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벨바그와 프랑스영화(방통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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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누벨바그와 프랑스영화(방통대)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누벨 바그(Nouvelle Vague) 이전까지의 프랑스 영화-예술과 산업

2. 누벨 바그(Nouvelle Vague)라는 영광 혹은 장애

3. 80년대-누벨 이마쥬(Nouvelle Image)라는 징금다리

4 우리가 프랑스 영화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

5. 프랑스영화는 정말 '유럽영화산업의 응석받이'인가.

본문내용

의 데뷔작인 <내게, 나 자신, 나>(Me, Myself, I). 프로듀서인 파비엥 리롱 역시 영어 대사로 된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패트릭 레두가 끌어들인 인물로, 저예산영화를 연출할 감독을 물색하는 것이 그의 몫이다. 레두와 함께 일하는 프로듀서들은 레두가 헐리웃 스튜디오의 수장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라고 한다. 한편 파비엥 리롱은 2편의 영국영화를 기획하고 있고, 오스트레일리아 제작사와도 말이 오가고 있다. 리롱은 이상하겠지만, 프랑스가 제작비 전액을 대는 오스트레일리아영화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고몽의 이런 전략은 커져만 가는 헐리웃의 지배력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어느 나라 든 헐리웃을 닮아가는 수밖에 없다는 믿음에서 나온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에 비하면 너무나 적은 규모지만 제작 당시에는 기존의 한국영화계로써는 생각할 수 없던 어마어마한 제작비가 투자된 <쉬리>의 제작 발상도 이런 믿음을 바탕에 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제작비나 제작 시스템을 헐리웃 규모로 키우고 바꿔서 헐리웃에 대적할 수 있는 자신만의 색깔을 갖춘 영화들이 꾸준히 생산해서 <쉬리>가 한국에서 <타이타닉>의 흥행 기록을 경신한 것 같은 상업적 성공을 계속해서 거둔다면 이런 전략은 헐리웃에 맞서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전략은 너무나 많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고 또 궁극적으로 자국 영화시
장과 자국 영화를 지켜야 하는 이유를 망각하고 있다. 프랑스와 같이 적어도 영화 선진국이라고 불릴 수 있는 극소수의 나라에서만 가능한 이야기겠지만, 우선 헐리웃과 같은 컨텐츠를 갖추기 위해선 엄청난 투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투자 뒤에도 분명 헐리웃과의 경쟁이 필요하고 그 와중에서 엄청난 제작비가 투자된 몇 편의 영화가 흥행에 참패한다면 그 나라 영화시장은 전체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빠져버리고 만다. 현실적으로 봤을 때 상대적으로 그 어떤 나라보다 무한히, 그리고 장기적으로 영화에 투자할 수 있는 헐리웃이 이런 규모를 앞세운 전쟁에선 최종 승자가 될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언어를 바꾸고 자국 문화와 영화적 전통을 뒤틀어서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한다고 한들 돈 이외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결국 영화시장을 방어해야 하는 것은 자국 문화를 지켜내기 위해서이며 헐리웃이 반복적으로 재생산해내는 획일적인 미국적 시선과 문화에 반
하는 다양한 예술적 시도와 문화적 다양성을 더욱 풍요롭게 누리기 위해서이며 또한 헐리웃에 의한 시장의 독과점을 막기 위해서이다. 역시 영화를 바라보는 시선은 산업쪽과 예술쪽 그 어느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균형 잡힌 것이어야 한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고몽사의 전략이 아니라 누벨 바그 그리고 그를 거부하거나 계승함으로써 90년대 프랑스영화가 택하는 미학적, 산업적 전략이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거부와 계승'의 경향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 경계는 개개인의 감독들에게 있어선 모호하며 또한 넘나든다. 영화적 전통과 더불어 이런 다양한 스펙트럼은 다종다기한 취향의 현대 관객들을 만족시키며 궁극적으로 시장을 키우고 문화의 다원화와 전체적으로는 프랑스 문화의 정체성을 형성에 기여한다. 그리고 좀 더 구체적으로는 세드릭 클라피쉬 뿐만 아니라 90년대 대다수의 프랑스 감독들이
선호하는 '소시민적이며 일상적인 영화'의 제작과 흥행 현상에 주목해야 한다. 때로는 따뜻하게 때로는 차갑게 그려내는 우리들 삶 속에 내재된 것으로 영화만들기는 분명 가장 주목할 만한 90년대 프랑스 영화의 경향이다. 격한 사회고발이나 정치적 메시지, 거대한 철학적 통찰 같은 무거움과 일종의 예술적 의무감, 혹은 겉멋을 버림으로써 영화는 좀더 가깝게 관객에게 다가왔고 새로운 경향의 미학적 경지에도 이른 느낌이다.
한국영화계가 몰락한 남미영화계의 길을 걷지 않기 위해서 헤쳐나가야 할 길은 멀고도 험하다. 우선 영화적 전통을 세우는 일이 필요하다. 시적 사실주의나 누벨바그 같은 세계영화사의 한 획을 긋는 거창한 전통이 아니라도 좋다. 다만 현재 필름 보관 상태까지 엉망인 한국영화사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연구로 그 속에서 한국영화의 원형적 미학과 정서의 전통을 세워야한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뮌다. 한국적 미학과 정서의 발굴은 궁극적으로 관객의 기호 파악과 흥행, 영화산업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일상을 파고드는 90년대 프랑스영화의 경향을 여러 각도에서 분석하고 한국적 적용을 모색하는 것도 필요하다. 90년대 프랑스영화에서는 헐리웃에 대한 무조건적인 적대가 아니라 장점은 받아드리고 전통은 계승하고 발전시켜나간다는 유연한 자세가 돋보인다. '문화이자 상품'으로써 영화를 인식하는 것은 헐리웃 영화에 맞서는데 있어 무엇보다도 중요한 태도 중 하나다.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에 스크린 쿼터라는 최소한의 지원 아닌 보호 정책이 감초처럼 자주 오른다는 것은 실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경제가 문화를 앞선다는 이런 식의 발상 밑에서 한국은 여전히 새로운 밀레니움, 21세기에도 '뒤따라가는' 나라로 밖에 남지 못할 것이다. 작년 한국의 스크린 쿼터 사수 운동을 열렬히 지지한 프랑스의 태도는 연대전선이라는 의미가 깊이 깔려 있다. 미국의 자유주의적 경제 논리가 구사하는 당근과 채찍의 전술에 휘말려 한나라한나라씩 영화산업을 포기한다면 결국 프랑스의 영화산업도 견딜 수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라는 상품의 성격은 다분히 담배와 커피 같은 기호상품이다. 지금도 물론 길들여져 있지만 전세계 관객의 입맛이 완전히 헐리웃적이 된다면 철저한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소수를 배제하고 다수를 위해 움직이는 시장 경제의 논리상 '프랑스영화'라는 개념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다양한 입맛의 유지를 위해 다양한 스타일의 영화 제작과 수입을 장려하고 시네마떼끄를 통해 소수의 마니아들을 다수로 이끌어 시장을 형성시키는 관객운동을 포함하는 프랑스의 영화산업지원책은 <쥐라기 공원>이 현대차 수출 몇배의 이익을 냈다고 해서 영화산업에 관심을 기울이는 한국적 마인드에 깊은 반성을 준다......생각이 바뀌지 않는 이상 진정한 의미의 '새로운' 밀레니움 시대는 우리에게 도래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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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06.05
  • 저작시기2005.0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95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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