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19세기 말의 제국주의
2. 1차 세계 대전
3. 베르사유체제
4. 2차 세계 대전
2. 1차 세계 대전
3. 베르사유체제
4. 2차 세계 대전
본문내용
동부폴란드와 발트 3국 등을 점령했다. 이탈리아의 발칸진출이 용이치 않았던 반면, 독일은 승승장구로 서쪽의 덴마크, 노르웨이, 네덜란드를 점령했다. 이어서 마지노 방어선만 믿고 소극적으로 항전하던 프랑스까지 점령해 비시괴뢰정부를 수립함으로써 소련을 제외한 유럽대륙을 장악했다.
그러나 처칠이 지도하는 영국의 치열한 항전, 드골이 지도하는 자유프랑스군과 프랑스 국내 레지스탕스의 저항, 미국의 참전 및 소련과의 이해갈등 속에서 2차 대전의 추축국은 패전의 국면으로 치달았다. 일본은 동남아시아로의 진출을 보장받기 위해, 하와이의 진주만을 기습공격했으나(1941, 11), 1942년 여름 이후 다른 추축국가들과 함께 역전의 국면을 맞았다.
이에 따라 연합국의 수뇌들은 카이로(1943), 얄타(1945, 2), 포츠담(1945, 7) 등지에서의 회담을 통해 전후 국제질서에 대해 논의했다. 특히 얄타회담에서는 소련의 참전이 결정되어 향후 국제질서에 큰 변수로 작용하였다. 뭇솔리니 정권이 붕괴된 이탈리아가 추축국 중 가장 먼저 항복한 후(1944, 6), 독일(1945, 5)과 원자탄이 투하된 일본이 항복하면서(1945, 8) 2차 세계대전은 종식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처칠이 지도하는 영국의 치열한 항전, 드골이 지도하는 자유프랑스군과 프랑스 국내 레지스탕스의 저항, 미국의 참전 및 소련과의 이해갈등 속에서 2차 대전의 추축국은 패전의 국면으로 치달았다. 일본은 동남아시아로의 진출을 보장받기 위해, 하와이의 진주만을 기습공격했으나(1941, 11), 1942년 여름 이후 다른 추축국가들과 함께 역전의 국면을 맞았다.
이에 따라 연합국의 수뇌들은 카이로(1943), 얄타(1945, 2), 포츠담(1945, 7) 등지에서의 회담을 통해 전후 국제질서에 대해 논의했다. 특히 얄타회담에서는 소련의 참전이 결정되어 향후 국제질서에 큰 변수로 작용하였다. 뭇솔리니 정권이 붕괴된 이탈리아가 추축국 중 가장 먼저 항복한 후(1944, 6), 독일(1945, 5)과 원자탄이 투하된 일본이 항복하면서(1945, 8) 2차 세계대전은 종식하기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