌아가는 경향성을 보이기까지 했다. 남성들은 여성이 남성의 '보호', '지도' 하에 있는 것을 자연의 질서라고 합리화했으며, 혁명적 여성들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편견과 비난을 감추지 않았다. 이러한 남성들의 적극적 배척과 정치의 주체로서 자리매김하는데 능동적이지 못했던 당시 여성들의 한계성으로 인해 여성들은 혁명이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그 중심에서 완전히 소외당하게 되었다.
봉건체제의 어두움을 박차고 스스로의 인간됨을 행동으로 보여줬던 프랑스 여성들이 자신의 정치적 주체성을 찾은 것이 혁명으로부터 150여년이 지난 1946년에 이르러서였다는 사실은 이 혁명의 남성적 성격을 잘 보여준다.
우리가 프랑스 혁명을 '정치적으로 올바른' 시각으로 다시 바라보면서 밝히고자 하는 것은 모든 인간의 존엄 보장과 만민 평등이라는 프랑스 혁명의 정신이 인류의 절반인 여성들에게 얼마나 철저한 허구였었나 하는 점이다. 그와 더불어 이러한 결정적 문제점을 지금까지 조명하지 않았던 남성 중심의 역사 연구에 대해서도 비판을 제기하고자 한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고 있는 역사적 판단들이 시각을 달리해서 볼 때 얼마나 뒤틀리고 왜곡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프랑스 혁명은 많은 것을 보여준다. 자신들은 시민적, 정치적 자율성을 획득하면서 그들의 식민지, 여성들은 다시 봉건적 굴레 속에 가둘 수 있었던 남성들에게 프랑스 혁명은 진정한 혁명이 될 수 있었겠지만, 여성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 단지 또다른 암흑의 시작에 불과했을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날 갑자기 '인디언'이라는 되먹지도 않은 이름을 얻고, 자신들의 생존 공간을 빼앗기게 된 이들에게 ‘외래인의 침입’ 이상의 의미가 없는 사건이, 백인들의 역사를 통해 ‘신대륙의 발견’으로 기억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 주변에 주어지고 있는 많은 가치들이 누구의 시각으로 재단된 것인가에 대해 살펴보는 것은 흥미있으면서도 때로는 두려운 것이다.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던 것들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역사적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시 살펴본 프랑스 혁명이 여성들에게 있어 '빼앗긴 혁명' 이상의 것이 될 수 없다고 할 때, 이것이 갖는 역사적 의의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우리는 이 혁명의 진정한 의의를 여성의 인간됨을 서구 세계가 자각하게 된 최초의 사건이었다는 점에서 찾고자 한다. 특별한 몇 명 사람이 아닌, '여성'이라는 존재 전체가 공적 영역에서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를 통해 여성 자신과 서구 세계에 새로운 고민의 문제를 제기하였다는 것만으로도 여성들의 투쟁과 혁명의 과정은 충분히 의미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앞선 문제 제기와 정신이 오늘날에도 이어져 진정한 양성 평등과 모든 인간의 존중을 위한 싸움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는 것에서도 프랑스 혁명의 진정한 유의미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 문헌
1.안정애, ‘프랑스 혁명과 여성의 신분권 문제’, 성균관대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1967.
2.조르즈뒤비.미셸페로(편), 『여성의 역사4(상)』, 권기돈.정나원(역), 새물결, 1998.
3.린 헌트, 『프랑스 혁명의 가족 로망스』, 조한욱(역), 새물결, 1999.
4.Rene Girard, Violence and the Scared, tr. Patrick Gregory (Baltimore, 1977).
5.Rene Girard, Le Boue emissaire (Paris, 1982).
6.조성원(편), 『소법전』, 현암사, 1998.
7.김성원(편), 『혁명기의 여성들Ⅰ』, 한울림, 1985.
프랑스 혁명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 혁명을 거치면서 비로소 공적 영역에서 여성의 역할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혁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여성들의 힘에 의해 세계는 여성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었고, 그것이 비록 그들에 대한 철저한 배제로 나타났다 할지라도, 이러한 사회적 흐름은 여성들이 스스로를 새롭게 자각하게 하였다. 여성들은 혁명에의 참여를 통해 자신이 사회적으로 한 인간임을 긍정하고 선언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여성들이 가시적 성과를 -정치적으로 동등한 지위를- 이루어내지 못했고, 시민적 권리의 부여라는 기존 체제의 사회적 안전망에 갇혀 서구 다른 나라들보다도 뒤늦게 선거권을 획득했다는 점 등에 대해서는 또 다른 평가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한계점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혁명 과정에서 보여준 여성들의 행동은 여성이 인간으로 거듭나는 기초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Ⅵ.결론
1789년 일어난 프랑스 혁명은 부르조아 민주주의 혁명의 가장 전형적인 예로서 많은 역사가들의 연구대상이 되어왔다.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 자유롭고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는 프랑스 인권선언 제 1조는 오늘날 다시 읽어도 가슴이 뛰는 인간 존엄의 선언이고 평등의 외침이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의 인간 존엄이 남성만을 위한 존엄이었고, 프랑스 혁명의 만민 평등이 실은 남성들만의 평등이었음은 지금까지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것 같다.
