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3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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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에스겔 33장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에스겔서의 전체 구조

Ⅲ. 에스겔 33장의 구조와 내용분석

Ⅳ. 양식

Ⅴ. 주석

Ⅵ. 신학적 메시지

본문내용

을 주고 있다(v22). 집들의 담들 곁에서, 문간들에서, 그늘진 곳에서 그들은 서서 그리고 말한다. 에스겔과 그는 예기치 않게 준비된 예언자가 말해야 하는 하나님에 대해 들으려 달려오는 자라고 서로 말하고 있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도 그의 백성(암 3:1 ; 4:1 ; 5:1 ; 겔 6:3 ; 13:2 ; 그밖에)의 소환을 들어야만 한다는 배려가 소명이 되는 지금, 예기치 않게, 그 백성들 스스로의 입에서 들린다, 얼마간 가득하게 말하는 그러나 정확하게 그의 내용에 상응하고 있다.
◆31a절-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이 감각적인 무언가를 보려고 언제나 그 시대를 통해 나아오는 것처럼 서로 부르며 나아오고 있다. 그리고 예언자 앞에 앉는다(8:1 ; 14:1 ; 20:1).
만약 예언적인 성공의 정세가 이루어지는 밖에서부터 이 모든 것이 드러나고 있다면, 거기는 실제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의심 없이 꽤 다른 실제 안에 있는 예언자의 신의 주소로부터 끼워 넣은 여기에서 괴로운 관찰의 상황을 보고 있는 것이다.
◆32절- 32절은 원래 31a 뒤에 곧바로 따르는, 실제 상황을 드러내고 있다. 예언자의 말은 시인들의 사랑 노래 같이 들린다. 그들의 목소리는 기쁨과 현악기를 동반한 능숙한 연주자의 목소리다(사 5:1-7에서 이 유형의 노래를 사용하는 2류의 대담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신의 말씀을 실제로 들어야만 하는 방법은 아니다-구속! 행동으로 번역되기 위해 듣는 구속.
◆31ab절- 두 번째 추가에서 그 이상의 동기부여(자극)를 거기에 추가하고 있다: 청중들과 약자(병자)들의 입과 가슴들은 탐욕과 육욕에 극에 달해 있다( “부정한 소득” 22:13, 27을 보라).
예언자의 말의 자연스러움과 관련된 특별한 결말을 묵인하고 있는 서술은 여기서 예상되었다. 그것은 예언자의 말을 듣기 위한 사람들이 초청한 단어(말)이다.
◆33절- 독특한 신적 응답을 괴로움에 직면하고 있는 예언자는 다른 이를 구하는 예언적 직무의 보증을 위한 다른 이유를 만들지 않고 있다: 그 말이 응하였을 때-그리고 그것이 응할 때- 그것은 예언자가 거기에 있어서 실현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진실과 사건의 만족을 가진 어떠한 경우에서도 그의 말에 의해 서 계신다. 그것은 예언적인 구조의 작용을 하는 예언자의 납득된 질문이 아니고, 그의 행동들 안에 있는 야웨의 신빙성 안의 믿음이다.
그러나 무엇이 응한 것인가? 두 사건이 반드시 있었다고 말한 이후에 무엇이 있었다. 야웨는 그가 이스라엘과 하였던 약속의 한계들을 통해 그의 일을 계속 할 것이다. 그러나 같은 시간에, 그는 또한 그가 세웠던 그의 야경(경비원)을 통하여 개인에게 한 그 말씀에 의해 서 있을 것이다.
Ⅵ. 신학적 메시지
1. 하나님이 세워주신 백성의 파숫꾼으로서의 사명.(1-9절)
에스겔이 하나님으로부터 파숫꾼으로 임명을 받았다. 파숫꾼은 혼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살수 있는 방법은 오직 적이 쳐들어오는 것을 보고 잘 알리고 그 싸움에서 이겨야만 목숨을 건질 수 있다. 하지만 에스겔이 경고해야 하는 대상은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고 아무리 알리려 해도 말을 잘 듣지 않는 백성이다. 하나님도 이런 상황을 잘 아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에스겔을 파숫꾼으로 세우셔서 마지막까지 구원의 길을 터놓고 있는 것이다. 이 시대 우리들도 마찬가지이다.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말씀에 민감하고 두려워한다면 아마 파숫꾼은 필요치 않을 것이다.
이 시대 많은 파숫꾼이 필요한 까닭은 그 만큼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기회를 파숫꾼을 세움으로 그 길을 열어주신다. 이제 에스겔처럼 파숫꾼이 된 우리는 우리만 혼자서 살 수 있는 길은 없다. 다 같이 죽든지, 아니면 최선을 다해서 한명이라도 구원을 하던지... 우리는 마지막까지 구원의 소식을 알려야 하며 진심으로 그 일을 다 해야 한다.
2. 결국 하나님의 본심은 악인이 회개하고 삶을 돌이켜 구원을 얻는 것이다. (11절)
11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라는 것이다. 사실 어찌보면 예루살렘이 멸망되고 초토화되는 것을 가장 슬퍼하고 아파한 사람은 하나님이시다. 선지자도 왕도 백성도 아닌 바로 하나님이다. 이것은 마치 부모가 자녀가 잘못을 하면 그것을 바로 잡기 위해 회초리를 들어서 아프게 때리지만 사실은 맞는 자녀보다 때리는 부모의 마음이 더욱 아픈 것과 흡사하다고 하겠다. 그러면서도 잘못을 뉘우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부모의 마음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다.
이스라엘의 죄악으로 인해 그들을 징벌하시지만 그들이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돌이켜서 멸망당하지 않도록 하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본심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 때리시며 아파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설령 우리 자신이 죄를 범하여서 하나님께 매를 맞고 징벌을 당할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사랑하시며 또한 돌아오기를 기뻐하시는 분이므로 회개하고 돌이켜야 하는 것이다.
3.말씀으로 행동하시는 하나님(33절)
하나님은 말씀으로 행동하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땅에 남아 있는 여전히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생각하며 교만한 우상숭배의 죄 가운데 있는 백성들에게 예언자를 통해 말씀하신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러 나오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사랑의 노래’를 들으려고 나오며 그 말씀을 준행 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들의 죄와 우상숭배와는 상관하지 않으시고 여전히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자기 민족을 위해 고통을 당하는 예언자를 통해서 말씀으로 그들을 심판하신다.
우리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단순히 귀의 즐거움만을 위해 듣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의 말씀은 듣는 자가 어떠하든지 전하는 자가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상관하지 않으시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항상 말씀으로 우리에게 역사 하시는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말씀을 듣는 자들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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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04.17
  • 저작시기20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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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293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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