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4대 자연개조 사업과 3대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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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4대 자연개조사업

3대혁명
◀서해갑문
◀태천발전소
◀30만정보 간석지 개간
◀20만정보 새땅찾기 사업

본문내용

조성) 등의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30만정보 간석지 개간
4대 자연개조사업 제기 당시에는 1982년부터 1984년까지의 기간중 3∼4만 정보씩 그리고 1985년부터는 연간 5만정보씩 개간 , 1988년 말까지 총 30만 정보(황남 8만정보, 평남·북 각 11만정보)의 간석지를 개간한다는 목표를 세웠었다.
이를 위해 북한은 정무원 산하 기상수문국 및 과학원 수리공학연구소에서 이 분야에 대한 기술 개발을 전담토록 하는 한편 1982년에는 황남 재령군에 간석지건설 전문학교를 설립, 전문가를 양성하는 등 대책을 마련해 왔다.
그러나 북한은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적이 부진하자 1987년 4월 최고인민회의 제8기 2차회의에서 기한을 연장하여 1993년말 까지로 연장하여 계획을 추진했다.
북한은 1992년말 현재 간척대상지역인 서해안의 33만정보중(동해안 2,000정보) 토목자재, 장비 및 기술 부족으로 6만여정보를 간척했으며 14개 지역에서 군인·청년돌격대 등을 상시 5만여명 투입해 총 14만정보의 간척사업을 진행했다.
◀20만정보 새땅찾기 사업
이 사업은 초기에 각종 공한지와 유휴지를 포함해 강·하천부지, 물웅덩이, 논·밭둑 등 경작 가능한 모든 땅을 그 대상으로 하는 등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것과는 달리 70년대부터 계속되어온 다락밭 개간으로 인한 산사태·홍수통제 불능 등의 부작용이 확대됨에 따라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따라서 북한이 새땅찾기사업 실적으로 내세운 것도 1987년 11월 24일 평양방송을 통해 백두·개마고원일대에서 2만여 정보의 농경지를 개간했다고 보도한 것 등 매우 제한적이다.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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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04.24
  • 저작시기2005.0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94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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