바스티유 감옥 진격에 앞장섰던 테로아뉴 드 메리클과 같은 혁명적 여성들, 남성들과 더불어 토론을 벌이며 정치의 장에 적극 개입했던 살롱의 여성들이 프랑스 혁명을 성공으로 이끄는데 적지 않은 공헌을 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혁명 후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선언'을 기초한 드 구즈의 처형이나 여성 정치 연합의 해체 등에서 드러나는 가혹한 탄압이었고 공적인 영역에서의 철저한 여성 배제였다.
1791년 헌법이 공포된 이래 1852년에 이르기까지 6차에 걸쳐 개정된 프랑스 헌법은 일관되게 여권 문제를 무시했고, 혁명의 반동기에 만들어진 나폴레옹 헌법은 이미 해체되고 있던 봉건적 윤리관으로 되돌아가는 경향성을 보이기까지 했다. 남성들은 여성이 남성의 '보호', '지도' 하에 있는 것을 자연의 질서라고 합리화했으며, 혁명적 여성들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편견과 비난을 감추지 않았다. 이러한 남성들의 적극적 배척과 정치의 주체로서 자리매김하는데 능동적이지 못했던 당시 여성들의 한계성으로 인해 여성들은 혁명이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그 중심에서 완전히 소외당하게 되었다.
봉건체제의 어두움을 박차고 스스로의 인간됨을 행동으로 보여줬던 프랑스 여성들이 자신의 정치적 주체성을 찾은 것이 혁명으로부터 150여년이 지난 1946년에 이르러서였다는 사실은 이 혁명의 남성적 성격을 잘 보여준다.
우리가 프랑스 혁명을 '정치적으로 올바른' 시각으로 다시 바라보면서 밝히고자 하는 것은 모든 인간의 존엄 보장과 만민 평등이라는 프랑스 혁명의 정신이 인류의 절반인 여성들에게 얼마나 철저한 허구였었나 하는 점이다. 그와 더불어 이러한 결정적 문제점을 지금까지 조명하지 않았던 남성 중심의 역사 연구에 대해서도 비판을 제기하고자 한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고 있는 역사적 판단들이 시각을 달리해서 볼 때 얼마나 뒤틀리고 왜곡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프랑스 혁명은 많은 것을 보여준다. 자신들은 시민적, 정치적 자율성을 획득하면서 그들의 식민지, 여성들은 다시 봉건적 굴레 속에 가둘 수 있었던 남성들에게 프랑스 혁명은 진정한 혁명이 될 수 있었겠지만, 여성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 단지 또다른 암흑의 시작에 불과했을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날 갑자기 '인디언'이라는 되먹지도 않은 이름을 얻고, 자신들의 생존 공간을 빼앗기게 된 이들에게 ‘외래인의 침입’ 이상의 의미가 없는 사건이, 백인들의 역사를 통해 ‘신대륙의 발견’으로 기억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 주변에 주어지고 있는 많은 가치들이 누구의 시각으로 재단된 것인가에 대해 살펴보는 것은 흥미있으면서도 때로는 두려운 것이다.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던 것들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역사적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시 살펴본 프랑스 혁명이 여성들에게 있어 '빼앗긴 혁명' 이상의 것이 될 수 없다고 할 때, 이것이 갖는 역사적 의의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우리는 이 혁명의 진정한 의의를 여성의 인간됨을 서구 세계가 자각하게 된 최초의 사건이었다는 점에서 찾고자 한다. 특별한 몇 명 사람이 아닌, '여성'이라는 존재 전체가 공적 영역에서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를 통해 여성 자신과 서구 세계에 새로운 고민의 문제를 제기하였다는 것만으로도 여성들의 투쟁과 혁명의 과정은 충분히 의미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앞선 문제 제기와 정신이 오늘날에도 이어져 진정한 양성 평등과 모든 인간의 존중을 위한 싸움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는 것에서도 프랑스 혁명의 진정한 유의미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 문헌
1.안정애, ‘프랑스 혁명과 여성의 신분권 문제’, 성균관대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1967.
2.조르즈뒤비.미셸페로(편), 『여성의 역사4(상)』, 권기돈.정나원(역), 새물결, 1998.
3.린 헌트, 『프랑스 혁명의 가족 로망스』, 조한욱(역), 새물결, 1999.
4.Rene Girard, Violence and the Scared, tr. Patrick Gregory (Baltimore, 1977).
5.Rene Girard, Le Boue emissaire (Paris, 1982).
6.조성원(편), 『소법전』, 현암사, 1998.
7.김성원(편), 『혁명기의 여성들Ⅰ』, 한울림,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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