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들어가며
2. 남쪽의 주장
1) 임시정부의 조직과 활동
2) 통일전선으로서의 임시정부
3) 해방 후의 임시정부
4) 과연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민족해방운동의 배타적
정통성을 담지하고 있는가?
5) 대한민국 정부는 과연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는가?
3. 북한의 항일혁명전통론
1) 북한의 김일성에 대한 정통성 시비
2) 김일성 신화
3) 북한 정권의 탄생
4) 북한에서의 반종파투쟁과 혁명전통론의 대두
4. 나 오 며
- 남북의 정통성 경쟁 : 그 치열했던 소모전을 넘어서
2. 남쪽의 주장
1) 임시정부의 조직과 활동
2) 통일전선으로서의 임시정부
3) 해방 후의 임시정부
4) 과연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민족해방운동의 배타적
정통성을 담지하고 있는가?
5) 대한민국 정부는 과연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는가?
3. 북한의 항일혁명전통론
1) 북한의 김일성에 대한 정통성 시비
2) 김일성 신화
3) 북한 정권의 탄생
4) 북한에서의 반종파투쟁과 혁명전통론의 대두
4. 나 오 며
- 남북의 정통성 경쟁 : 그 치열했던 소모전을 넘어서
본문내용
한 정권의 탄생
연합정권으로 출발했으나 처음부터 김일성의 지도력은 확고했다. 그리고 그 통치력을 이남에까지 확장시키려는 계획 속에서 한국전쟁은 '민족해방전쟁'으로 규정되었다. 탄생 때부터 이남 정부의 정통성을 부인하고 출발했던 이북정부는 전쟁을 통해 정통성을 가진 유일한 정부가 되길 원했다. 그러나 전쟁의 결과는 각기 자기 정통성을 주장하는 2국가로의 분단이었다.
4) 북한에서의 반종파투쟁과 혁명전통론의 대두
북한의 경우 반종파투쟁이라는 과정을 통해 김일성계 항일빨치산 계열을 중심으로 하는 정통성의 계보가 마련되기 시작했고한국전쟁 직후의 남로당계 숙청과 그 뒤를 이은 연안파, 소련파의 숙청이 발판이 되었다. 1970년대에 본격적으로 대두된 주체사상 역시 북한의 독자적 노선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한 혁명전통을 체계화, 이론화하는 역할을 담당했다.이 과정에서 연합정권으로 출범한 이북정권은 항일빨치산 혁명전통을 전면에 내세웠다. 나아가 유일사상체계의 확입으로 전사회의 주체사상화를 추진하고 김정일 후계 체제를 확립하는 과정은 김일성과 그 계열의 항일빨치산세력만을 이북은 물론 한반도 전역에서의 배타적 정통성을 담보하는 주체로 주장하는 결과를 낳았다. 즉, 이북 정권 수립의 중핵인 김일성과 항일빨치산들은 분명 해방 직전 우리 민족해방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던 집단이었지만 이들이 민족해방운동의 실질적 총영도기관은 아니었고, 배타적인 정통성을 주장할만한 위치에 있지는않았다. 이는 김구와 임시정부가 처한 위치와 마찬가지였다.
4. 결 론 - 남북의 정통성 경쟁 : 그 치열했던 소모전을 넘어서
그렇다면 정통성을 주장하는 정권 자체는 과연 실제 통치권역 내에서 정통성을 가지고 있었던가. 이남의 경우만 해도 군사정권은 스스로 이남 사회 내에서의 정통성 시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5.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이나 5.17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이나 정통성을 결여한 것은 물론이다. 남쪽에서 말하는 이북의 이른바 '통미봉남' 정책이란 무엇인가. 이북이 미국만을 상대로 하고 남한을 따돌리는 외교정책을 말한다. 이러한 태도의 이면에는 이북은 이남을 미국의 괴뢰정권으로 규정해온 인식이 있었다. 여전히 작전지휘권이 주한미군에게 있다는 것과 이남 정권이 실제 정전협정에서의 서명 당사자가 아니라 미국이었다는 점 등이 바로 그 근거였다. 그러나 이미 해방 이후 55년의 세월이 지난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해방 당시의 정통성 문제가 그대로 적용되기에는 상황의 변화가 너무 큰 것이다. 특히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남북의 정권은 각각 자기의 통치지역 내에서 나름대로 상당한 지지기반을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이남의 경우도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 등의 성과를 흡수하면서 정권이 '반통일세력'이라는 오명을 벗어가고 있다.
