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문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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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문제 고찰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I. 서론
1. 제 1부 서론
2. 일본역사교과서 고중세분야 왜곡 상황 개관
3. 식민지근대화론
4.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의 역사개관
II. 제2부 : 내용과 비판
1. 임나일본부설
2. 4세기 후반의 삼국관계
3. 6세기의 삼국 및 국제관계
4. 삼국의 조공
- 결 론

본문내용

표현의 문제점
그에 이어 일본 역사교과서에서, 신라나 백제가 일본에 ‘朝貢’을 하였다고 서술하였는데, 이것 역시 <<日本書紀>>라는 일본 측 문헌에 기록된 것을 그대로 신뢰했기 때문에 나타난 표현이다.
삼국 조공설에 대한 비판에 대한 일본측 답변 자료에 의하면, 첫째로 <<隋書>> 왜국전은 백제, 신라가 왜를 ‘敬仰’하는 듯한 외교관계를 취하고 있었다는 주장을 싣고 있고, 둘째로 <<三國史記>>에는 신라로부터 왜의 인질이 보내졌던 사실이 실려 있으며, 셋째로 <<日本書紀>>의 기술은 <<百濟本紀>>에 근거하여 기술하고 있어서 신빙성이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이 시기의 신라, 백제와 왜의 관계를 ‘조공’으로 해석하는 일은 잘못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먼저 <<隋書>> 왜국전에는 “신라, 백제는 모두 왜국을 대국으로 여긴다. 이 나라에는 진기한 물건이 많이 나기 때문에 모두 공경하고 우러러 보고, 또 항상 사신을 통하여 왕래하고 있다.” 는 기록이 있으나, 이는 왜국 측의 자기주장이고 객관적으로 인정하기 어려운 사료이다. 이 기록은 신라, 백제에 대한 우위성을 중국왕조에서 인정받기 위한 왜왕의 일방적인 주장이고 당시 국제적으로 또는 상호간에 인정되고 있던 사실이 아니다.
또 <<삼국사기>>에 백제, 신라가 왜에 인질을 보냈다고 한 사실도 인질의 성격에 대한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데에 기인한다. 인질도 외교상의 한 행위이기 때문에 이를 단순히 조공사절로 간주하는 것은 문제이다. 게다가 인질로 파견되었다는 인물들의 왜국에서의 행적을 보면 그들은 억류된 상태로서가 아니라 외교사절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4세기에서 7세기에 이르는 일본의 고대국가 형성기에 왜국은 문화적 후진성을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대외교섭을 행해왔다. 6세기에 왜국의 대외교류는 한반도제국이 유일하였고, 이 때에는 특히 백제의 선진문물이 전파되고 수용되어 정치, 경제, 사회 등 여러 방면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왜국의 외교 정책은 당연히 친 백제 노선으로 나아가게 되고, 백제를 모델로 한 적극적인 국가정책을 추진하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백제도 긴박한 한반도 정세 하에서 왜국과의 군사동맹을 맺으면서 왜의 군사적 지원을 받기도 하였다.
또한 신라의 경우에, <<일본서기>>의 자료를 보더라도 사료상으로는 신라가 ‘調’를 바치러[進] 왔다고 표현되어 있기는 하나, 580년과 582년의 두 차례에 걸쳐 사신들이 일본에 갔다가 方物을 전달하지 않고 돌아갔다는 것은, 신라가 왜국에 대한 외교에서 위압적인 자세를 취하였음을 의미한다. 요컨대 사신의 왕래와 문화의 교류는 개개의 국가가 처해있던 시대적 상황과 환경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를 문제 있는 <<일본서기>>에 근거하여 신라나 백제가 왜국에 조공한 것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교과서의 서술로서 옳지 못하다. 고구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조공’ 대신에 ‘접근’과 같은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타당하다.
라. 중국에 대한 조공 때 일본은 한국보다 독립적이었다는 서술의 문제점
朝貢이란, 전근대 동아시아 세계의 국제관계에서, 중국 주변에 있는 나라들이 정기적으로 중국에 사절을 파견하여 예물을 헌상하는 행위이다. 이 때 중국에서는 이에 대한 답례로서 下賜 또는 賞賜 라는 명목의 물품을 보내게 마련이어서, 이는 중국과 주변국가 사이의 공식적인 외교 형태이자 문화 교류 및 公的 무역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조공을 통한 복속관계는 어디까지나 自國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행해졌기 때문에, 자국의 이해관계가 상충되면 수시로 단절될 수 있는 일시적인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중국의 역대 왕조에 朝貢外交를 하여왔는데, 그것은 강요에서라기보다는 贈答 형식의 문물 교환을 통해 보다 많은 선진문물을 수용하려는 적극적인 것이어서, 朝貢使를 되도록 자주 보내어 필요한 물화를 요구하여 가져오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때로는 중국이 답례로 주는 물품을 받아오는데 그치지 않고 한국 측에서 필요한 品種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조공을 굳이 조선과 베트남에 비교하여 독립적이었다고 표현한 것은 차별의식을 주입하려는 발상이다.
- 결 론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과거 사실을 통하여 현재를 재조명하고 미래에 대한 대처방안을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본의 역사교과서 파동 문제를 보면서, 이들은 역사교육을 통하여 과거의 진실을 알리고 현재에 어떻게 반영할지를 모색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역사교육을 극우세력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진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교육을 통하여 민족의 뿌리를 알고, 민족에 대하여 자긍심을 가지는 것은 물론 필요하지만, 진실이 아닌 거짓을 통하여 형성되는 민족의식은 차라리 없는 것이 낫다. 최근에 다시 문제가 대두된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교과서는 역사교육의 목표로 민족주의 의식의 배양을 주저함 없이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집필된 역사교과서가 사용될 경우, 그 책으로 공부한 중고등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하게 되면, 3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지 않는다고 아무도 장담하지 못할 것이다.
독일의 경우, 나치정권 당시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며 지속적으로 참회의 모습을 보여 왔다. 그러나 일본은 이와는 대조적으로 진실을 은폐, 왜곡하며 모든 내용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안으로 서술하고 있다. ‘독도’ 영유권 문제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일본인의 90%는 독도를 당연히 한국 땅으로 여기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 새 교과서에는 일본 땅인 독도를 한국인들이 불법점령하고 있다는 내용이 있다. 일본 국민들도 호응하지 않는 이러한 거짓된 사실을 교과서에 반영하는 것은 일본 스스로를 부끄럽게 만드는 일이다.
일본 역사교과서 문제와 독도 문제로 한국인들의 반일감정이 치솟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일본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진실을 밝혀야 한다. 또한 일본 국민들도 진정한 민주시민이라면, 역사교육이 정치적인 도구로 전락하는 것을 반대하며 적극적으로 그것을 규탄해야 할 것이다. 일본의 역사교육이 역사교육의 본질을 회복하고 건강한 민족의식을 심어줄 수 있는 교육이 되어, 한일 관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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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9페이지
  • 등록일2005.06.18
  • 저작시기2005.0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03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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