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속의 성역할 왜곡
본 자료는 4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해당 자료는 4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4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Ⅰ. 들어가기

Ⅱ. 본론
(1)미디어가 말하는 바람직한 여성상
(2)미디어가 양산한 게이 문화에 대한 점검

Ⅲ. 맺음말

Ⅳ. 보론(補論)
(1) 미디어가 만든 슈퍼맨 콤플렉스
(2) 남자같은 여자, 여자같은 남자

본문내용

쪽은 여성보다는 남성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비구조상 남성이 돈을 쓰게 하는 요소가 필요하고 그것이 쉽게 인기를 끌 수 있는 요소가 되는 것이다. 여성들에게는 남성에게 자신을 위해 돈을 쓰도록 요구하게 만들고, 남성에게는 경제력을 갖춘 남성을 이상적으로 그려 그에 가깝게 보이도록 노력하게 만든다. 이것은 자본주의 소비문화가 여성들을 미디어 속에서 왜곡된 모습으로 만드는 것과 같은 메카니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즉 자본주의 이데올로기가 미디어 속에서 성역할을 규정하고 성관념을 왜곡시키는 것이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여성주의 입장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여성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남성들의 엇나간 시각도 존재하는 실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학은 좀 더 활발하게 연구되어야 할 것이고, 그와 같은 맥락으로 미디어 속에서 그려지는 왜곡된 여성에 대한 대책으로 제도적으로 자체법규를 만들고, 미디어를 만드는 주체들 중 여성인력의 비율을 높인다는 지의 방법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여성이해방운동이 사회 속에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여성의 완전 해방보다는 남녀평등을 지향점으로 삼아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것은 곧 페미니즘이 여성들을 상품화하고 집에서 살림하는 성으로 옥죄는 대중매체들을 지적하고 논의할 때 여성만큼은 아니더라도 남성들도 그 매체 속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어느 정도는 성적 차별을 받고 있음을 인식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2) 남자같은 여자, 여자같은 남자
*고정화된 여성성, 남성성이라는 것은 없지만 쉽게 논의하기 위해 ‘여성스러운’ ‘남성다운’이라는 말의 의미를 일반적으로 고정화된 뜻으로 의제하고 사용함
예전에 텔레비전에서 해주는 70년대 한국 영화 ‘별들의 고향’속에서 두 남녀배우의 연기를 보고 웃은 적이 있다. 조금은 과장된 연기 때문인지, 아니면 신파적이라는 느낌 때문이었는지는 분명히 알 수 없지만 어쩌면 두 주인공들이 이렇게 남자다울 수 있고 여자다울 수 있는지에 대한 의아함을 느꼈다. 이들의 대사, 연기 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과 생각들. 표정, 몸짓, 목소리, 말투 등 이 모든 것들이 남자는 남성답게, 여성은 여성답게 고정화 되어 있다.
한편 현재의 영화나 드라마들 속에서 다양한 개성을 가진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예전보다는 다소 뚜렷한 여성성이나 남성성만을 갖고 있는 주인공들이 아닌, 두가지 양면성을 모두 보이는 각각의 캐릭터들. 그런데 여기서 조금 색다른 것이 남자이되 성향이나 취향은 완전히 여성인. 그리고 모습은 여자인데 남성성을 강하게 갖고 있는 경우이다. 전자의 경우에는 사람들이 그리 어렵지 않게 수용하는 반면 후자의 경우는 거북해 하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남자 연예인 중 오재형이나 최근 방영되고 있는 ‘왕꽃선녀님’이라는 드라마에서 무속인으로 등장하는 연기자 이정섭을 떠올리면 쉽게 알 수 있다. 남자인데도 여자 같은 말투를 쓰고 몸짓을 한다. 남자가 “어머~얘...왜그러니”라는 말과 함께 살짝 어깨를 치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약간의 거북함과 정상적(normal)이지 않은 즉 이상함을 느낀다.
드라마나 영화라는 창작된 공간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 에서도 주위에 이러한 캐릭터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 사람들과 함께 한 공동체 또는 집단속에서 이들은 남성의 집단에도 여성의 집단에도 속하지 못하고 겉돌게 되는 현상을 종종 보게 된다.
지식검색 사이트인 NAVER에 ‘여자 같은 남자’를 검색하여 사람들이 써놓은 글들 중 일부를 발췌해 보았다.
저희 반에도 그런 애가 있는 데요 처음에는 친절하고 대화도 잘 통하는 것 같아서 여자애들이 다 좋아했었는데 나중에는 점점 짜증 나더라구요..
우리의 토론 가운데 여자 같은 남자가 남자들의 집단에 수용되지 못하고 배척당하는 것은 그러할 법 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지만 그렇다면 여자들은 그들을 잘 수용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비슷한 성향을 갖고 있으니 잘 어울릴 수 있을 것이라는 근거에서였다. 그러나 여자조원들은 모두 이 의견에 부정적인 답변을 했다. 처음에는 잠시 친근할 수 있어도 나중에는 멀리하고 따돌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원래 여자 같은 남자를 싫어해’라는 개인적인 선호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듯 하다. 개인의 취향이 아니라 대부분이 동조하고 있는 사회적 취향을 따른다. 그리고 사회적 취향은 미디어에 의해 일부분 양산된다.
최근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미디어는 다양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보여주기’의 역할은 수행하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그들을 ‘수용하기’ 의 단계에는 이르지 못한 듯 하다. 드라마 속에서 여자 같은 남자를 등장시켜 대중에게 친숙하게 만들고는 있으나 과장되고 왜곡된 인물, 캐릭터로 그림으로써, 또 드라마에 함께 증장하는 인물들에 의해서 무시당하거나 우스꽝스럽게 만들어 짐으로써 대중에게 긍정적 수용의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
최근 들어 섹슈얼리티라는 개념으로 개개인을 이해하고 인정하려는 학문적 움직임과 더불어 겉으로 보이는 신체적인 성의 모습에 구애받지 않고 개개인의 성향을 존중하고자 하는 사회적 분위기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과도기적 단계에 있는 우리의 의식은 외견상으로 보이는 성별과 각 성별의 성향으로 암묵적으로, 당연하게 사회적으로 인정되어 왔던 성향이 일치 하지 않을 때 거북함을 느끼는 것이 사실이다. 그들에게는 우리가 ‘자연스럽다’와 ‘부자연스럽다’를 느끼는 의식 또는 판단 자체가 폭력으로 가해진다.
멋있는 것 보다는 예쁜 것을 좋아하고, 흔히 남자답다고 하는 말투보다 여자다운 말투를 쓰고 남자들과의 어울림보다는 여자들의 집단의 분위기를 좋아하는 남자.
단순히 성향에 대한 선호 또는 취향이 아니라 한 개인을 수용하는 시각관념의 문제이다. 그들을 보고 이상하다고 느끼는 것, 거부감이 드는 것 자체가 그 사람의 성별과 어울리지 않는 다고 느끼는 인식에서 비롯된다고 본다면 우리는 아직도 이중적인 성적 코드를 갖고 있다고 해석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중적 성적 코드를 바꾸는 인식의 변화와 ‘여자 같은 남자’를 긍정적인 모습으로 재평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일부분 미디어가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 가격2,000
  • 페이지수14페이지
  • 등록일2005.05.27
  • 저작시기2005.0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99005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