정통성 강조는 분단 극복보다는 분단과 대립 강화의 논리이다. 50년 동안 고착화되었던 분단 상황은 남북 모두 배타적 정통성을 주장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러한 시점에서 배타적 정통성을 강조한다는 것은 결국 흡수통일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연합정권으로 출발했으나 처음부터 김일성의 지도력은 확고했다. 그리고 그 통치력을 이남에까지 확장시키려는 계획 속에서 한국전쟁은 '민족해방전쟁'으로 규정되었다. 탄생 때부터 이남 정부의 정통성을 부인하고 출발했던 이북정부는 전쟁을 통해 정통성을 가진 유일한 정부가 되길 원했다. 그러나 전쟁의 결과는 각기 자기 정통성을 주장하는 2국가로의 분단이었다.
4) 북한에서의 반종파투쟁과 혁명전통론의 대두
북한의 경우 반종파투쟁이라는 과정을 통해 김일성계 항일빨치산 계열을 중심으로 하는 정통성의 계보가 마련되기 시작했고한국전쟁 직후의 남로당계 숙청과 그 뒤를 이은 연안파, 소련파의 숙청이 발판이 되었다. 1970년대에 본격적으로 대두된 주체사상 역시 북한의 독자적 노선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한 혁명전통을 체계화, 이론화하는 역할을 담당했다.이 과정에서 연합정권으로 출범한 이북정권은 항일빨치산 혁명전통을 전면에 내세웠다. 나아가 유일사상체계의 확입으로 전사회의 주체사상화를 추진하고 김정일 후계 체제를 확립하는 과정은 김일성과 그 계열의 항일빨치산세력만을 이북은 물론 한반도 전역에서의 배타적 정통성을 담보하는 주체로 주장하는 결과를 낳았다. 즉, 이북 정권 수립의 중핵인 김일성과 항일빨치산들은 분명 해방 직전 우리 민족해방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던 집단이었지만 이들이 민족해방운동의 실질적 총영도기관은 아니었고, 배타적인 정통성을 주장할만한 위치에 있지는않았다. 이는 김구와 임시정부가 처한 위치와 마찬가지였다.
4. 결 론 - 남북의 정통성 경쟁 : 그 치열했던 소모전을 넘어서
그렇다면 정통성을 주장하는 정권 자체는 과연 실제 통치권역 내에서 정통성을 가지고 있었던가. 이남의 경우만 해도 군사정권은 스스로 이남 사회 내에서의 정통성 시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5.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이나 5.17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이나 정통성을 결여한 것은 물론이다. 남쪽에서 말하는 이북의 이른바 '통미봉남' 정책이란 무엇인가. 이북이 미국만을 상대로 하고 남한을 따돌리는 외교정책을 말한다. 이러한 태도의 이면에는 이북은 이남을 미국의 괴뢰정권으로 규정해온 인식이 있었다. 여전히 작전지휘권이 주한미군에게 있다는 것과 이남 정권이 실제 정전협정에서의 서명 당사자가 아니라 미국이었다는 점 등이 바로 그 근거였다. 그러나 이미 해방 이후 55년의 세월이 지난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해방 당시의 정통성 문제가 그대로 적용되기에는 상황의 변화가 너무 큰 것이다. 특히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남북의 정권은 각각 자기의 통치지역 내에서 나름대로 상당한 지지기반을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이남의 경우도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 등의 성과를 흡수하면서 정권이 '반통일세력'이라는 오명을 벗어가고 있다.
정통성 강조는 분단 극복보다는 분단과 대립 강화의 논리이다. 50년 동안 고착화되었던 분단 상황은 남북 모두 배타적 정통성을 주장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러한 시점에서 배타적 정통성을 강조한다는 것은 결국 흡수통일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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